팥 시루떡

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우리 모두는 특정한 음식에 연결된 기억이 있다. 좋은 기억은 아마도 어린 시절에 엄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음식에 대한 추억일 것 같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 엄마가 시루에서 막 쪄낸 팥 시루떡을 이웃집에 돌리던 떡 심부름 기억이 있다. 어릴 적에는 떡을 안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떡을 먹을 일이 있으면 다른 떡 보다 팥 시루떡에 손이 가는 것은 아마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일 것이다. “너는 쑥 절편이 좋아, 팥 시루떡이 더 좋아?” 이제 곧 미국으로 다시 떠나와야 할 나에게 떡을 싸 보내려는 병상에 누운 언니의 질문이다. 지금 팥 시루떡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LA에도 팥 시루떡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누른다. 언니가 목회하던 시골의 떡 집에서 만드는 떡이 맛있다고 하던 나를 챙기고 싶은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언니는 떡방아집 권사님에게 팥 시루떡에 넣을 호박고지가 있느냐고 전화를 한다. 나는 당뇨 전 단계여서 떡을 잘 먹지도 않고 날씨가 따뜻해서 팥이 상할 수도 있으니 괜찮다고, 그런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우리 언니의 고집을 꺾을까. 며칠 후 언니에게 병문안을 온 시골교회 청년들의 손에는 아직도 따끈따끈한 팥 시루떡 박스가 들려 있었다. 무거워서 두 덩이만 가져 갈 것이라는 내 말에 언니는 적어도 다섯 덩이는 가져가야 된다고 말한다. 

고국의 오월은 싱그러운 녹색으로 아름다웠다. 들로 산으로 나가고 싶은 이 좋은 계절에 언니는 사그라져가는 육신을 지닌 채 하루하루를 버티어 내고 있다. 의료사고로 일년 전에 소장 전체를 잃은 언니는 영양실조로 미이라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평소 모습대로 병상에 누운 채로 온갖 일을 다 지휘한다. 정신이 맑고 통증이 없어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환자가 환자 같지 않다는 다른 언니들의 꾸중 섞인 말에도 언니의 리더십은 변함이 없다. 집에서 나의 돌봄을 받으며 같이 지내고 싶던 언니의 바람과는 달리 언니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입원을 했다. 조금 안정이 되는 듯하기도 했지만, 수혈이나 영양주사를 제외하고는 딱히 병원에서 치료할 것이 없었다. 의사들은 집으로 가도 좋다는 것이 아니고 오래 머물 수 있는 병원으로 가라는 뜻으로 퇴원을 해도 좋다는 말을 했지만, 언니는 서둘러 집으로 왔다. 대책 없는 퇴원 소식에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언니는 나에게 퇴원하는 날 같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어느 식당을 가면 좋을지 알아보라고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줄줄이 연결된 주사 줄을 떼고 동생하고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은 언니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의 삼 주 동안 금식을 했고 겨우 죽을 먹기 시작한 사람이 식당에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다른 언니의 설득 끝에 언니는 식당에 간다는 생각을 접었다. 퇴원한 언니를 위해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것처럼 감자를 썰어 넣고 갈치조림을 만들었다. 감자가 맛있다고 몇 젓가락 먹은 언니는 결국 퇴원한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응급실로 가야 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 언니가 왜 근사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싶었던 것인지가 내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한다.

언니 곁을 떠나오기 전에 단 며칠이라도 병원에 머물면서 간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감기가 걸렸다. 몸도 힘들었지만 그런 상태로 환자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병원으로 찾아가서 잠간 동안 옆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기도하고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용하게 기도는 할 수 있지만 여러 명이 있는 병실이어서 마음처럼 언니와 함께 찬양을 할 수도 없었다. 떠나오는 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나에게 언니는 마스크를 좀 벗어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보는 동생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이리라. “우리가 같이 목회자의 아내여서 다른 언니들에게 못 하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언니, 이 땅에서 다시 못 보면 천국에서 만나자.” 나는 이제 팥 시루떡을 못 먹을 것 같다. 아니면 언니가 보고 싶을 때 한번 씩 팥 시루떡을 사서 언니와 대화를 하는 마음으로 떡을 먹을 수도 있겠지. “언니, 나에게 좋은 언니가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끝까지 믿음 지키며 평안 가운데 있기를.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만나게 하실 그 날, 다시 반갑게 마주 보기를…”  

lpyun@apu.edu

06.0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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