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며칠 전 냉장고를 정리하는데 야채 칸에 숨겨져 있던 양배추가 나와서 다듬다가 칼에 손가락을 베었다. 조금 깊이 베어서 피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꼭 누른 채로 한참 지압을 한 후 약을 바르고 밴디지를 붙여 놓았다. 그렇지만 부엌일을 계속 하다 보니 벤 자리에 물이 들어가서 아물 것 같다가 다시 틈이 벌어지고 하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상처가 덧나는 것처럼 보여서 신경이 쓰였다. 한 이틀 동안 꽉 달라붙는 밴디지를 계속 붙인 후에야 벌어진 상처가 메꾸어지고 붓기가 가라앉았다. 베인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삶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별 생각 없이 한 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사소한 행동이 의외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악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상처의 깊이는 마음이 언짢은 정도부터 트라우마라고 표현하는 매우 충격적인 경험까지 다양하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 중에는 아마도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가장 깊을 것 같다. 가족은 가장 사랑하고 믿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 자녀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픔이나 부부관계를 산산조각 나게 하는 헤어짐은 사람의 일생에 큰 상처를 남긴다. 또한 믿었던 친구나 주변의 사람에게 받는 상처도 마음에 오래 가는 흉터를 남긴다. 상처 받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상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상처가 남기는 정신적, 영적 흉터에 차이가 있다. 

첫 번째로 마음 속 깊이까지 찔린 상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 아물었다고 생각하고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찔린 자리가 아물지 않아서 덧나고 부었는데도 스스로 괜찮다고 믿는 경우이다. 물론 모든 생명체에는 자연적인 치유의 힘이 있다. 그러나 상처를 인식하지 않은 채 덮어놓으면 치유될 수가 없다. 상처가 이미 아물었다고 믿고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곁에 있지만 아무런 도움을 줄 수도 없다. 주위의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의 상처를 보지만 본인은 그 상처를 부인한다. 상처받은 경험 때문에 때로 예민한 반응을 하게 되고 심한 경우는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인간관계조차도 유지하기 어려운 고립된 삶을 산다. 해결하지 않은 상처를 안고  고슴도치가 되어 본인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찌르면서 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처를 직시하고 알맞는 조치를 취해서 회복의 길을 가는 것이다. 삶에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를 돌아보며 혹시 그 과정에 나의 잘못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고 나의 몫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복을 구하는 태도이다. 한동안 유행이었던 내적치유사역이 지닌 문제점이 있다면 삶에서 겪은 대부분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그 상처에서 치유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경시한 채 나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아픔의 결과까지도 타인이 가해자요, 나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면 평생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 수도 있다. 설령 내가 받은 상처가 온전히 타인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회복의 길을 가려면 상처를 준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용서는 쉽지 않아서 한 번씩 우리의 기억 속에 아픔으로 찾아오지만 하나님 앞에서 결단한 용서의 반복으로 인해 상처로 인한 흉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옅어져 가게 된다. 상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평생 흉터를 안고 살지 않으려면 벤 손가락에 약을 바르고 밴디지를 붙이듯이 하나님 앞에 그 상처를 내어 놓고 하나님의 싸매심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상처받은 심령들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눈물에 젖어 있는 그의 자녀들을 오직 그 분의 은혜로 회복시키는 분이기 때문이다. 

lpyun@apu.edu

08.2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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