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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입장에서 현대신학 비판 (9)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Ⅴ. 상황윤리 (Situational Ethics) 

 

상황윤리(Situational ethics) 혹은 새 도덕(the new morality)은 행위를 윤리적으로 평가할 때,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특정 맥락만(only the particular context of an act)을 고려하고, 윤리에 대한 판단을 상황적으로 접근한다.

상황윤리의 뿌리는 사르테르(Sartre),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및 하이데거 (Heidegger)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기초하며, 또한 바르트, 불트만, 그리고 틸리히와 같은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실존주의 철학을 기독교 윤리에 적용시켰다.

상황윤리는 특정한 원리와 규칙보다 사랑을 우선시하는데, 20세기 전반에 자유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존 A. T. 로빈슨(John A. T. Robinson), 조셉 플레처(Joseph Fletcher) 에 의해 구제적으로 제안되었다. 이 신학자들은 아가페 사랑, 즉 무조건적인 사랑을 윤리의 최고의 목적으로 정한다 (placing love above all particular). 폴 틸리히 (Paul Tillich)는 “사랑은 궁극적인 법칙이다” (Love is the ultimate law)라고 단언했다. 

플레처 (Fletcher)는 그의 저서 [상황윤리: 새 도덕] (Situation Ethics: The New Morality) 에서 “모든 법률, 규칙, 원칙, 이상 및 규범은 부수적일 뿐이며 (all laws and rules and principles and ideals and norms, are only contingent), 특정 상황에서 사랑에 봉사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only valid if they happen to serve love” in the particular situation) 했다.

플레처는 본래 성공회 신부였지만 나중에 신앙을 포기하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접근 방식은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플레처의 견해에 따르면, “사랑은 상황 자체에 의해 정의된다” (love is defined by the situation itself)했다.

상황윤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는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기준에 의하여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according to what one thinks is most loving)에 따라 판단된다”고 했다. 상황윤리에 의하면, 간음과 같은 일도 어떤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간음도 죄가 아니라, 가장 사랑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다. 

상황윤리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법과 사랑을 분리시키는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의 정의이다.

 

사랑이 우리의 인간의 감정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의해 정의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10). 우리는 항상 사랑이 요구하는 것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데 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우리가 율법을 지킬 때 이웃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신다”(마태복음 5:17~20).

 

2) 상황윤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주권적으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심을 배척시킨다.

 

상황윤리는 도덕이 주변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섭리주가 되시기 때문에 피조물 인간의 도덕의 기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 피조물인 인간이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가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만이 만물의 옳고 그름을 통치하실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고 가르친다. 

 

3) 상황윤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임을 믿지 아니한다. 상황윤리의 사상 체계에는 윤리의 판단 기준과 원칙이 없기 때문에 결국 상대주의에 빠지게한다.

 

개혁주의는 율법의 제 3의 목적 (The third purpose of the law)을 주장한다. 그것은 율법이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사랑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고 말씀하셨다.

 

4) 상황윤리(새 도덕)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우선시하는 윤리이다. 

 

로빈슨 (Robinson)은 성경적인 기독교 윤리(옛 도덕)는 연역적 (deductive)이며,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절대적인 도덕의 규칙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상황윤리(새 도덕)는 귀납적 (inductive) 이어서 사람에서 출발하며, 원칙 (principles)보다 사람(persons)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John Robinson, Honest to God, p. 105 이하). 로빈슨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는 반인간주의 (anti-humanist)이며, 인간 보다는 초자연적인 원칙 (supernatural principles)을 우위로 삼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제시킨 철저하게 인간 중심의 윤리사상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하고, 영적인 성숙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적으로 필요하다. 

 

5) 상황윤리는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 체계의 불변성을 부정한다.

 

 상황윤리는 상황 (the situation) 혹은 “실존적인 실체 (the existential reality)를 강조한다. 행동의 중심적인 판단은 원칙 (principle)이 아니라, 상황 (situation)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기독교 윤리 체계는 불변의 절대적인 원리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원칙과 규범보다는 아가페 사랑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는 비인격적이며, 율법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기초하기 때문에, 기독교 윤리 체계는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상황을 변화시킨다. 

 

6) 상황윤리는 행위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ultimate and only criterion of conduct) 기준은 사랑이라고 한다. 

 

이 사랑은 “타인을 위한 사람 (the man for others) 이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본질적인 악은 사랑의 결여 (lack of love)뿐이며, 본질적인 선은 사랑뿐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The only intrinsic good is love, nothing else at all).” (Joseph Fletcher, Situation Ethics, p. 105 이하).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 사랑을 하나님의 율법과 분리시키면 사랑의 기본적인 본질이 파괴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율법을 통해 알게된다. 롬 13:9-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7) 상황윤리는 도덕적인 의무를 아가페 사랑으로 축소 시킴으로 사회 정의에 대한 책임감을 희미하게 만든다.

 

8) 상황윤리의 사상체계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기초하여 세워졌다. 상황윤리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 심판, 믿음 그리고 구속에 대하여 관계가 없는 사상체계이다.

 

로빈슨은 현대인은 성숙하여 하나님의 도움없이, 스스로 자기의 능력으로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인간은 동일하게 범죄하여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성화의 삶을 살 수 없고, 성경이 가르치는 윤리의 삶을 살 수 없다. 사랑의 실천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으로 그 열매가 나타난다. 

상황윤리는 철저한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하며,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아가페 사랑의 개념은 비성경적이며, 비기독교적이다.

KHL0206@gmail.com

06.0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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