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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입장에서 현대신학 비판 (14)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Ⅸ. 세속화 신학 (Theology of Secularization) 세속신학은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학적 입장을 가리키는 용어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형이상학적 입장 (supernatural metaphysical positions)을 거부한다. 세속주의(secularism)는 반종교적, 과학적, 그리고 물질적인 개념이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초월적인(transcendent) 신이 아니라, 내재적인 (transcendent) 신이다. 세속주의는 초월적이고 다른 세계의 실체를 거부하며, 세상적인 실체만 인정한다. 그리고 성스러움보다는 세속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에서 나오는 세계관이다. 세속주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계몽주의, 과학의 발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의 전통적 체계를 무너지게 했으며, 기술 혁명, 국가 간의 경쟁, 진화론, 마르크스주의 등이 계속적으로 세속화를 발전시켰다. 세속주의는 하나님과 초자연인 실체를 몰아내는 작업을 해 왔다. 당연히 세속주의는 창조주를 부인하고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는다. 1960년대에 발전된 세속신학은 신정통주의, 디트리히 본회퍼, 하비 콕스, 그리고 쇠렌 키에르케고르와 폴 틸리히의 실존주의 영향을 받았다. 로빈슨 (John A. Robinson)은 “세속 신학이 토마스 J. J. 알타이저 (Thomas J. J. Altizer)의 사신신학 (Death of God Theology), 그리고 틸리히 (Tillich)의 철학적 실존주의와 같은 사상이 신학의 주류에 쉽게 도입되어 이 세속신학이 되었다”고 보았다.(John A. Robinson, Honest to God). 인본주의자 짐 해릭 (Jim Herrick)은 세속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하였다. “가장 큰 의미에서 세속주의는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우리가 정책을 채택하고, 우리가 우리의 삶을 운영하고 관계성을 세우고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종교를 참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Secularism in the largest sense means that people do not refer to religion to make decisions, to adopt policies, to run their lives, to order their relationships, or to impel their activities”; Will Secularism Survive? 에서 인용). 한 마디로 말해서 세속주의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세계관이다. 1945년 로버트 W. 프랑크는 세속주의는 “종교에 관계없이 인간의 이성, 과학, 사회 조직을 통해서만 인간의 발전을 추구하는 다양한 공리주의적 사회윤리”라고 했다. 세속화 신학은 1960년대 부터 미국을 비롯해서 서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은 1966년 4월 8일 출판된 <타임> 매거진이다. 이때 타임의 주제는 “하나님은 죽었는가? (Is God Dead?)” 이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미국과 서구 사회는 하나님의 존재를 추방시켰다는 상징이다. 존 로빈슨은 <신에게 솔직히> (Honest to God)를 출판함으로 세속화 신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로빈슨은 “저 위에계신 (up there) 하나님의 (물리적, 형이상학적, 혹은 비유적이라도) 관념은 시대에 뒤졌고, 의미가 없으며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20세기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이미지 (new image of God)와 기독교 교리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radical reinterpretation) 주장했다. 로빈슨은 틸리히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의 근거 (the Ground of our very being)”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 목적은 종교인들을 위한 조직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독교 신자의 삶의 모토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Love God and do what you like). 로빈슨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는 지워야 한다” (The line between church and the world must be erased)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비 콕스 (Harvey Cox)가 1965년 출판한 <세속도시> (The Secular City)를 출판하면서 세속화 신학을 확산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세속도시란 세속과 도시를 합친 말이다. 그는 현대의 도시화, 기술화 그리고 삶의 형태를 지적한다. 그는 성경의 세계관은 자연 숭배를 막고 지배자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왕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 또한 세상 가치들을 높이지 않는다. 자연의 힘이나 사회질서 이념들을 우상처럼 섬기지 못하게 한다. 그것들은 섬길 대상이 아니라, 부리고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속화된 사람들에게 “삶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구분한다. 궁극적인 것, 혹은 종교적인 문제에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일시적인 것 (이해할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것)들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속화 신학자에 의하면 현대인은 종교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반종교적이지도 않다. 단지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세속적이다. 현대인들은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관에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하비 콕스는 “세속도시는 성숙과 책임을 요구한다. 세속화는 성숙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 모든 부분에서 어린애 같이 하나님의 의존함을 없애준다. 도시화는 인간 사이의 상호성이란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프랜시스 쉐퍼 (France A. Schaeffer)는 <도시속의 죽음> (Death in the City)에서 예레미야가 도시에 죽음이 있다고 외쳤으며, 그것은 우리 시대에도 사실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지만 인간과 인격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는 단지 사람의 수가 많고 적다는 것이 아니다. 인구의 집중은 사회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그것은 영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인간의 삶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부정적 도시관에 반대하여 다른 이론들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도시와 시골이 그 구성요인에서 다를 뿐, 오히려 도시에서 더 풍요하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기회를 만날 수 있으며 긴밀한 인격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구성론과 도시에는 출신 지역과 문화, 그리고 교육수준과 직업의 차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다문화론이다. 그러면, 신학적으로 도시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성경에서 최초의 도시는 가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가인은 하나님의 저주가 두려워 자기 보호와 하나님 없는 독립적 번영을 목적으로 에덴의 동쪽에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또한 함의 아들 니므롯도 노아의 저주에 대항하여 도시를 건설하였고, 결국 최대의 도시 바벨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분열되고 파괴되었다. 영국의 C.S. Lewis와 흡사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쟈크 엘룰 (Jacques Ellul)은 <도시의 의미> (The Meaning of the City)에서 도시와 저주, 도시와 전쟁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미 건설된 도시에서 단순히 살 수는 있으나 그것을 확장하는데 참여하지는 말아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니느웨에서 최초의 도시 구원을 볼 수 있으며,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도 성전과 함께 멸망하였고, 우리는 천상의 새 예루살렘만을 기다리는 일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은 <신의 도시>에서 도시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도시와 자기를 사랑하는 도시가 있다고 분류하고, 인간의 도시는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도시를 소망해야 된다고 가르쳤다. 하비 콕스는 <세속도시>에서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천상의 도시를 기다리지 말고 세속화와 도시화의 융합으로 발생한 세속도시를 “하나님의 도시”로 수용하고 선교적 자세로 임하자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적 관점에서 두 도시를 다 포기할 수 없다. 종말론적으로 천상의 도시 예루살렘을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지상의 도시들에서 사명을 다해야 한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사랑하여 목숨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도시와 도시인들을 사랑해야 한다. 모든 도시는 세속의 바벨론과 거룩한 예루살렘의 두 속성이 공존하기 때문에 도시의 복음화를 통해 세속도시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사명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웨인 믹스(Wayne Atherton Meeks)는 <최초의 도시 그리스도인들: 사도 바울의 사회적 세계> (The First Urban Christians: The Social World of the Apostle Paul, 1983)에서 바울이 얼마나 도시를 사랑하며 도시 중심으로 선교했는가를 설명한다. 도시 자체는 많은 사회학적, 신학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선교적 동기에서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목회에 헌신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KHL0206@gmail.com 08.1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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