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사랑의교회 담임
“나는 예배자입니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이 작년 여름성경학교(VBS) 동안 배운 찬양입니다. 원래는 한국어로 쓰인 이 찬양을 우리 교회 사역자들이 영어로 번역하여 아이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부를 수 있도록 하였는데 가사가 참 좋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내 영혼 거룩한 은혜를 향하여 내 마음 완전한 하나님 향하여/ 이곳에서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1절)
“나의 평생에 단 한 가지 소원/ 주의 아름다우심을 보며 사랑 노래하는 것/ 나의 왕 되신 주님의 얼굴/ 구하며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사랑 노래합니다”(2절)
이 찬양의 가사처럼 제 평생소원도 주의 아름다우심을 보며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 이십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인데, 이 단어는“Worth”(가치)와“Ship”(신분)의 합성어로서 “신분에 합당한 가치를 돌려드리다, 존경을 보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란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히브리어 ‘사카’는 “엎드려 절하다. 경배하다.”라는 뜻이고, 헬라어 “프로스퀘네오”는 “절하다. 입 맞추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한 존경과 경의와 영광을 표현하며 엎드려 절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우리의 만족과 기쁨을 위함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기쁨을 위함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우리 예배의 대상입니다.
둘째로,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교회를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옵니다. 우리의 찬양, 기도, 마음, 물질, 주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혼 간에 계속되는 사랑과 생각의 교감입니다.”라는 A.W. 토저 목사님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과 깊이 만나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셋째로, 예배의 행위보다 예배자가 더 중요합니다. 가인과 아벨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농사꾼인 가인은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고, 목동인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고,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벨은 예배하는 사람이었지만, 가인은 단지 예배행위를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제물의 내용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 곧 예배자가 더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자세가 예배에 관한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특히 우리가 교회에 모여 드리는 공동체적인 예배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온 민족과 방언이 드릴 예배의 예고편이고, 삼위일체 공동체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성전에 모여 시와 찬미와 악기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과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공동체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온전한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힘씁니다. 또한 온전한 예배자는 개인적인 예배(삶의 예배)와 성도들이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의 균형을 이루며 예배를 드립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03.0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