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동무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다. 올해 하반기는 학교 일로 마음 쓸 일이 많아서 맑은 가을 하늘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힘든 상황 덕분에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어서 감사하기는 했지만 알게 모르게 마음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중에 친구 사모님이 가을 여행을 가는데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다. 장거리를 운전해서 가는 곳은 여행사 패키지도 드물고 여자 혼자 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사모님이 호의를 베푼 것이다. 올 봄에 이미 사모님 부부의 여행에 동행했던지라 또 선뜻 따라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에 목사님은 꼼꼼하게 계획한 일정을 이메일로 보내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쉼의 기회라고 생각이 되어서 아무 준비도 없이 옷가지만 챙겨서 뉴멕시코로 5박 6일의 여행을 떠났다. 긴 운전 시간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어린 시절의 동요도 부르며 그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학교에 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목적지의 하나였던 White Sands National Park은 눈처럼 하얀 석회가루로 이루어진 광활한 둔덕들이 장관이었다. 석회 언덕 위로 부는 바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물결 무늬를 보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세계에 대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지역이 아폴로를 비롯한 우주선의 훈련 장소 이었기에 생각지 않던 보너스로 우주선 박물관도 가볼 수 있었다. 우주선의 설계, 달의 정복을 위한 역사를 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지능의 대단함도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칼스바드 동굴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손길을 볼 수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들린 시골 마을에서 발견한 철새들의 휴양지에서 강줄기를 타고 군데군데 모여 있는 새들과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힐링 되었다. 며칠 동안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며 그 크신 하나님이 나의 자상한 아버지 되심이 감사로 다가 왔다. 집으로 떠나오는 날 아침, 흩뿌린 진눈깨비가 하얗게 쌓이는 산 길을 뒤로 하고 가을 소풍을 마쳤다. 

여행을 위해 경로를 계획하고 숙소를 정하느라 애쓴 목사님, 아이스 박스 한가득 음식을 해서 싣고 오신 사모님의 사랑의 손길로 누린 귀한 휴식은 지친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이번 여행 동안 어느 사모님이 카톡을 보낼 때 자주 쓰시는 “아름다운 길동무”라는 표현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자연도, 지나가는 길에 들린 커피 샵 주인의 따뜻한 환대도 감사했지만 외로운 인생 길을 걸어갈 때 마음을 함께 하는 믿음의 길동무가 곁에 있음이 가장 귀한 감사로 다가왔다. “동무”의 사전적 의미는 “늘 친하게 어울리거나 함께 노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무라는 단어는 오늘날에는 친구로 대체되었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북에서 그 단어를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정치적인 뜻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술 김에 친구를 동무라고 불렀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곁에 동무라는 단어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으로 시작하는 “동무생각”이라는 옛 가곡과 “어깨동무” “길동무”라는 표현 정도다. 이미 귀에 익숙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길 친구” 라는 말 보다는 “길동무”가 훨씬 더 정감이 있다. 우리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우리의 길동무이다. 그 어떤 도움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우리의 길동무이다. 물론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길동무이다. 우리 앞서 가시고 뒤에서 호위하시며 동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동료 길동무가 필요하다. 평탄하지만은 않은 인생 길에 지치고 힘들 때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길을 걸어 갈, 마음이 통하는 길동무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나도 외로운 영혼에게 귀한 길동무가 되고 싶다. 친구가 험한 산을 넘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는 것 같은 때에 함께 삶을 나누며 격려하고 싶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흔들릴 때 다시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나로 인해 길동무들이 주님을 바라보며 가는 길에 힘을 얻고 믿음으로 정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lpyun@apu.edu

12.0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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