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허전한 자리”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열고 뒤뜰을 보니 정원 가득했던 각종 꽃이 어느샌가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꽃들이 사라진 자리가 많이 허전해 보일뿐 아니라 빈자리의 허전함이 제 마음에 다가와 저를 쓸쓸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정원으로 서둘러 나갔습니다. 꽃밭을 돌아보며 꽃들이 진 자리를 살펴보니 꽃이 진 자리에 꽃들을 대신해서 꽃씨들이 맺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꽃은 어떻든 지도록 되어 있어 '화무십일홍'이니 또는 '화무백일홍'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게 지는 과정이 없이는 다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씨앗은 맺어질 수도 영글 수도 없고, 또한 영근 씨앗이 땅에 떨어짐이 없이는 썩어질 수 없고, 그렇게 썩어지는 과정이 없이는 다시 다가오는 계절에 꽃을 볼 수 없겠구나. 그래서 꽃은 피고 지고를 거듭해야 하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지는 꽃도 아름답고 귀한 것이구나……."

하기야 인생도 꽃처럼 나고 자라고 피고 지는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나도 지금 ‘지는 과정’을 걸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나의 삶에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인데 그런 것들을 교훈으로 삼아 오는 세대가 좀 더 값지고 아름다운 내일을 열어갈 수 있다면 그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귀하게 여기고 가꾸고 돌보며 다듬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봅니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제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가오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시애틀 임마누엘장로교회 원로목사

chansong_hase@hotmail.com

09.0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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