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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후스단

열왕기하 18:1-4
정승환 목사

필라영생장로교회

히스기야는 열왕기하, 역대하, 또 이사야서 중간 이렇게 여러 군데 나오는 아주 유명하고도 익숙한 왕입니다. 이분에 관한 특이한 점은 그 선대 아버지 아하스와 그 아들 므낫세, 두 왕이 남유다에서 가장 악한 왕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고, 특히 인신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악한 왕들 사이에서 히스기야 같은 위대한 왕이 나왔습니다. 히스기야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29년간 통치했습니다. 선한 왕일지라도 완벽한 왕은 없고 사람에게 희망을 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히스기야 왕에 관한 짧은 구절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을 몇 가지 짚어보기 원합니다. 

첫째로, 먼저 3절에서 히스기야를 소개할 때,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라고 합니다. 남유다에서 선한 왕의 대표적 기준이 다윗이었고 다윗과 같이 했으면 선한 왕인 것입니다. 반대로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의 기준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는 말이 나오면 저주가 따라옵니다. 여기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또한 누군가의 영적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아버지로 어머니로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영적 기준점이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공동체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든 싫든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기준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여로보암과 같은 불신의 기준점이 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라는 말은 원문적으로 ‘다윗 비슷하게’ ‘다윗처럼’이라기 보다는 다윗이 행한 “모든 것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후대 왕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또 다윗을 뛰어넘는 무엇을 바라셨다라기 보다, 다윗과 똑같이, 다윗의 행적에서 읽고 들은 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의 행적에서 배운 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은 보고 들으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나의 신실함이 나의 신앙인격이 나의 섬김이 유튜브 라이브처럼 생중계가 되고 있는 겁니다. 내 삶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우리의 소원이 다윗과 같은 아름다운 신앙 유산을 남겨 주는 것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히스기야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우상들을 철저히 타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히스기야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셨고 그 결과 그 나라는 점점 부강해지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 되었는데 그 시작점은 우상타파였습니다. 우선 여러 산당을 제거하였다고 나옵니다. 성경에서 산당을 제거한 왕은 거의 없습니다. 다윗처럼 행하였던 선한 왕들조차 거의 다 실패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산당과 같은 부분, 하나님의 말씀이 닿지 않는 곳, 개혁을 철저히 거부하는 철옹성과 같은 부분이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맞춤형 파괴였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사람들이 그 옛날 사막에서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에게 절하고 분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놋뱀까지도 부숴버린 뒤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모세 때로부터 히스기야 왕까지 약 600-700년 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장대 높이 달렸던 놋뱀 (민 21:8-9) 그래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분명히 살아났었던 그 놋뱀이 어느 샌 가부터는 사람들이 그것에 절을 하기 시작하는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놋뱀과 하나님을 분리했기 때문입니다. 놋뱀에 하나님의 말씀이 붙어있지 않으니까 하나님 없이 놋뱀만 남고 아주 강력한 우상이 된 것입니다. 놋뱀이 하나님과 분리될 때 하나님의 말씀과 떨어질 때 놋뱀이 자체적인 힘이 있는 것인 양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이 더 이상 없어질 때에 그것은 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모든 것,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되는 모든 것들은 우상으로 변합니다. 우리의 화려한 과거를 믿는 것이 아닌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오늘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저력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승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승리를 주셨던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 고백하는 것이 우상을 타파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능력의 종이라 불립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무슨 은사가 있고,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의 ‘종’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때 그 종은 주인 행세를 하게됩니다. 마치 게하시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분리되는 모든 것은 우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느후스단’의 뜻을 찾아보니, ‘놋뱀’이라고 합니다. 놋뱀을 부숴놓고 놋뱀이라고 불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히스기야가 오랫동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이 놋뱀을 가차없이 잘라 부셔버린 후 땅바닥에 던져놓고 ‘너는 그저 놋조각이구나’ ‘놋으로 만들어논 뱀 주제에’ 하면서 비아냥거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60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두렵게 하고 미혹했던 놋뱀의 정체는 ‘놋조각’ 이었던 것입니다.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성도님들, 얼마나 두렵고 힘드십니까? 그러나 그 병은 우리의 영혼을 무너뜨릴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합시다. 여러 가지 문제와 도전들이 올 때에 히스기야처럼 놋뱀은 놋뱀일 뿐, 사람은 사람일 뿐, 병은 병일 뿐, 문제는 문제일 뿐입니다. 두려워 할 존재도 그 앞에 경배할 대상도 아닌, 부쉈더니, 부서지는 느후스단일 뿐입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을 향하여 “느후스단!” 이라고 외쳐보십시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을 통하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부활하심, 좌정-통치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믿으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병마를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히스기야와 같이 오직 담대하여 나를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느후스단의 머리를 밟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yspcsamchung@gmail.com

07.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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