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한 달 전 휴가길에 로마에 들렀을 때 이십여 년 전에 교회를 함께 섬기던 목사님 댁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목사님과 나는 같은 신학교를 다녔고 사모님은 내가 섬기던 유아부를 교사로 도와주셨었다. 넉넉지 못한 신학대학원 시절, 함께 가족여행을 갔던 기억도 있다. 이후 목사님은 샌디에고에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로 갔다. 교사 훈련, 자녀 양육 세미나 등 강사로 가끔 불러 주셔서 먼 거리였지만 샌디에고 교회에 몇 번 갔다. 한 번은 목사님 댁에 초대해서 갔더니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목사님이 성도들을 대접한다고 집 뒤 뜰에 직접 만든 숯불 구이용 바베큐 그릴에 고기를 구워 주셔서 그 열정에 감탄했다. 사모님은 수많은 성도 식사 대접의 뒤치다꺼리를 묵묵히 잘 감당하셨다. 두 분이 열심히 사역했고 사모님은 아기들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잘 운영해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두 분은 샌디에고 교회 이십 년의 목회를 마무리하기로 한 이후에 마음의 어려움을 겪었다. 본인이 직접 제자훈련을 통해 세운 리더들에게 생각지 않았던 상처를 받고 로마에 있는 한인교회로 떠났다. 목사님이 로마 교회로 간지 몇 개월 후에 코비드가 터지는 바람에 많은 교인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삼십 명 조금 안 되는 성도들이 모이고 있다. 거의 선교사 수준의 목회를 하고 계신다.
고등학교 교련 선생님 출신인 사모님은 씩씩하기도 하고 수수한 착한 분이다. 목사님 댁에 도착한 날, 사모님이 만든 빵이라고 주었는데 먹어보니 완전히 제과점 빵 수준이었다. 로마에 가기 전 샌디에고에 있을 때 제빵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빵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 사람들을 섬길 일이 있겠지” 하고 배웠는데 로마에 간 후 교제 시간을 위해 매주 빵이나 과자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내가 예배에 참석한 주일은 목사님이 치료차 한국에 다녀오면서 교인들 준다고 사 온 단팥빵과 아이스 커피를 챙겨서 교회로 향했다. LA에서야 한국식 단팥빵이 귀하지 않지만, 한국 빵집이 없는 로마 교회 성도들은 단팥빵에 환호했다. 한국에 다녀오면서 교인들 빵으로 가방을 가득 채워오는 목사님이 또 계실 것 같지는 않다. 교인들은 단팥빵을 먹은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사랑을 먹은 것이다. 로마의 한인교회 구성원들은 몇 분을 제외하면 음악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 그리고 관광 가이드를 하는 분들이 대다수이다. 어떤 분들은 꿈을 안고 유학 왔다가 학업을 포기하고 관광 가이드 일을 하기도 한다. 많은 교인이 지속된 코비드로 생활이 어렵고 지친 상황에서 사모님이 굽는 빵과 목사님의 섬기는 마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싶었다.
심방 갈 때 가져간다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꽈배기를 만들어서 튀기는 사모님을 보며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쓴 자서전에 남긴 구절이 생각났다. 친구의 삶 가운데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암으로 힘들어지니 본인에게 음식을 싸다 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내용이다. 먹는 것을 싸다 주는 것으로 관계가 정리되다니 단순하고 유치한 것 같지만 먹을 것을 갖다 준다는 것은 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말에 일리가 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웃을 섬기는 것이 참된 형제, 자매의 사랑이리라. 매주 마다 다른 빵과 과자를 준비해서 삶에 지친 교인들을 위로하느라 애쓰는 빵 굽는 사모님을 우리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바라보실 것 같다.
lpyun@apu.edu
07.0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