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은퇴를 위하여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지난 연말로 십 년 동안 있었던 교회를 떠났다. 사실 풀타임으로 학교 일을 하면서 틈틈이 교회 사역을 하느라 원하는 만큼 시간을 못 내는 것이 늘 마음 한켠에는 걸렸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생각한 시간이 아닌 때에 갑자기 사역을 내려놓게 되니 서운한 구석도 있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음을 알기에 감사함으로 떠났다. 교회 사역을 그만둔 지 한 달 후에 이번에는 학교로부터 봄학기를 마지막으로 퇴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통보였다. 많은 신학교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미 문을 닫은 학교들도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우리 학교도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학대학원 중 기존의 프로그램 몇 개를 닫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내가 담당하는 프로그램도 닫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닫는 과정이 일년 반에서 이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미리 책임자를 퇴임시키는 조금은 황당한 경우가 온 것이다. “당신이 일을 잘 못 해서가 아니라 재정적 이유인 것을 이해하면 좋겠다”라는 매끄럽게 포장된 말이 전혀 수긍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일 역시 하나님의 완전한 때에 이루어진 것임을 믿고 일단은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머리로 인정하고 입술로 고백한 믿음이 마음으로도 동의가 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뛰던 일들을 갑자기 다 내려놓게 하심은 더 깊은 교제의 자리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손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점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준비시킨 일, 그리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동안 일단은 준비하는 마음으로 관심있는 분야를 연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연구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인 노인사역에 대한 책을 들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마침 차를 마시러 만난 어느 목사님이 본인 교회에서 장년, 노년을 위한 사역을 시작한다고 첫 날 강의를 부탁하셨다. 다른 교회에서 노년기 세미나를 몇 번 인도하느라 준비한 적은 있었지만, 최근에 노인사역에 대한 새로운 책을 읽고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강의준비를 했다. 강의를 위해서 책을 읽다 보니 구석구석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들이 담겨있었다. 참 자상하기도 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갑작스런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된 나에게 세미나 준비를 통해 격려와 도전을 하신 것이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되새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년기를 맞으면서 점검해야 할 것은 정체성과 삶의 목적, 그리고 미래에 관한 것이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이 은퇴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정체성과 연관된 것이다. 즉 평생 하던 일을 그만 두었을 때 상실감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교수로 지낸 24년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면 교수직을 그만두게 될 때 나는 정체성의 상실로 인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나의 주된 정체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라면 나의 직업이 없어진다 해도 나의 나 됨은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또한 내가 주님의 사랑받는 자라면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그 분을 위해 최선의 것을 다 드려야 할지 하나님 앞에서 목적을 지니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나이에 연결된 제약을 뛰어넘어 평생 학습자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그 배움을 나누며 살 수 있다. 며칠 전 만난 어느 권사님은 “가는 세월”이라는 노래를 부른 서유석씨의 누님이었다. 권사님은 동생 서유석씨가 기독교인으로서 많이 나누고 사셨다고 했다. 궁금해서 서유석씨의 간증을 들어보니 “너 늙어 봤냐?”는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불렀는데 그 가사가 무척 재미있었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로 끝나는 노래는 노년기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세상은 젊음을 노래하지만 어차피 다가올 은퇴 후의 삶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목적을 지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lpyun@apu.edu

03.0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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