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는 죽어도 주는 사시다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이 주 전에 내가 속한 어느 단체의 연례 회의가 있어서 뉴저지에 다녀왔다. 미국에 온 이듬해인 81년부터 칠 년 가까이 뉴저지에 살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뉴저지는 마음의 고향이다. 남편이 개척했던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옛 성도들도 만나고 싶어서 회의 날짜보다 며칠 일찍 도착했다. 가끔 뉴저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 옛 교인 몇 분들과 만나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거의 십 년 만에 옛 성도들을 만났다. 다리가 불편해서 거북이 걸음을 하시는 권사님, 한국에 다녀오느라 장시간 비행기에 앉아 있어서 무릎이 아프다고 지팡이를 짚고 나온 전도사님을 뵈니 내 나이도 육십이 훌쩍 넘은 것을 잊어버린 채 마음이 아팠다. 이제 칠십이 지나 팔십을 향해 가는 분들이니 몸이 불편하실 때도 된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다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래도 내가 스물다섯, 그 분들은 삼십 대 중반일 때 처음 만났으니까 그 분들 마음에 있는 나는 아직도 어리고 젊은 사모이고 내 마음에 있는 그 분들은 삼십 대의 활기찼던 분들이다. 

주일이 되어 사십 년 전 남편이 개척했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한 겨울, 눈 덮인 넓은 숲을 보여주며 “여기에 교회를 지으면 참 좋겠지?”라고 하던 남편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스케일이 적은 나는 별 재정적 여유도 없는 개척교회 목사가 무슨 수로 이 넓은 땅을 사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건성으로 “네, 좋겠지요”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그 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예배당이 내 눈앞에 펼쳐 있었다. 개척 후 교회를 짓는다고 8에이커가 되는 큰 땅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LA로 떠났다. 개척 당시 가장 앞장 섰던 장로님과 갈등이 생기자 사십이 채 안되었던 젊은 남편은 다시 개척하러 떠나자고 말했다. 나는 양 떼를 버리고 가는 목자 같아서 왜 우리가 교인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지 마음이 힘들었다. 남편은 개척한 목사가 장로와 갈등하면 교회가 두 개로 나뉘게 되지만 목사가 떠나면 교인들은 다시 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편의 결정에 짐을 싸서 LA로 이사를 하고 또 다시 개척을 한 후 일년 반 후에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사역자는 죽어도 주는 사시다”는 삼십 여년 전 남편이 전했던 설교 제목처럼 남편은 이제 이 땅 위에 없지만, 주님은 살아 계셔서 그가 품었던 비전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안개 같은 인생은 이 땅 위에서 사라져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남편을 힘들게 했던 장로님의 부인이 인사를 했다. 장로님이 십 이년 전에 돌아가신 소식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친교 시간에도 곁에 오셔서 아이들 소식을 물으셨다. 언제 다시 이 분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회의 장소로 옮겼다. 뉴저지에 간 목적인 회의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항으로 향하는 우버에서 가을이 완연한 뉴저지의 풍경을 바라보며 남편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래요, 당신이 가졌던 비전대로 그 땅에 교회가 들어셨네요. 계속된 갈등으로 교회는 성장하지 못했지만 파킹장을 가득 채운 차들이 젊은 세대 영어권 예배자들 차라고 하니 참 반가운 일이예요.”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오더니 바로 끊겼다. 뉴저지 지역 번호여서 다시 전화를 했더니 장로님의 부인되는 권사님이셨다. 카톡이라도 하려고 사람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물어서 한 번 해본 것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눈물이 돌았다. 도대체 이 눈물이 왜 흐르는 것인지. 내 마음 한 구석 깊이 남편을 힘들게 했던 교인들을 향한 서운함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화해라는 단어가 주는 따스함이 마음을 녹였던 것일까?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아파했을까? 이제는 들의 풀처럼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만나 함께 교회를 세우게 하셨던 것을 감사하기로 한다. 또한 마음속의 고향 뉴저지를 향한 기억은 아름다운 것만 남기기로 한다. 사역자는 죽어도 주는 살아 계심을 목격했으니 말이다. 

 lpyun@apu.edu

12.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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