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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예수님 경외하는 ì¼ì€ í¬ë¦¬ìŠ¤ì²œìœ¼ë¡œ 가장 중요한 행위

Desiringgod.org, ê³µì  ì˜ˆë°°ì—ì„œ 누릴 수 있는 5가지 ì€í˜œì™€

ê³µì ì˜ˆë°°ì—ì„œ ê°œì¸ì  유ìµì¶”구와 ì˜ˆë°°ì˜ ëŒ€ìƒ í•˜ë‚˜ë‹˜ì¶”êµ¬ëŠ” 구분 

ì˜ì  ì¼ê¹¨ì›€, ì‹ ì•™ 확ì¦, ì ì§„ì  ì„±ìž¥, 타ì¸ì˜ ì¸ë„, ê¸°ì¨ ì¦ê°€ 

 

서로가 함께 모여 ì˜ˆìˆ˜ë‹˜ì„ ê²½ì™¸í•˜ëŠ” ì¼ì€ í¬ë¦¬ìŠ¤ì²œìœ¼ë¡œì„œ 우리가 행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바로 ìš°ë¦¬ì˜ ì‚¶ì— ì˜ì ì¸ ë¶ˆê½ƒì„ ì¼ìœ¼ì¼œ ê³„ì† íƒ€ì˜¤ë¥´ê²Œ 하기 때문ì´ë‹¤. ì´ëŸ¬í•œ ê³µì  ì˜ˆë°°ëŠ” 함께 나누는 ë§ì”€ê³¼ ê¸°ë„ ë° êµì œë¥¼ 통해 우리가 í•˜ë‚˜ë‹˜ì˜ ì€í˜œë¥¼ 지ì†ì ìœ¼ë¡œ 경험하ë„ë¡ ë•ëŠ” ìˆ˜ë‹¨ì˜ ì—­í• ì„ í•œë‹¤.

하지만 예배를 í•˜ë‚˜ì˜ ìˆ˜ë‹¨ìœ¼ë¡œë§Œ ìƒê°í•˜ëŠ” ì¼ì—는 ‘위험’ì´ ë”°ë¥¼ 수 있다. 진정한 예배는 근본ì ìœ¼ë¡œ 마ìŒì˜ 경험ì´ì§€ ê·¸ ì™¸ì˜ ‘다른 ëª©ì ’ì„ ìœ„í•œ ìˆ˜ë‹¨ì´ ì•„ë‹ˆê¸° 때문ì´ë‹¤. 그래서 ê³µì  ì˜ˆë°°ì—ì„œ ê°œì¸ì ì¸ 유ìµì„ 추구하는 ì¼ê³¼ ì˜ˆë°°ì˜ ëŒ€ìƒì´ì‹  í•˜ë‚˜ë‹˜ì„ ì¶”êµ¬í•˜ëŠ” ì¼ì€ êµ¬ë¶„ë  í•„ìš”ê°€ 있다. ì´ ë‘˜ì„ êµ¬ë¶„í•˜ëŠ” ì¼ì´ 쉽지는 않지만 ì´ë¥¼ 기억해 훈련하는 ì¼ì€ 매우 중요한 ì˜ì  실천ì´ë‹¤.

ëˆ ìœ„íŠ¸ë‹ˆ(Don Whitney)ì— ë”°ë¥´ë©´ ê³µì  ì˜ˆë°°ì—는 홀로 드리는 예배ì—ì„œ 경험할 수 없는 íŠ¹ë³„í•¨ì´ ìžˆë‹¤. 다른 성ë„들과 '함께 모여' ìžˆì„ ë•Œë§Œ 경험할 수 있는 í•˜ë‚˜ë‹˜ì˜ ì€í˜œì™€ ì¶•ë³µì´ ìžˆê¸° 때문ì´ë‹¤. 우리가 받는 ì€í˜œì™€ ì¶•ë³µì´ ë§Žì´ ìžˆì§€ë§Œ ê³µì  ì˜ˆë°°ì—ì„œ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유ìµì€ 다섯 가지로 ìš”ì•½ë  ìˆ˜ 있다(Five benefits of Corporate worship).

