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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Homeless)에 대한 이해와 대책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노숙자(露宿人)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저들은 수적으로도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도시 한 복판의 거리에 즐비한 혐오스런 천막들, 노상 방뇨 및 대변,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불결함, 지나가는 사람에게 행패 등이다.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 차원에서 골머리를 앓으며 힘써 보지만 근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노숙자 문제가 이제 미국의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보다 엄격한 규제 정책 및 치안 유지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각각 일리가 있으나 관(官)  주도만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될 수 없다. 저들에 대한 입체적이고도 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대안이라면 무엇일까? 국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펴되  종교 기관 등이 함께 힘을 보태야 한다. 왜냐하면, 몸 부위가 곪아 있는데 근본 치료는 않고 붕대만 둘둘 감아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회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세상에는 밝은 곳 못지않게 그늘진 곳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고 있기에 존귀하다.

교회가 유리방황하는 홈리스들을 외면한 체 예배만 드려도 되는가.

 

1. 홈리스에 대한 정의와 주 발생원인

 

노숙자(Homeless)란 어떤 사람들인가? 사전적 의미로 "이슬을 맞으며 자는 사람"을 가리킨다. 노숙인 봉사단체인 프레이포유(Pray for you)는 “집이 없거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세상에서 온갖 상처와 핍박을 받고 길 위로 버려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홈리스가 생기는 경우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질병 및 장애 25.6%, 이혼 및 가족 해체 15.3%, 실직 13.9%, 사업 실패 9.9%, 알코올 중독 8.1%, 신용 불량 혹은 파산 5.2%, 임대료 연체로 인한 주거 상실 4.4%, 주위 사람들의 도움 부재 4.0%, 배우자 사망 1.5%, 교도소 출감 1.0%, 복지 서비스 등 정보 부재 0.5%, 사회복지시설 퇴소 0.5%,  그 외에도 가정불화로 인해 가출 청소년 등이 일시적으로 노숙자 신세를 지기도 한다.” (https://namu.wiki/노숙자 자료). 미국의 경우는 저렴한 주택의 부족과 높은 주거비용, 실업, 가정 폭력 및 파괴, 불법 이민자, 정신과 육체적 질환, 가족과 사회에서 관계 단절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도시의 경우 68%가 마약이나 알콜 중독때문(출처:National Coalition for the Homeless)이라고 한다. 이 밖에 세계 여러 나라들은 어떠한가? 통계 수치의 차이는 있겠지만 항목 면에서는 한국이나 미국처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2. 홈리스 현황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홈리스는 얼마나 될까? 대체로 80억 인구의 2%인 약 1억 6천만 명으로 추산한다. 국가별 통계가 있지만 부정확하다. 이유인즉, 각 나라별로 조사방법이나 포함기준의 엄격성이 다르다. 무엇보다 체면이 있기에 축소 지향적으로 보고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2021 년 기준하여 쪽방 주민 포함하여 1만 4,404명이라고 했다(보건 복지부 자료). 증가추세로 볼 때3년이 지난 지금쯤은 약 2만 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어떠한가? 연방주택도시개발부(HUD)가 발표한 홈리스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 미전역 노숙자를 65만3104명이라고 했다. 이들 중 40%인 25만 6600여 명은 보호시설이 아닌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다. 주별 통계를 보면 미 전역의 홈리스 인구 중 3분의 1 에 해당하는 18만 1400명이 캘리포니아주에 있다. 2위는 뉴욕주에 10만 3200명 이 있다. 대도시별로는 뉴욕시가 8만 8000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LA에 7만 1300여 명이다. 3위는 시애틀이 1만 4000여명, 4위는 샌디애고 1만 260여 명, 5위 덴버가 1만여 명이다. 인종별로 보면 백인들이 절반에 가까운 49.7%를 차지하고 있고 흑인들이 37.3%, 히스패닉들이 27.5% 원주민들이 3.5%, 아시아계가 1.8%로 가장 적었다. 하지만 아시아계 홈리스들은 1만 1574명으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적지만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르다고 연방정부는 지적했다.

 

3. 홈리스 사역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

 

LA에는 아버지 밥상교회(Father’s Table Mission)가 있다. 이는 2016년에  LA 한인 타운 근처에서 시작된 노숙자들을 위한 신앙 공동체이다. 본 교회는 대표되는 무디 고 목사 외 마리아 목사, 여러 도우미들이 함께 섬기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지난 8년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200~300여 명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이어서 새벽5시에 예배를 드리고 곧장 홈리스들이 있는 LA 다운타운으로 가 배식을 한다. 이때 한 켠에서는 사역자가 확성기를 통해 찬양을 하고 복음을 선포한다. 본 교회 사역의 목표는 저들이 중독과 방황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은 “누워있던 자에서 일으키는 자로,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손가락질 당하는 자에서 칭송 받는 자로”로 세우는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하나님께서 도울 자를 붙이시자 이 공동체에게 큰 선물을 주셨다. 그것은 빅토빌의 10에이커 농장이다. 저들은 2023년 2월 16일 감격스럽게도 하이데저트 선교센터를 오픈하게 되었다. 이곳은 정말 저들에게 꼭 필요한 쉼터요 재활센터이다. 저들 30여 명은 마약과 알콜의 유혹이 없는 한적한 교외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총 책임자 고 목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발한다. 홈리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형제처럼 허물없이 함께 생활하면 저들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이다. (담당자: 213.364.7289).

 

4. 홈리스를 위한 대책

 

첫째 응급 구호 과정이다. 핵심은 급식, 의료, 쉼터이다. 구제 급식은 종교계를 비롯한 민간단체들이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체계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의료 봉사는 매우 취약하다. 저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쉼터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 민간단체, 종교 기관 등이 서로 연동되어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정부는 주로 쉼터 위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단체는 의료 분야, 교회는 단순 급식 위주로 짜임새 역할 분담하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립 갱생의 과정이다. 저들을 보호 관리 차원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한 방편으로 위의 밥상교회 모델처럼 한적한 교외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악기, 운동, 취미 생활, 단순 직업훈련 등을 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번잡한 도시는 저들에게 좋은 환경이 될 수 없다. 셋째 전문 연구센터 설립이다. 앞으로 노숙자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인 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官) 주도의 싱크 탱크(Think tank)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홈리스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와 정책을 내어 놓을 때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나아가 홈리스들을 위한 전문성과 통합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도 요구된다.

 

맺음 말

 

홈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존엄한 사람이다. 같은 인간 사회에서 저들을 외면하고 가진 자들끼리 호의호식하면 너무 비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2.195km 마라톤 경기를 보면 무수한 낙오자가 탄생한다. 인생이란 장거리 레이스에서는 당연히 경쟁에서 쳐진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저들을 부축하며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신앙인의 양심이다. 국가와 사회단체들의 도움은 외형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저들에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할지라도 사람이 바뀌지 아니하면 언제 다시 거리로 튀어나올지 모른다. 누가 상처 난 저들의 심령을 치료하며 산 소망을 줄 수 있는가? 이 분야는 우리 기독교회의 몫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진정 예수님의 심장을 소유했다면 결코 자체 교회 성장에게만 함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주님의 눈과 마음은 안온한 회당 안이 아니라 바람에 나는 겨처럼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무지렁이 같은 자들에게 있었음이다.

Jrsong007@hanmail.net

06.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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