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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기후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날씨가 이상하다. 종잡을 수가 없다. 일기를 예보하는 분들의 어려움이 아주 심할 듯하다. 겨울인가 했더니 봄이다가 곧바로 여름으로 접어들어 사람뿐 아니라 식물들도 혼란스런 모양새다. 벚꽃 개화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하여 축제를 앞당겼다가 대다수가 다 낭패를 당했다. 빨라지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늦어져 주체측도 상인들도 아연실색했고 상춘객들도 꽃이 없는 나뭇가지들만 쳐다보고는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원인은 이상 기후다.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가 아우성이다. 사막에 폭우가 내려 도시가 물바다가 되기도 하고 차를 덮을 만큼의 눈이 내려 도로가 마비되는 등 예측불가능 한 상황들이 동서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 이스라엘과 하마스와 연동된 주변세력들의 대치도 점점 더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예상하기 어려운 난국으로 치닫는 정세로 인심은 더 흉흉해진다. 총체적 난맥이 얽히고설켜 통(通)하는 것이 거의 없다. 

이러한 때에 획기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AI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폰이 출시되었다. 인터넷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수십 개의 언어가 동시통역이 된다고 한다. 영어, 중국어, 아랍어를 몰라도 움츠러들 장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너는 네 말을 하면 기계가 알아서 나와 너의 말을 서로 바꿔서 통역을 해준다니 내가 네 말을 몰라서 네가 내 말을 몰라서 피차 기죽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좋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함은 왜 일까? 바벨탑이 다가오는 까닭이다.

당시의 사람들이 왜 흩어져야 했는가? 말이 통하지 않아서다. 왜? 하나님께서 흩어놓으셨기 때문! 왜 하나님은 서로 잘 통하는 그 좋음을 방해하셨을까?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한 사람들이 도모한 것은 순종이 아니라 반역이었다. 잘 통한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하늘까지 닿을 바벨탑을 쌓아갔다. 하늘(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헛된 욕망을 더 두고 보실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서 잘 통하는 말을 얽히게 하셨다. 

과학인지 의학인지 구분하기 어려우나 사람을 복제하려 한다. AI가 더 발전하면 창조적 사고를 가진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로봇에게 인격(人格)을 부여하는 여부가 벌써부터 설왕설래다.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의 세상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연구 사례가 발표되기도 한다. 과연 가당할까?

기독교의 답은 “아니다”이다. 어떤 과학, 어떤 의학으로도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生氣) 즉 생령(生靈)에는 접근불가다. 이 세상이 할 수 있는 임계점은 결코 진실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불변의 진리(眞理)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여기에 인간의 이해부득(理解不得)이 대두된다.

사람들은 다 똑똑하다고 여긴다. 똑똑하다는 것은 사리분별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갈 길과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음을 가릴 줄 아는 것이 사리분별이다. 그런데 이것이 깨진다. 한편에서는 무지가, 다른 한편에서는 욕심이 그 당연함 앞에서 무너진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이단에 빠진다. 우상에 매료된다. 사기에 걸려든다. 

우매(愚昧)는 어리석은 마음이 동이 트기 전의 캄캄한 어둠에 갇힌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이런 세상이 곧 종말이다. 이상 기후가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현상과 맞물려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AI를 기반으로 하는 각종 발명품들이 곧 우매의 산물이 된다.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으신 것이나 허락하신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는 것은 곧 종말을 부르는 우매다. 이 우매함 속에서도 결코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인간최후의 보루였던 방주(方舟)는 다시 없을 것이란 점이다. 

세상 어딘가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살려둬야 하는 그런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성경에는 노아의 홍수가 임박했을 때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7,8)고 기록되었듯 은혜를 입은 자들을 살리실 구주로 예수님이 오셨으나 이제 다시 오실 예수님은 구주가 아니라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이란 사실이다. 

아마도 머잖아 임할 종말을 자연과 우매를 내세우며 자랑하는 사람들이 경고하고 있다. 이런 이상 기후라면 가을의 수확이 없이 겨울이 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하나님을 닮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을 닮은 AI사람로봇이 교회의 성도 자리에 앉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내일일지도 모른다. 이상 기후와 이상 기류가 자연과 세상에 만연해져 간다. 과연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hanmackim@hanmail.net    

05.0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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