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한 달 전에 집을 리모델링을 했다. 이십 년 전 이사 올 때만 해도 깨끗했는데 살다 보니 군데군데 늘어진 카펫과 상업용 세제로도 없어지지 않는 이곳저곳의 물 때가 눈에 거슬렸다. 몇 년 전에 카펫을 마루로 바꾸고 페인트를 새로 했다. 부엌과 욕실도 개조하고 싶었지만 예산이 너무 커져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번 봄에 친구 사모님이 우리 집 가까이로 이사를 했는데 집을 고쳤다고 와보라고 해서 갔다가 우리 집도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견적비가 적잖이 부담되었지만 어차피 이 집에서 계속 살 생각이면 지금 조금 무리가 되어도 깨끗하게 하고 사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었다. 꼬박 삼 주가 걸려서 리모델링이 끝났다. 집을 고치면서 여러 면으로 불편함도 있었지만 감사한 일을 생각한 것도 많았다. 먼저는 친구 사모님의 넉넉한 마음과 환대가 감사했다. 먼지 때문에 공사 기간 동안 집을 비우는 것이 좋겠다는 말에 친구 사모님은 선뜻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했다. 목사님 부부는 삼십 년 전 남편이 교회를 개척할 때 함께 했던 분들이다. 남편이 떠난 후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 우리 아이들도 돌봐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오랜 세월을 떨어져 살다 보니 가끔씩 안부만 전하는 사이로 바뀌었는데 우리 집 가까이로 이사를 오시면서 다시 한 동네 이웃이 되었다. 집을 고치는 동안 목사님 댁에 머물면서 사모님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옛 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집 리모델링을 계기로 목사님 부부와 다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옛 것을 버리고 철저하게 부숴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공사를 시작한 첫 이틀은 그야말로 기존의 것을 다 부수는 작업이었다. 욕조가 있던 자리도, 부엌도 앙상하게 기초만 남기고 다 헐어 버려서 그동안 생활했던 공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부수는 일이 끝난 후 거의 삼 주 간은 다시 세우는 일을 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 우리도 이전의 생활방식에 젖은 옛 사람을 가차없이 부수고 새 사람으로 덧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은 먼지가 풀풀 나듯이 복잡하고 불편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것이다.
또한 깨끗하게 바뀐 공간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일을 필요로 했다. 요즈음은 simple life를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정리해주는 직업도 생겼다.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연결된 기억도 함께 떠나보내는 것이기에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지금 안 버리면 나중에 자식들이 흉보면서 버린다는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이참에 오랫동안 안 쓰던 물건을 많이 버렸다. 정리를 도와 준 친구들이 안 쓰는 물건은 다 버리라는 은근한 peer pressure 도 작용했을까? 오랜 세월 동안 차고 정리장에 있던 남편의 설교 비디오 한 박스도 과감히 버렸다. 그 다음 날,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보게 하나라도 남겨 놓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외로웠을 때 언니들이 보낸 편지들, 남편을 잃고 막막할 때 아버지께서 보내신 30년이 넘은 편지 등은 아직 버릴 준비가 안 되어서 다시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버리는 것에도 각자가 편안하게 버릴 수 있는 때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도 동료 크리스찬들이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릴 때 각자의 믿음의 단계에 따라 버릴 수 있기를 기다리며, 격려하며,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lpyun@apu.edu
10.01.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