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를 잡아라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어느 날 아침 뒷 뜰에 나가 보니 두 군데 정도 수북이 작은 흙 동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두더지가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텃밭에 심은 부추랑 파도 잘 자라고, 당근도 잎이 예쁘게 올라오고, 작년에 심은 도라지에도 파릇파릇 잎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변에 두더지가 구멍을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야채들을 파헤쳐 구멍을 메워야 했다. 오후에 퇴근하고 와 보니 또 다른 흙더미가 봉긋이 올라와 있었다. 두더지와의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잔디를 깎으러 온 아저씨가 두더지가 파 놓은 구멍에 물을 집어넣으면 된다고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다. 이십 분이 더 지나도 계속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굴을 깊이도 판 것 같았다. 물을 집어넣으면 두더지가 판 땅굴에 물이 차서 두더지가 땅 위로 나온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 새로운 흙더미가 세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호스를 구멍에 대고 물을 넣는데 아저씨 말대로 갑자기 두더지가 얼굴을 들이대며 올라 오는 것이 아닌가. 기절 초풍을 해서 얼른 곁에 있던 빈 화분으로 덮어버렸다. 그러잖아도 바쁜 일상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더지 때문에 신경을 쓸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가 되었다. 두더지가 귀엽게 묘사되는 동화 생각도 나고 두더지를 죽이면 잔인하다고 말하는 막내의 말도 생각났지만 결국은 홈디포에 가서 두더지 최루가스(?)를 사서 구멍에 넣었다. 며칠 후 보니 구멍 위에 거꾸로 엎어 놓은 화분 밑에서 두더지가 죽어 있었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어서 자녀 양육세미나, 부부 관계 세미나를 부탁받는 일이 적잖이 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건강한 부부 관계, 자녀 관계는 어려움이 생기기 전에 미리 관계를 잘 가꾸고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는 원인들을 초기에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부부 문제에는 큰 어려움이 나타나기 전에 부부 간의 헌신의 기초를 갉아먹는 수많은 작은 두더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쟌 오트버그 목사님은 건강한 부부 관계를 생각할 때 사랑의 삼각형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삼각형을 이루는 세 모서리는 친밀함과 열정, 그리고 약속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헌신의 약속 없이 친밀함 만을 추구하는 관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부부 간의 처음의 사랑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심이 쉽게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결혼식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선언한 부부 간의 언약이 나의 유익에 따라 쉽게 변하는 계약이 되어 버린 것이다. 로맨스나 어떤 매력에 의한 끌림으로 표현되는 부부 간의 열정도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점점 사그러지기 마련이다. 식당에서 밥 먹는 모습을 보면 그 다정한 정도에 따라 부부인지 불륜인지 알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혼이 언약임을 기억하며 서로를 참아내는 동시에 아내와 남편 사이의 친밀함을 가꾸어 가는 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부부 관계를 위해서는 정말 중요할 것이다. 일상의 삶이 바쁠지라도 일주일에 한 번 아내와 남편,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친밀함을 위한 좋은 투자다. 그 시간이 반드시 근사한 장소에서 계획된 멋있는 이벤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라면 맥도날드에서의 커피 한 잔이라도 괜찮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정성껏 가꾸는 야채의 뿌리를 상하게 하는 두더지를 없애야 하듯 결혼의 뿌리를 갉아 먹는 작은 서운함, 불평, 무관심을 초기에 다룰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과 그 분과의 친밀함에 기초한 부부 사이의 친밀함이 가정을 지키는 행복의 열쇠라면 잘 모르는 사이에 부부 관계의 기저 속에 굴을 만들고 관계의 아름다움을 파헤치는 작은 두더지를 초기에 눈치채고 다스릴 때 건강한 부부관계가 유지될 것 같다. 

lpyun@apu.edu

06.0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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