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마치 사촌처럼 가깝다는 뜻일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는 정말 이웃이 사촌처럼 가깝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가 팥 시루떡을 만드시면 떡 배달 심부름을 시키신 기억이 난다. 방금 쪄내서 뜨거운 김이 모락 모락 오르는 떡을 접시에 담아 주시면 언니와 같이 동네를 한바퀴 돌며 이웃들에게 갖다 드렸었다. 다른 집에서 음식을 담아 보낼 때면 빈 그릇 돌려 보내는 것 아니라고 다른 반찬을 담아 주시면서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시던 생각도 난다. 떡을 돌릴 일은 없지만 나에게도 이십 년 가까이 사촌처럼 지내는 이웃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옆에 살고 있던 이웃이다. 오른 쪽은 중국 가정, 왼쪽은 인도 가정인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분들이다. 이사 온 해에 인도 분 큰 아들이 돌잔치를 한다고 초대해서 갔었는데 그 아들이 이번에 대학을 가게 되었으니 오랜 시간을 곁에 살았다. 인도 엄마는 덜렁거리는 내가 깜빡 잊어버리고 차고 문을 안 닫고 집으로 들어 온 저녁이면 어김없이 차고 문 열려 있다고 전화를 해 준다. 여름 날 창문을 내리고 운전한 후에 창문 올리는 것을 잊어버린 날에는 차 창문 열려 있다고 전화를 해 주기도 한다. 한 해 겨울은 바깥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차고에 생쥐가 들어왔다. 끈끈이를 놓아 두었더니 몇 시간 후에 나가 보니까 작은 쥐가 붙어 있었다. 아무리 용기를 내서 끈끈이에 붙어 있는 쥐를 쓰레기 봉투에 담으려고 해도 살아서 눈이 반짝거리는 쥐를 차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얼바인에 사는 큰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바빠서 못 오겠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쑥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옆 집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후에 아빠와 아들이 작전 수행이라도 하듯이 이마에 플래쉬 라잇을 달고 긴 막대기를 들고 왔다. 쥐를 봉투에 담아서 쓰레기통에 넣어 주고 가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아침 산책 길에 만나면 눈 인사를 할 뿐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산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에는 온라인 시대 답게 동네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사이트가 있다. 나도 그 사이트에 종종 필요한 정보가 있다고 옆 집 엄마가 알려 주어서 가입을 했다. 그 사이트에는 카요테가 길 가에 돌아 다니고 있으니 강아지 조심하라는 소식부터 안 쓰는 물건을 싸게 판다는 소식, 자기는 이 동네에 새로 이사 왔다고 인사하는 글, 나쁜 사람이 자전거를 훔쳐 갔다는 동영상, 생활에 필요한 정보 문의 등 이웃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소한 일들이 다 올라온다. 매일 그 곳에 올라 오는 소식만 읽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온라인은 대면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끈 따끈한 떡을 돌리던 그런 푸근한 인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떡은 아니지만 옆 집 엄마가 한국마켓에서 파는 큰 후지 사과가 맛있다고 해서 사과 한박스를 사다 준 적이 있다. 비싸지도 않은 사과 한 박스를 그렇게 고마워 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감 밭에 가서 감을 따오면 나누어 먹기도 하고 우리 집에 열린 포멜로와 그 집 그레이프 푸릇을 서로 바꿔 먹기도 한다. 그 집이 여행을 갈 때면 나에게 집을 좀 잘 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내가 특별히 집을 봐 줄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도둑이 들지는 않는지 출퇴근 길에 한번 더 옆집을 쳐다 보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된다.
참 좋은 이웃이지만 나에게는 그 부부를 향한 마음의 부담이 있다. 그 분들은 힌두교 신자이다. 아들들이 어릴 때는 할로윈이면 해마다 친구들을 초청해서 집 앞에서 할로윈 파티를 했다. 할로윈이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캔디를 얻으러 다니는 흥겨운 축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몇 번 파티에 오라고 초청을 했다. 그 부부는 물론 내가 기독교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할로윈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신 교회 행사를 마친 후 늦게라도 가서 그 부부의 친구들을 만나 음식을 나누며 인사를 했다. 또 그 분들은 예수님하고 아무 상관없지만 성탄절이 되면 어김없이 집 밖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 정말 좋은 이웃이라면 내 이웃의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할텐데 그 분들이 이사 가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을 소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숙제이다.
05.0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