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2023년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새해가 따로 구분될 것 같지 않지만, 우리가 구분해 놓은 한 해라는 경계선은 옛것을 떠나보내고 새것을 맞는다는 의미를 준다. 교회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해를 맞자는 뜻에서 송구영신 예배로 함께 모여 새해 첫 시작을 카운트다운하며 서로를 축복한다. 새해와 함께 짧았던 겨울 방학이 끝나고 다시 봄학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 주 동안의 성탄 휴가로 집에 와있던 막내가 떠난 자리가 마냥 허전하지만 이제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새해를 맞으며 일단 떠나보내야 할 물건들이 있다. 추수감사절이 지난 후 바로 세워 놓았던 크리스마스트리와 피아노 위에 줄지어 세워 놓은 친구, 지인들의 성탄 카드를 거둘 때가 되었다. 푸른 잎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이 주는 아름다움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일까 크리스마스트리는 해마다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듯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한 달 남짓밖에 안 되는 기간이지만 숲속의 은은한 향기를 옮겨다 준 생나무 냄새를 충분히 즐겼다. 일 년이 가도록 얼굴 한번 못 보고 지낸 멀리 떨어져 사는 지인, 친구들의 가족 사진이 담긴 카드들, 바쁜 가운데서도 안부를 묻는 내용을 정성스레 적은 카드들도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크리스마스트리도, 카드들도 다 치울 때가 되었다.
떠나보내는 일은 늘 어렵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물건을 떠나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떠나보내는 일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보낸 이후에 남는 미련, 후회, 그리고 자책 때문인 것 같다. 떠나보낸 빈자리에 남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떠나보낸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생생한 모습으로 불쑥불쑥 기억을 헤집고 나타나서 눈물을 짓게 하기도 한다. 떠나보낸 세월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잘 떠나보내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역사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떠나보낸 빈자리가 어렵더라도 한 치의 실수도 없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그 텅 빈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죄송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함께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옛것을 떠나보낼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감추어져 있다. 새로움에는 설렘도 있지만 알 수 없음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데 우리 앞에 어떤 길이 열릴지 알 수 없다. 새로움을 잘 맞이하는 데에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 된 우리를 위해 최선의 것을 준비하시고 그 길로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신다는 믿음이다. 그 주님을 따라가려면 그분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음성은 주변의 소음을 잠잠하게 할 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떠나보냄과 맞음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하는 구별된 시간이 필요하다. 일년내내, 매일 그 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특별히 우리가 구분하여 새해라고 이름 진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분의 음성에 마음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난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포로된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던 너무나 익숙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앞길을 알 수 없는 새해를 맞는 마음을 담대하게 한다.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말고 물 가운데도 불 가운데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을 갖고 용감하게 걸어가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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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