 

 

1. ì˜ì ìœ¼ë¡œ 깨어남

 

우리는 종종 ì˜ì ìœ¼ë¡œ 안개처럼 í¬ë¯¸í•œ ìƒíƒœì—ì„œ ê³µì  ì˜ˆë°°ë¥¼ 드리러 온다. 힘들고 번잡한 ì£¼ì¤‘ì— íƒ€ë½í•œ 세ìƒì—ì„œ 힘겨운 투ìŸì„ 하고 ìžˆì„ ë•ŒëŠ” 우리가 ê¶ê·¹ì ìœ¼ë¡œ 추구해야 í•  대ìƒê³¼ 당장 ëˆˆì— ì¤‘ìš”í•´ ë³´ì´ëŠ” í˜„ì‹¤ì„ ëª…í™•í•˜ê²Œ 구분하기가 쉽지 ì•Šì„ ìˆ˜ 있다. 그러므로 ê³µì  ì˜ˆë°°ë¥¼ 통해서 우리는 ì •ì‹ ì„ ë§‘ê²Œ 하고 ì˜ì„ 재조정해 늘어진 마ìŒì„ 다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ê³µì  ì˜ˆë°°ê°€ ìžì‹ ì„ ì˜ì ìœ¼ë¡œ ì¼ê¹¨ì›Œì£¼ëŠ” ë° ê°•ë ¥í•˜ê²Œ ì˜í–¥ì„ 준다고 했다. “집ì—ì„œ 홀로 예배를 드릴 때보다는 êµíšŒì—ì„œ 여러 ì‚¬ëžŒì´ í•¨ê»˜ 모여 예배를 드릴 ë•Œ ë‚´ 마ìŒì´ 훨씬 ë” ëœ¨ê²ê³  í™œë ¥ì´ ìžˆë‹¤.”

ì˜ê°ì´ 있는 시편 ì €ìžì˜ ê²½í—˜ì€ ë£¨í„°ì˜ ë§ë³´ë‹¤ ë” ë‚«ë‹¤. 시편 73편ì—ì„œ, ì €ìžëŠ” ì•…ì¸ì˜ í˜•í†µí•¨ì„ ë³´ê³  ì ˆë§ì ì¸ 마ìŒì„ 고백함으로 시작한다(ì‹œ73:2-15). 하지만 그가 í•˜ë‚˜ë‹˜ì˜ í˜„ì¡´ìœ¼ë¡œ 나아오ìž, ê·¸ì˜ ì‹œì•¼ë¥¼ 가리고 ìžˆë˜ ì•ˆê°œê°€ 걷히게 ëœë‹¤. “ë‚´ê°€ 어쩌면 ì´ë¥¼ 알까 하여 ìƒê°í•œì¦‰ ê·¸ê²ƒì´ ë‚´ê²Œ 심한 ê³ í†µì´ ë˜ì—ˆë”니 í•˜ë‚˜ë‹˜ì˜ ì„±ì†Œì— ë“¤ì–´ê°ˆ ë•Œì—야 ê·¸ë“¤ì˜ ì¢…ë§ì„ ë‚´ê°€ 깨달았나ì´ë‹¤”(ì‹œ73:16-17).

시편 ì €ìžëŠ” 처ìŒì— 괴로움 ê°€ìš´ë° ìžˆì—ˆë‹¤. 즉, ì˜ì  안개가 매우 짙게 드리워진 ìƒíƒœì˜€ë‹¤. 하지만 예배를 드릴 ë•Œ ê·¸ 안개가 걷히는 ê²½í—˜ì„ í•˜ê³ , ê·¸ 다ìŒì—는 찬양으로 ì ˆì •ì„ í‘œí˜„í•œë‹¤. “하늘ì—서는 주 ì™¸ì— ëˆ„ê°€ 내게 있으리요 ë•…ì—서는 ì£¼ë°–ì— ë‚´ê°€ 사모할 ì´ ì—†ë‚˜ì´ë‹¤ ë‚´ 육체와 마ìŒì€ 쇠약하나 í•˜ë‚˜ë‹˜ì€ ë‚´ 마ìŒì˜ ë°˜ì„ì´ì‹œìš” ì˜ì›í•œ 분깃ì´ì‹œë¼”(ì‹œ73:25-26).

