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그리며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올 봄에는 주변의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한국에 다니러 가는 것 같다. 나도 언니가 아픈 바람에 삼월 한 달을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두꺼운 겉옷을 입었었는데 몇 주 머무는 동안 어느새 개나리와 벚꽃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봄이 다가와 있었다. 그동안도 자주 한국에 다니러 간 편이지만 학교 때문에 늘 여름 방학 동안 방문을 했었다. 노란 개나리가 피어 나는 봄에 모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골에 사는 언니 친구가 뜯어서 보낸 달래를 넣고 만든 향긋한 양념간장 그리고 구수한 냉이, 된장국도 참 오랜만이었다. 모국을 떠난 지도 어언 40년이 더 지나 이제는 미국에서 산 시간이 한국에서 산 시간의 세 배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 한동안은 내 나라가 아닌 이 땅에서의 삶이 외롭게 느껴진다. 미국 시민권을 받은 지 삼십 년이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내 속사람은 미국 시민이 아닌 것이다. 아마도 형제, 친척들이 다 한국에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한국을 다녀오는데 LA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웰컴 홈!”이라고 반겨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속으로는 “여기는 내 고향이 아니예요”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고국, 모국, 조국… 이 모든 단어들은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도 낳고 자란 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인 것 같다. 왜 아직도 나에게 우리나라는 훨씬 더 긴 세월을 살아온 미국이 아닌 한국일까? 왜 우리나라에 가면 미세 먼지로 공기도 안 좋은데 복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마음이 편한 것일까? 아마도 같은 얼굴들, 같은 언어, 같은 문화가 주는 동질감 때문이리라. 이민 일세로 살아가는 외국에서의 삶에서 알게 모르게 겪는 긴장감이 우리나라에서는 없다. 다른 문화에 노출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오는 기쁨, 다양성에 대한 열림 등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요즈음 나이가 들어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접고 일상의 삶에 충실하는 것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한 달 동안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갑자기 다시 영어로 말을 하려니 더듬거려져서 우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니 아마 한국으로 나가서 살면 일년 후에는 영어를 다 잊어버릴 것 같다. 시차 적응도 해야 하고 피곤한 몸을 단련해야 한다고 오랜만에 동네 뒷산을 올라가니 한국에 다녀 온 사이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눈에 보이는 언덕마다 다 노란 유채밭이 되어 있었다. 한국의 개나리를 마음에 담고 온 나를 우리 동네 유채꽃이 반겨 주었다. 어느 곳이든지 마음 담고 살면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국을 떠나 외국에 살면서 떠나온 땅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내가 돌아가야 할 본향을 그리며 나그네와 행인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고 있음을 생각나게 한다. 사랑하는 주님과 먼저 간 믿음의 가족을 기쁨으로 만날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특권이다. 고국을 떠난 이민자로서 생소한 언어와 문화를 잘 이겨내고 견디며 이곳에서 살듯이 이 땅에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 주님의 나라에 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쉬움도, 그리움도 없는 정말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웰컴 홈!”이라고 반겨주시면 우리는 아마 감사함으로 엎드려 주님께 경배를 할 것이다. 

 lpyun@apu.edu

04.2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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