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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엔 조건이 없다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물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 죄인들에 대한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사랑은 참 치사하다. 사랑에도 갖은 조건을 내세우고 이별에는 더 많은 이유들을 주렁주렁 늘어놓는다.

내가 쓴 책 중에 ‘물고기의 갈증’이 있다. 홍수가 나면 세상 천지에 물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는 어렵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지만 마실 수 있는 생수가 없어 갈증하게 된다. 세상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은 얼마나 될까?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독생자를 보내신 것과 같은 그런 사랑은 얼마나 될까?

말이 씨가 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시면서 불만 불평하는 자들 모두가 다 사막에서 죽도록 하셨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사람이 배고픈 자에게 먹어라 한다고 해서 배고픈 이의 입으로 먹을 것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셔라 한다고 해서 그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나의 먹을 것과 마실 물을 필요한 이에게 나눠줄 때만 배고픔도 갈증도 해소가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다. 사랑은 친절이나 관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관심을 보일 때 비로소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사랑에 무슨 조건이 필요하고 이유가 달려야 하겠는가.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사랑하는 겁니다.” 막스 믤러가 한 말이지만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다. 

사람이 비록 죄인이지만 죄인인 사람의 그 상태대로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어 하나님은 독생자를 죄인의 대속물이 되게 하셨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는 이유나 조건이 필요치 않다. 여기에 무엇을 보태야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경없는 의사회, 옥스팜, 그린피스 등 구호나 환경 단체들의 모금광고가 참 많다. 많은 만큼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그래서 그런 광고를 보는 사람들이 마음이 움츠러들거나 인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뜻으로 동참했다면 그 결과에 너무 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주린 사람의 입에 갈한 사람의 입에 내가 흘려보내는 그 선한 동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흘러갈 수 있다는 것으로 그런 곳에 내미는 나의 손이 넉넉했으면 좋겠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그 제목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다. 교인들이 드리는 예물이 사용되는 여부에 따라 그 가치나 목적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이다. 사용 여부는 예물을 드리는 자의 몫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다. 이유나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선교비로 드렸는데 선교비로 쓰이지 않기에 더는 드리지 않겠다거나 구제비로 드렸는데 구제에 쓰이지 않아 다시는 구제예물을 드리지 않겠다는 것은 구차한 이유나 변명이 된다. 사랑의 이유나 조건도 이와 같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 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권정생 선생이 하신 말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남을 돕기 위해 부자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될까? 주린 자와 갈한 자는 지금 당장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하다. 주린 자와 갈한 자가 내가 부자가 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는 절대로 없다. 무엇보다 지금 하지 못하는 자는 나중에도 하지 못한다. 그때는 또 그때대로 이유와 변명이 앞설 것이다. 

엊저녁 엄청난 비가 내렸다. 캄캄한 세상이 다 떠내려가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였다. 천둥과 번개가 폭탄이라도 터지듯 요란하게 번쩍거리고 땅은 더 낮은 곳으로 풀썩 가라앉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이 들어 죽음이 가깝고 나름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두려운 마음으로 잠을 설치면서 아직 숨을 쉬며 살아 있는 지금이 바로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할 때요 사랑의 손을 내밀 때가 아니랴 싶어졌다.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이태리어)!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원하신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지금 세상에 언어유희로만 넘쳐나는 사랑과 자유가 예수님의 보혈로 정화되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는 사랑으로 웃음과 감사가 되기를 바란다.

hanmackim@hanmail.net    

07.2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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