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은혜


그동안은 바쁜 일상으로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어쩌다 씨앗을 심어서 싹이 올라오면 똑똑 따먹는 민달팽이 때문에 텃밭 가꿀 생각은 아예 안하고 지냈다. 3월 초부터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뒷마당에 아욱 씨를 뿌리고 상추, 깻잎, 부추, 오이 등 주변 분들이 주신 모종을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이 마치 아기를 보듯 너무 귀여웠다. 아침마다 물을 줄 때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새싹과 어린 채소를 지켜보는 기쁨이 있었다. 

어지러운 바깥  세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조용히 자라나는 자연이 지닌 생명력에 대한 경이감도 느껴졌다. 심심치 않게 상추, 깻잎도 따먹고 부추로는 오이김치도 담고 부추전도 부치고 아욱으로 국도 끓여 먹었다. 오이는 버팀목을 해줄 나무가 없어서 전지한 나무 가지로 엉터리 버팀목을 해주었는데 꽃이 진 자리에 아주 작은 오이들이 몇 개 달린 채 크지를 못하고 있었다. 영양분이 필요한가 보다 싶어서 한 번 챙겨 주었더니 그 중에 하나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서 15센치미터 정도 되는 긴 오이가 열렸다. 아침에 물주는 일 말고는 해준 일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잘 자라서 잎을 제공하고 열매를 맺는 채소를 보면서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오이 밭에 오이가 길쭉길쭉... 저 혼자서 컸을까 잘도 컸구나, 아니아니 하나님이 키워주셨지”라는 노래이다. 아이들에게 채소까지도 돌보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는 노래였던 것 같다. 

길게 달린 오이를 보며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를 생각했다. 생명을 주셔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주변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 이웃들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좋으신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만 해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악한 사람에게도 해를 비치신다는 말씀처럼 모두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은총이다. 물론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분들은 많은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애써 농사를 짓는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농작물을 거둘 수가 없다. 아침이면 해가 떠서 광합성 작용이 이루어지고 흙 속에서 영양분을 공급 받아서 잎이 자라고 열매도 맺게 하시니 결국은 하나님이 농사를 지으시는 것이다. 우리 집 작은 뒤뜰에도 이전 주인이 심어 놓은 과바나무, 십 년 전에 심은 살구나무, 포도나무, 작년에 심어서 아직 어린 자몽나무가 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먹었던 과바도 하나님께서 키우셨음이 새삼 감사하고, 올해는 두 송이 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작년에 처음 열렸던 포도도 하나님이 키우셨음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그동안 비료 한 번 안주고 열매가 열리면 따먹기만 했다. 그러니 농부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이 키우신 셈이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십자가는 “누구든지” 주를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자연을 통해서도 분명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절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죄의 속박에서 구원의 자리로 불러내신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를 깨닫게 하심도 감사할 뿐이다. 이제 곧 주님 앞에 설 날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오빠와 새언니, 기웃 기웃 하나님께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 한 형부, 믿지 않는 조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나의 책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텃밭에 채소를 키우시는 자상하신 분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이라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 분을 주로 고백하고 인정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2주 만에 아들 내외와 막내가 집에 다니러 왔다. 아이들이 오면 보여주려고 남겨 놓았던 큰 오이를 따고 아욱과 근대를 뜯어서 된장국도 끓였다. 상추와 깻잎도 따서 쌈을 먹으며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삶임을 채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lpyun@apu.edu

07.2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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