우리ì—ê²Œë„ ì´ëŸ¬í•œ 경우가 얼마나 ë§Žì´ ìžˆì—ˆëŠ”ê°€? ì˜ì  ë¬´ê¸°ë ¥ì„ ëŠë‚„ ë•Œ, 우리는 ê³µì  ì˜ˆë°°ë¥¼ 멀리하기보다는 ê·¸ ì˜ˆë°°ì˜ ì¼ê¹¨ì›€ì„ ë”ìš± 맛볼 필요가 있다. 마ìŒì´ 가장 ì¹¨ì²´ë¼ ìžˆì„ ë•Œê°€ 곧 예배가 가장 필요할 때다. “하나님께 ê°€ê¹Œì´ í•¨ì´ ë‚´ê²Œ ë³µì´ë¼”(ì‹œ73:28).

 

2. ì‹ ì•™ì˜ í™•ì¦

 

ë‘ ë²ˆì§¸ 유ìµì€ ê³µë™ì²´ì  ì—­ë™ì´ë‹¤. ê³µì  ì˜ˆë°°ëŠ” 우리ì—게 소ì†ê°ê³¼ êµì œë¥¼ 나눌 수 있는 ì‹œê°„ì¼ ë¿ ì•„ë‹ˆë¼, ìš°ë¦¬ì˜ ì‹ ì•™ì„ í™•ì¸í•  수 있는 기회ì´ê¸°ë„ 하다.

홀로 세ìƒì— 대항한 아타나시우스와 루터와 ê°™ì€ ì¸ë¬¼ì„ 존경할 ìˆ˜ë„ ìžˆì§€ë§Œ í•˜ë‚˜ë‹˜ì€ ìš°ë¦¬ê°€ 홀로 있는 ìƒí™©ì´ 좋지 못하다고 ë§ì”€í•˜ì…¨ìŒì„ 기억할 필요가 있다(ì°½2:18). ì´ ì˜ì›…ë“¤ì€ ì•”ìš¸í•œ ì‹œì ˆì˜ ì‚°ë¬¼ì´ë‹¤. ê·¸ë“¤ì€ ë¹„ë¡ ì‹ ì•™ê³µë™ì²´ì˜ 지ì›ì„ 받지는 못했지만 ì–´ë–¤ ì˜ë¯¸ì—ì„œ 홀로 투ìŸí•œ ê²ƒì€ ì•„ë‹ˆì—ˆë‹¤.

ìš°ë¦¬ë„ ë§ˆì°¬ê°€ì§€ë‹¤. 우리는 친구 ì—†ì´ í™€ë¡œ ì„œë„ë¡ ì°½ì¡°ë˜ì§€ 않았다. 엘리야 때처럼 ì—­ê²½ì˜ ì‹œëŒ€ì—ë„ í•˜ë‚˜ë‹˜ì€ ì§„ë¦¬ë¥¼ í¬ê¸°í•˜ì§€ ì•Šì€ 7ì²œëª…ì„ ê·¸ì—게 보내주신다(왕ìƒ19:18). í•˜ë‚˜ë‹˜ì€ ìš°ë¦¬ë¥¼ ê³µë™ì²´ë¡œ 만드시고 ê·¸ ê³µë™ì²´ë¥¼ ‘êµíšŒ’ë¼ ë¶€ë¥´ì‹œë©° 우리를 ì´ ìœ„ëŒ€í•œ 지역 ê³µë™ì²´ì˜ ì¼ì›ìœ¼ë¡œ 삼으셔서 ê·¸ ì‹ ì•™ì„ í™•ìž¥ì‹œí‚¤ì‹ ë‹¤. êµíšŒê³µë™ì²´ëŠ” 믿ìŒì„ 강하게 하며 우리가 믿는 ë¶„ì„ ì§„ì •ìœ¼ë¡œ ì•Œë„ë¡ í™•ì‹ ì‹œì¼œ 준다(딤후1:12).

지역 êµíšŒì—ì„œì˜ ì˜ˆë°°ëŠ” ë³´íŽ¸ì  êµíšŒì—ì„œ 드리는 ê³µì  ì˜ˆë°°ë¥¼ 암시한다. ì˜ˆìˆ˜ë‹˜ì€ ì—´ë°©ì´ ìžì‹ ì˜ 백성ì´ë©° 언젠가는 모든 나ë¼ë¥¼ ê·¸ë¶„ì˜ ë°±ì„±ìœ¼ë¡œ í¬í•¨ì‹œí‚¤ì‹¤ 것ì´ë‹¤(계7:9).

