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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공식 (사무엘상 17:31-37)

권혁천 목사 (샌프란시스코 중앙장로교회)

공식은 변함없이 적용되는 원칙을 말한다. 수학에서 원의 면적=3.14X반지름의 제곱 같은 것이다. 원이 크든 작든 이 공식을 적용하면 언제나 원의 면적을 알아낼 수 있다. 신앙생활에도 그런 공식이 있다.

어디에 있어도, 누구를 만나도,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이 우리 삶의 원칙이 되는 것. 뜻밖에 우리는 이 중요한 믿음의 공식을 10대 소년 다윗의 입에서 듣는다.

블레셋 민족은 고대 크레타섬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신 2:23) 그리스 본토 사람들의 침략으로 섬을 떠나 팔레스타인의 해안에 정착했다. 그러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 이스라엘과 블레셋 민족 사이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예루살렘 서남쪽 14마일쯤 떨어진 엘라 골짜기에서 두 민족이 맞붙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스라엘에게 어려웠다.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블레셋의 장수였다. 이스라엘에는 그를 상대해 싸울 사람이 없었다. 40일째 골리앗은 날이 밝으면 이스라엘의 진영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싸울 놈 나와 봐’였을 것. 이스라엘은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언덕에 처박고 꼼짝도 못했다. 키가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들 보다 더 컸던 왕 사울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전쟁터에 다윗의 손위 세형 엘리압, 아미나답, 삼마가 참전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새는 아들들의 형편이 걱정스러웠다.

막내아들 다윗에게 음식을 조금 들려주어 형의 안부를 살피러 보낸다. 다윗이 전쟁터에 도착했을 때에도 골리앗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에 이상하게 보인 것은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10대 이었음이 거의 확실한 다윗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자신이 싸움에 나가겠다고 말한다. 이 말은 즉시 사울왕에게 전해졌다. 사울은 다윗을 불러오라 지시한다. 혹시 하는 기대가 역시 하고 무너지지 않았을까? 얼굴은 붉고, 키는 자그마한 아이였다. 머리가 아플 때면 종종 불러서 수금을 연주하게 했던 아이였다. 한심했을 것. 사울이 신음처럼 말한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 17:33) 넌 저 블레셋의 거인과 싸우기에 너무 어리다. ‘못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34-37절에 기록된 다윗의 대답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다. 아버지가 양을 맡겼었다. 들판에서 양을 돌보다 보면 사자나 곰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그 맹수들과 싸워서 양떼를 구해냈었다. 사자나 곰을 이겼던 것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이 블레셋 사람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어린아이가 사자나 곰과 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윗은 그가 이 어려운 싸움에서 이겼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니 아무리 위험한 싸움도 다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그의 물맷돌 솜씨를 믿었을까?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37절의 말씀이 핵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하나님이 건지셨다. 다윗이 지금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하신 일이다. 그랬더니, 다시 건지실 것이라는 기대가 분명해졌다. 다윗이 가르치는 인생의 공식이다.

기억하면 기대하게 된다.(Remember, then you can expect!)

기억하면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인생의 원칙인지 성경은 반복해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살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들은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구원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던 이 간절한 소원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다. 모세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은 바로와 심각한 갈등에 직면한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바로는 강제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진 왕이었고,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예계급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10가지 재앙이었다.

하루아침에 그 푸르던 나일강이 피로 변해버리고, 강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개구리가 음식그릇에서 이불 속까지 튀어나온다. 이가 온 몸에 달라붙어 괴롭게 하고 하늘이 까맣도록 메뚜기가 날아왔다.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재앙의 마지막은 그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이 다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바로도 , 시녀도, 모두가 첫 자식을 잃어버렸다. 짐승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은 피한다.

 일러주신 대로 재앙이 임하기 전 양의 피를 그들의 집 문틀에 발랐고 죽음의 천사는 그 집을 건너갔다. 이 재앙을 예고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하신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출 12:13-14) 그렇게 생긴 절기가 유월절이다.

왜 명절로 만들어 지키라고 하셨을까? 기억하기 위함이다.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던 애굽에서의 탈출을 하나님이 어떻게 그 백성에게 이루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그들이 다시 할아버지가 되어 애굽에 살아보지도 않은 그들의 손자들에게 하나님의 하신 일을 말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건을 기억했다. 기억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장자의 재앙뿐이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바다를 가르셨는지, 반석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나왔는지, 아침이면 어김없이 내렸던 만나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겠는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이야기도 전했을 것이다.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억할 때 강하고 분명해진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하신 일을 기억했고,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도 자신을 도우실 것이라는 기대로 골리앗 앞에 섰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의 기대에 어김이 없이 다시 그를 도우셨다. 하나님이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른 전쟁에서, 나라와 개인을 위협하는 사건과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번번이 그들의 기대 이상 그들을 도우셨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성경을 통해 읽는다. 다윗 만이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만 그런 도우심을 받고 살아났을까? 아니다. 성경이 기록되어 우리 앞에 주어진 까닭은 이 일들로 우리의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살아온 인생을 신중하게 돌아보면 다윗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의 삶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

 

누군가는 3단 이민가방 몇 개와 수중에 단 몇 백 달러로 이국의 삶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통하고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한 유학생으로 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셨고 직장을 주셨고 내 사업을 주셨다. 그 부족한 실력으로 공부를 마치게 하시고 누구도 부러워할 인생을 살게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이루신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기억한다. 직장을 갖고, 집과 자동차를 소유했다고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중한 병에 신음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가정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을 기억할 때, 다시 다가온 문제와 어려움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건널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지 않았던가? 그 믿음으로 오늘 우리가 있다. 믿음의 변하지 않는 공식 ‘기억하면 기대하게 된다.’ 우리 인생을 풀어낼 가장 중요한 공식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모진 고생을 했다. 하지만 어떤 고난이 그를 찾아와도 능히 감당하고 일어선다. 큰 믿음의 용사다. 그의 마음에 같은 믿음의 공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3~25) 성찬예식에 대한 이야기다.

주님이 구원을 얻을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바울은 주님이 떡을 나누어 주신 후에도, 잔을 나누어주신 후에도 이 사건을 ‘기념하라’고 하셨다고 가르쳤다.

기념, 영어로 remembrance라고 번역한 이 말의 어원은 remember,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 이것을 기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울의 이야기로 확인해 보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하나님이 내게 어떤 것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모진 고난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웠던 것은 바로 이 기억과 기대가 아니었을까?

불확실한 시대를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 확실한 한 가지를 마음에 담자.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다.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먹이셨으며 내 환란과 어려움을 해결하시고 건져내셨다. 이 기억이 분명해지면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기대가 확실해진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 믿음으로 산다. 믿음의 삶의 분명한 공식, ‘기억하면 기대하게 된다.’ (Remember, then you can expect!) 가슴에 새길 믿음의 공식이다.

hyouk@msn.com

05.1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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