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함께 사는 딸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 딸이 양성 판정을 받은 날부터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종일 방안에만 갇혀 있느라 소화도 불편한 딸에게 하루 세 번 식사를 영양가 있게 챙겨주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딸하고 격리는 물론이지만 잠자는 시간 외에는 종일 마스크를 해야 하고 딸이 사용한 모든 식기를 끓는 물에 삶는 등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인 부담도 컸다. 첫 일주일은 몸살, 열, 기침 등 바이러스 특유의 증상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가볍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둘째 주로 접어드는 날부터 다시 열이 나면서 산소 수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Urgent care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서는 딸이 아무래도 불안해서 내 차로 뒤를 따라갔다. 혹시라도 가다가 운전이 힘든 상황이 되면 어쩌나 염려가 되어서였다. 딸의 차를 따라 가면서 위급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하는 동안 기도 친구들에게 급하게 기도 요청을 하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마치 처음 유치원 가던 날, 어린 딸을 혼자 학교에 들여보냈던 안스러운 마음으로 urgent care 건물로 들어가는 딸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파킹장에서 세 시간이 지나도록 딸이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가 응급실로 가야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 딸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면회도 안 되는 코로나 병동에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갑자기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감사하게도 바이러스가 폐렴으로 발전되었지만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니니 집에서 산소 공급을 하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산소가 배달된 날 이후로 온 신경이 다 딸이 머무는 방으로 쏠렸다. 산소가 내려가서 삐삐 소리가 나면 긴장이 되고 기침소리가 계속되면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방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메시지와 전화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더 힘들었다. 그 가운데 지인들의 격려가 힘이 되었다. 먼 길을 찾아오셔서 집 앞에서 기도해주고 가신 목사님과 장로님, 마켓을 봐 준 친구, 약 심부름을 해준 친구, 음식을 집 앞에 놓고 간 친구 등 너무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잠을 잘 시간이 되어서 전화로 딸에게 밤 기도를 해주고 내 방문을 닫고 나면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을 하였다.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해 들어온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중에 최악의 상황들이 갑자기 가능성을 지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남편이 천국에 간지 삼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그 때가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의 싸움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복도로 나와 딸 방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도 하고 두 손을 들고 서성이며 딸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였다.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속의 절규와 두려움을 너무 잘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눈물 속에 있는 나에게 밤마다 말씀으로 다가오셨다. 믿음이 없다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부르시며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위로해주셨다. “딸아 안심하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그동안 익숙했던 말씀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 들려왔다.
나이에 비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고생은 했지만 둘째 주가 지나면서 딸의 상태가 호전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담당의사로부터 격리를 서서히 해제해도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혹시 싶어서 마스크를 쓴 채로 모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성탄절을 보낼 수 있었다.
몇 주간 딸의 감염으로 어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도 되었다. 딸이 철저하게 격리하는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무서운 우리의 죄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외면해야 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바이러스로 고통 받으며 세상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도가 더 진지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실로 다가오는 두려움 앞에서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며칠 전 딸하고 오랜만에 데스칸소 가든을 찾았다. 동백꽃이 피기 시작한 정원을 함께 걸으며 일상의 작은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된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했다. . lpyun@apu.edu
01.3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