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이 년 넘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며 조심조심 잘 지냈는데 오미크론 끝자락에 감염이 되었다. 백신이 처음 나올 무렵, 접종 직전에 코로나에 걸려 산소마스크까지 써야 했던 딸을 돌 볼 때도 잘 버티었는데 말이다. 봄학기 마지막 강의 날 아침부터 목소리가 안 나오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온몸이 축 늘어지며 힘들었다. “학생이라면 오늘 같은 날은 아프다고 말하고 학교에 안 가겠는데…” 중얼거리며 학교에 갔다. 겨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바로 누워 버렸다. 오미크론 증상은 독감 정도라고 들었지만 밤새 심한 몸살기로 뼈가 쑤시고 아파서 잠을 설쳤다. 아침에 래피드 테스트를 해보니 양성이었다. 바로 PCR 검사 예약을 하고 주치의에게 전화를 해서 코비드 치료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다음 날인 졸업식에도 참석을 못하고 꼬박 열흘을 방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마침 주말이어서 딸이 음식을 챙겨서 방 문 앞에 놓고 가면 식사 후에 딸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 후에 마스크를 쓰고 내려 가 일회용 장갑을 끼고 내가 먹은 그릇을 따로 닦아서 끓는 물에 소독을 했다. 딸이 출근을 한 후에도 혹시 바이러스를 옮길까 싶어서 음식을 챙기러 잠깐 부엌에 나가는 것 외에는 방 안에서만 머물렀다. 약 덕분에 이틀 정도 지나니까 책상에 앉아 일할 수 있는 기운이 생겼다. 밀렸던 서랍 정리도 하고 세미나 준비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모든 외부 활동을 멈추고 여유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은근히 좋았다.
나 만의 공간에 갇혀서 열흘을 지내면서 “멈춤”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는 별생각 없이 늘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일상의 삶에서 의도적으로 잠깐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멈추는 시간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것이다. 제한된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태초부터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함께”인 삼위일체였다. 우리가 거룩을 이루어가는 과정에도 내가 아닌 타인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나 좌절감 없이 내가 죄인임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미움과 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는 다듬어지고 깎여진다. 혼자 만의 시간이 없다면 함께하는 시간의 깊이가 얕아질 것이다.
유난히 마음 쓸 일이 많았던 봄학기를 마치고 딸과 함께 휴가로 그리스에 와 있다. 마침 그리스에서 해외근무 중인 조카가 있어서 편안하게 그리스행을 결정하였다. 아테네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메테오라 지역 산에 올라가니 산 꼭대기마다 자리 잡은 여섯 수도원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곳에 건물을 지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암벽 꼭대기에 지어진 수도원들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서 열려 있기 때문에 수도사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능하다면 한 달 정도만 조용히 머물고 싶은 장소였다. 11세기에 지은 대표적인 수도원 입구에 걸린 작은 성구가 그들이 왜 그렇게 돌 산 꼭대기에 수도원을 세웠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함께 거하기 위함이 아닌 세상과 단절된 고독은 고립일 뿐이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본다. 그리고 그 평안이 주는 힘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코비드 때문에 혼자 방에서만 머물며 보낸 열흘은 마치 그동안 사람들 틈에서 방전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단절된 가운데 하늘로부터 오는 내면의 평안을 누리는 귀한 시간이었다. 쉴 틈 없이 굴러가는 바퀴 같은 일상을 멈추기 어려울 때 오미크론을 통해 잠깐 멈추게 하시고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 시간이 은혜였음을 감사하며 이제 다시 함께함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lpyun@apu.edu
06.0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