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버린 쓰레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데이터가 된다. 가장 불쾌한 형태일지라도 말이다. 물에 흘려보내지거나, 버려지거나, 재활용되든지 간에 쓰레기는 사람들의 결정과 행동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다. 쉽게 얻기 어려운 정보다.
소위 '쓰레기학자'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주저하지 않고 샅샅이 살피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노력 덕에 시민들의 건강 상태부터 식습관, 어떤 비밀스러운 정권의 실태에 이르기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게 많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인류학을 연구하는 토머스 힐랜드 에릭센은 쓰레기학은 참신하게도 솔직한 학문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실제 삶의 방식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매우 특별한 창구를 제공해준다"라는 것이다.
'쓰레기학(garbology)'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작가 및 정치 활동가인 A. J. 웨버만이 1970년대 초에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쓰레기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발전시킨 인물은 미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랏제다.
'투손 쓰레기 프로젝트'라는, 지금은 잘 알려진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랏제와 동료들은 애리조나주 투손의 주민들이 버린 엄청난 쓰레기 더미를 연구했다. 매립지를 샅샅이 뒤져 쓰레기를 탐사하고 분류한 것이다.
또한 랏제는 사람들에게 식습관 및 음주 습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이후 사전 동의를 얻어 이들의 실제 쓰레기 내용물을 설문 조사 응답지와 비교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불량식품과 술을 먹고 마시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후 수십 년간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들은 공식적으로 정보를 얻을 창구가 없거나 혹은 접근하기 어려울 때면 쓰레기의 힘을 빌렸다.
예를 들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가정이나 행정기관에서 버린 종이 더미를 뒤지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비밀을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한 학자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역사학자 제레미 브라운 박사였다. 공식 기록 보관소에서 제대로 자료를 얻을 수 없는 현실에 실망한 브라운 박사는 주말마다 중국 동부 톈진에 열리는 벼룩시장에 향했다. 이곳에서 헐값에 나온 버려진 서류 뭉치 더미를 뒤지곤 했다.
어떤 종류의 물건을 찾고 있는지 설명을 들은 벼룩시장 상인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브라운 박사가 찾고 있던 것을 찾아줬다. 덕분에 브라운 박사는 여러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가 얻은 서류 중에는 어떻게 지역 정부가 도시에서 시골 지역으로 사람들을 추방했는지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벼룩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엄청난 발견이었습니다. 이 서류들은 버려지고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쓰레기학의 활약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라는, 훨씬 더 폐쇄적이며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국가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 쓰레기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한국의 한 교수가 해안에 밀려온 북한의 상품 포장지 1400여 개를 수거해 연구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의 포장지의 색이 더 풍부해지고 디자인이 세련스러워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상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나라에서 미묘하지만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폴란드 슈체친 대학의 고고학자 그레즈고즈 키아즈시스는 버려진 옛 소련 시절 전술 핵무기 기지 주변에 널린 쓰레기를 모아 연구했다. 이 비밀스러운 기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기밀 해제된 60~70년대 위성 사진뿐만 아니라 항공 사진 및 레이저 스캔 이미지와 같은 원격탐사기술로 기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쓰레기를 조사하면서 한 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삶이 실제로 어땠는지를 더 생생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게 키아즈시스의 설명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쓰레기는 아주 일상적인 물품들이었다. 어린이 장난감뿐만 아니라 면도기, 립스틱, 마스카라, 분유 봉지 등이 널려 있었다. 주둔 부대의 가족들이 이곳에 함께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레고 장난감과 같이 당시 비교적 고가의 장난감도 발견됐는데, 이는 공산주의 시절 일반 폴란드 시민들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를 통해 소련 장교들은 외화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편 버린 사람조차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곧 잊어버리며, 쓰레기는 사회에서 지저분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스웨덴 린넨우스 대학의 고고학자 레일라 파폴리-야즈니는 쓰레기 연구를 통해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민들의 삶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폴리-야즈니는 테헤란 길모퉁이에 있는 쓰레기통 속 생활 쓰레기를 연구한 결과 지역 간 분명한 차이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는 마약 사용이 빈번하다는 증거가 쓰레기통에서 많이 발견됐다.
또 다른 지역의 쓰레기통에는 신문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최근 몇 년간 이 지역에 "불행한 중산층"이 많이 모여 살게 됐다고 한다. 적어도 하층민보다는 신문을 구독할 가능성이 큰 인구 집단이다.
실제로, 쓰레기에 관해선 주의 집중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쓰레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쓰레기학은 개인과 사회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기에 매력적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쓰레기학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의 양과 복잡성에 대해 우리가 취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쓰레기학자들은 쓰레기 더미를 애써 파헤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시간을 들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렸는지 살피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쓰레기학자들이다.
06.18.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