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신학

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담임

저는 그동안 '목양실에서'를 통해 ‘연어 신학’, ‘달고나 신학’, ‘커피 한잔에 담긴 신학’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신용카드 신학(?)’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신혼 초, 한 백화점 신용카드를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습니다. 요즘은 신용카드를 주겠다는 곳이 수없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수입이 없고, 신용 등급이 낮아서 웬만하면 내주는 카드 발급을 거부당했던 서글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처럼 신용카드는 아무에게나 발급하지 않습니다. 신용카드 발급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신용입니다. 신용점수가 높으면 사전 승인(PR-APPROVED)신청서가 날아옵니다.

서명만 해도 신용카드를 발급받습니다.

하지만 신용을 인정해 주는 것에 대한 엄중한 대가가 있습니다. 제때 빚을 갚지 못하면 이자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빚 독촉에 시달립니다. 신용 등급이 하향 조정됩니다.

심한 경우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경제활동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저도 신학교 시절, 학자금 대출상환을 제때 하지 못해서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때 느꼈던 부담감과 괴로움을 기억합니다.

신용카드와 크리스천의 삶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만한 신용 등급을 소유하고 있었을까요?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을 만한 신용 등급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채무자이고 신용불량자입니다.

우리는 죄의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영적 신용 등급이 제로입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삯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우리는 더 이상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더 이상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가 아닙니다. 영적인 신용불량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모든 죄의 채무에서 벗어났습니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며 삽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용 등급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용 등급을 보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신용 등급을 보시고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중요한 신용 등급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신용 등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하지만 복음의 메신저인 우리의 신용 등급이 낮으면, 아무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불신할 것입니다. 우리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성실함과 정직성을 믿어주면 줄수록 우리가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명성이 높임을 받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매일 신용카드를 사용하실 때마다 최상급 신용 등급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죄의 채무를 영단번의 제사로 해결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를 끝까지 믿어주셔서 은사와 달란트를 주시고, 우리를 주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우리도 성령님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할 때 감동을 줄 수 있는 신용 등급을 가진 크리스천이 됩시다.

03.2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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