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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입장에서 현대신학 비판 (13)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Ⅷ. 해방신학 (Liberation Theology)

 

(결론)

해방신학은 죄의 개념을 우선적으로 사회적, 정치적인 구조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힘이 죄라고 주장한다. 해방신학의 이러한 죄의 개념은 전통적인 서구 신학의 죄의 개념인 죄의 인간 개인성과 보편성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해방신학은 그리스도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인 모순에서 해방을 가져온 분으로 이해한다. 특히 예수께서 주장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해방과 자유의 나라였다고 한다. 엘살바도르의 예수회 해방신학자 얀 소브리노(Jon Sobrino)에 의하면 예수는 가난한 민중들과 같이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으며, 하나님 나라는 그들 위에 먼저 임한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의 이런 삶과 메시지는 당시의 지배계급과 마땅히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들은 이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가 전한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가 옳은 것임을 공적으로 승인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이들이 최후의 승리를 기대하면서 사회적 불공평과 억압에 저항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해방신학이 해석하는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이다.

해방신학은 교회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공동체로 이해한다.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해방신학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남미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바닥 공동체(Base Community)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카톨릭 해방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권위주의적이고, 계급적이라고 비판한다. 

해방신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한다. 해방신학에 따르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위하여 노동계급과 협력해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교회도 소외된자들과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두고 사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누가복음 1:52-53에서 마리아는 주님을 찬양하면서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했다. 그들에 의하면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육체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을 낮추신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즉 해방신학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유한 자보다 가난한 자를 더욱 좋아하신다는 마리아의 찬양이다.

해방신학은 말라기 3:5을 해석하면서, 품꾼을 억압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눅 4:18도 마찬가지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신학의 성경의 원리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억눌린 자들 편에 있다는 전제를 가진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가르치며 (갈 2:10; 약 2:15-16; 요일3:17), 불의에 맞서 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성경은 재물의 유혹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한다 (막 4:19). 

그러나 해방신학의 문제는 사회적인 관심과 사회적 행동을 복음 메시지보다 더욱 앞선 위치에 둔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은 사회적 관심을 복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근본적(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근본적인 목적이 세상의 부조리를 개혁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그것이 최우선적인 아니라 영적 복음의 역사의 결과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 20-21).

그리고 성경은 물질적(일시적) 인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영원한 것)임을 가르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복음이 가난한 자와 사회적으로 눌린 자들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을 포함하며, 부자와 가난한 자, 사회적으로 높은 자 그리고 낮은 자들을 모두 포함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온 방문객 중에는 목자와 동방박사가 모두 포함되어있다 (눅 2:10). 하나님 나라에는 사회적 두 그룹 모두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에는 부자, 가난한 자, 주인과 종, 모두 차별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회적, 경제적, 인종적, 성별에 따른 분열과 차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가져오신다(엡 4:15).

해방신학의 기초는 마르크스주의이다. 해방신학은 자본주의를 폭력적 혁명으로 전복하고, 만인이 평등한 지상낙원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계급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방신학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폭력 혁명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것은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한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조아 계급투쟁을 위한 도구로 폭력을 정당화한 부분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계급투쟁에서 부르조아를 척결하는 게 바로 선이며 지상낙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의 사명과는 전혀 맞지 아니하며, 마르크스 사상과 흡사하다.

해방신학이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계층이 없는 유토피아 사회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사상은 비현실적이고 비성경적이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에 대한 과장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힘와 능력으로 세상에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며 선을 행하기에 무능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고, 인간의 능력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장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타락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마치 가능한 것으로 잘못 주장한다.

구원과 해방은 인간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이다. 죄와 인간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개념은 해방신학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죄악성을 축소시키고, 그 죄책을 사회적인 제도에 전가시킴으로 인간의 책임을 면제시킨다. 개인적인 죄의 의미를 극소화시키고, 사회적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곧 죄의 근원이 된다. 이것은 기독교적인 사상이 아니라, 마르크스적인 사상이다.

해방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새 사람과 새로운 사회는 성령으로 거듭난 크리스천들이 아니며, 불공평한 사회를 혁명으로 바꾸고 난 후의 개인들과 공동체(교회)가 곧 새사람과 새로운 사회이다. 

해방신학은 압박자와 피압박자의 이분법을 통해 사회를 규정한다. 하나님께서는 피압박자들과 함께 하시고, 압박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편다. 신학은 전체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특수한 상황만을 강조하고 보편성을 무시한다. 해방신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압박자와 피압박자간의 투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힘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시킨다.

해방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의 기본은 인간의 실제적(praxis)이고, 삶의 정황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들은 이런 관점을 통해서 해방신학은 정치적인 측면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해방신학자들의 신학 연구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역사적 상황과 실제적인 삶(praxis)에 근거를 둔다. 해방신학은 신학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역사적 상황만이 유일하게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분적으로 그리고 제한적으로 그 상황에 맞춘다. 그러나 참된 신학과 신앙은 오직 삶의 절대적인 표준과 기초가 되는 성경이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다” (딤후 3:16; 벧후 1:19-21; 엡 2:20; 계 22:18-19; 사 8:20; 눅 16:29-31; 갈 1:8-9) 

해방신학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성,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분석, 구원과 해방에 대한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편협적인 해석, 복음은 곧 세상의 차별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들은 기독교적인 사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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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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