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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에, 그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셨다. 그것을 창세기 18장 17절,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하는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자신의 계획을 공유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꼭 찍어서 선택하신 이유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지 않으셔도 상관없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작은 하나의 인간일 뿐인 아브라함에게 굳이 다 시시콜콜 말씀하실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일일이 아브라함의 동의를 구하실 필요 없지 않은가?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하나 말씀하신다는 것이 귀찮고 불편하실 일 아닐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하고 말씀하신다. 바로 이것을 동역,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동역자, 동지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다.

“필립얀시의 기도”라는 책에 있는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한 목사님이 집에서 뒤 뜰에 계단을 만드느라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일하고 있었다. 돌멩이 하나만 해도 무게가 100파운드가 넘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운이 다 빠졌다. 큰 장비들을 요령있게 사용하는 일도 무척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곁에 있던 다섯 살 짜리 딸아이는 자기도 돕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아빠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지만, 그것은 싫고, 직접 돕겠다는 것이다.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돌을 옮길 때 손을 올려놓고 살살 밀게 시켰다. 물론 위험하지 않겠다 싶은 때에 한해서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딸 아이의 도움은 오히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계단 공사는 훨씬 빨리 끝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이 마무리될 때쯤, 아빠는 새로 만든 계단은 물론, 자부심과 성취감으로 뿌듯해하는 딸아이까지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 딸아이가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랑 아빠랑 둘이서 계단을 만들었어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먼저 맞장구를 친 것은 바로 아빠였다.

아빠의 입장에서 이것은 동역이 아니다. 딸의 입장에서 동역이다. 딸의 입장에서 동역의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동역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동역하지 않으셔도 아무 상관 없다. 아니, 동역하지 않으시는 편이 더욱 수월하실 수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시려고 동역하자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도 동역하고 싶어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께 돈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하고, 능력이 필요해서 우리의 것을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주님은 뭐가 부족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와 마음을 나누고 싶으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그렇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자꾸 부담스러운 말씀 하지 마세요’, ‘자꾸 내 인생에 개입하지 마세요’, ‘그냥 저기 멀리서 나를 도와주기만 하세요’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경우도 있다. 주님이 내 인생에 너무 많이 개입하시면, 주님과 동역하면 왠지 피곤할 것 같고, 내 시간도 방해받을 것 같고, 고생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주님과 적당한 선을 긋고 지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동역은 우리에게 가장 복된 일이다. 최고의 선택이다. 최고의 복을 받는 비결이다. 아브라함의 삶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wmclakim@gmail.com

07.2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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