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것이다”


얼마 전 주말에 샌디에고에 사는 아들 집에 다니러 갔었다. 저녁을 먹고 종일 집에만 갇혀 있던 강아지에게 바람도 쏘여줄 겸 다 같이 dog beach에 갔다. 더운 여름날을 보낸 온갖 종류의 개들이 바다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뉘엿 뉘엿 해가 지려는 시간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 오더니 내 옆을 지나가는 강아지가 내 강아지인지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 강아지가 한참을 주인 없이 돌아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후면 해가 지고 깜깜해질 바다에 혼자서 떠돌아 다니는 강아지를 보며 여자들 몇 명이 모여 서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강아지는 몸집도 작고 눈도 잘 안보이는 듯 했고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아마도 누군가가 병든 강아지를 슬그머니 바닷가에 놓아 두고 가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도무지 사람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저런 불쌍한 강아지를 바다에 버리고 간단 말이야”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아들은 급하게 동물 보호센터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니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떠나는데 그 강아지도 사람들을 따라서 파킹장 쪽으로 가고 있어서 뒤를 따랐다. 갑자기 어디서인지 나타난 동양 여자가 자기 강아지라며 네 마리를 바다에 데리고 왔는데 두 마리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었다고 했다. 주인을 찾게 되어서 얼마나 반갑던지 아들은 다시 동물 보호센터에 주인을 찾았다고 전화를 했고 우리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작은 아파트에 사는 아들 집에는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다.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오려고 준비를 하는데 화장실 문이 닫혀 있었다. 아침에 출장을 떠난다고 한 며느리가 화장실을 사용하나 싶어서 기다렸다. 딸 같으면 빨리 나오라고 문이라도 두드리겠는데 며느리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 말없이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기척도 없고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들에게 며느리가 들어가 있는 화장실 문을 좀 두드려 달라고 얘기를 하려고 방문을 들여다보니 며느리도 아들도 자고 있는 것이었다. 화장실 문이 닫혀 있어서 누가 사용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아들 말이 화장실 문이 뻑뻑해서 한 번씩 세게 밀어야 열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며느리가 화장실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 참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우스웠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나 사람들, 사건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가정(assumption)을 지니고 산다. 많은 경우에 우리의 가정은 삶의 경험에 근거한다. 바닷가에서 혼자 돌아 다니는 강아지를 보면 주인이 버린 것이라고 쉽게 가정하고 화장실 문이 안 열리면 당연히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현상 만을 근거로 나의 추측에 의해서 “…일 것이다”라고 가정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잘못된 가정은 편견을 가져오고 편견에 근거한 판단은 우리를 좁은 테두리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내가 지닌 가정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특별히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가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은 쉽사리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많은 경우 잘못된 가정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공동체에 아픔을 가져오기도 한다. 짧은 아들 집 방문은 우리의 가정이 절대적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lpyun@apu.edu

09.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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