 

3. ì ì§„ì  ì„±ìž¥

 

ê³µì  ì˜ˆë°°ëŠ” ìš°ë¦¬ì˜ ì˜ì  ì„±ìˆ™ì— ìžˆì–´ ê¼­ 필요한 ì—­í• ì„ í•œë‹¤. 우리는 ì˜ˆìˆ˜ë‹˜ì„ ë³¸ë°›ì•„ ì ì§„ì ì¸ ì„±ìž¥ì„ í•˜ëŠ” 존재들ì¸ë°(롬8:29), ì´ë•Œ ê³µì  ì˜ˆë°°ëŠ” “다… 그와 ê°™ì€ í˜•ìƒìœ¼ë¡œ 변화하여 ì˜ê´‘ì—ì„œ ì˜ê´‘ì— ì´ë¥´ë‹ˆ”(고후3:18)ë¼ê³  í•œ ë§ì”€ì²˜ëŸ¼ 우리가 ì˜ˆìˆ˜ë‹˜ì„ í•¨ê»˜ ë°”ë¼ë³¼ 수 있ë„ë¡ ì´ëŒê¸° 때문ì´ë‹¤.

팀 켈러가 ë§í•˜ë“¯ì´ í¬ë¦¬ìŠ¤ì²œì˜ 성화는 ê³µì  ì˜ˆë°°ì— ì°¸ì—¬í•´ ë³µìŒì„ ë“¤ì„ ë•Œ ì¼ì–´ë‚  수 있다. ì„±ë ¹ì˜ ê°í™”ë¡œ 함께 성경 ë§ì”€ì„ ì½ê³  기ë„ìžê°€ 기ë„하며 성가대가 ì°¬ì–‘ì„ í•˜ê±°ë‚˜ í˜¹ì€ ì°¸ 진리가 ì„ í¬ë˜ëŠ” 설êµë¥¼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단순히 í¬ë¦¬ìŠ¤ì²œìœ¼ë¡œì„œ 어떻게 윤리ì ìœ¼ë¡œ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ë•Œë³´ë‹¤ë„ ê³µì  ì˜ˆë°°ì˜ ì—¬ëŸ¬ ìˆœê°„ì„ í†µí•´ 치유ë˜ëŠ” ê²½í—˜ì„ í•˜ëŠ” 것ì´ë‹¤.

우리가 ê³µì  ì˜ˆë°°ë¥¼ 드릴 ë•Œ í•˜ë‚˜ë‹˜ì˜ ì‚¬ëž‘ì€ ìš°ë¦¬ì˜ ì •ì‹ ë¿ ì•„ë‹ˆë¼ ìš°ë¦¬ì˜ ë§ˆìŒì„ 완전히 변화시킨다.

 

4. 다른 ì‚¬ëžŒì˜ ì¸ë„

 

ê³µì  ì˜ˆë°°ì™€ ê°œì¸ ì˜ˆë°°ì˜ ì¤‘ìš”í•œ ì°¨ì´ì  하나는 우리가 예배를 주ë„하는 위치와 ê´€ë ¨ì´ ìžˆë‹¤. ê³µì  ì˜ˆë°°ëŠ” 믿ìŒì´ 근본ì ìœ¼ë¡œ 우리ì—게 주어지는 í•˜ë‚˜ë‹˜ì˜ ì„ ë¬¼ìž„ì„ ì•Œë ¤ì¤€ë‹¤. ê°œì¸ì ìœ¼ë¡œ 예배를 드릴 ë•Œ 우리는 ì–´ë–¤ ë©´ì—ì„œ 우리 ìžì‹ ì„ ì¸ë„한다. 그와 달리 ê³µì  ì˜ˆë°°ë¥¼ 드릴 때는 다른 ì‚¬ëžŒì˜ ì¸ë„를 받게 ëœë‹¤.

ê°œì¸ ì˜ˆë°°ë¥¼ 드릴 ë•Œ 우리는 ìš´ì „ìžì˜ ìžë¦¬ì— 앉아있다. ì–´ë–¤ ì„±ê²½êµ¬ì ˆì„ ì½ì„지 언제 기ë„할지 ë¬´ì—‡ì„ ìœ„í•´ 기ë„할지 성경 ì½ê¸°ì™€ 묵ìƒì— 얼마나 ì‹œê°„ì„ ì†Œìš”í• ì§€ ì–´ë–¤ ì°¬ì†¡ì„ ë¶€ë¥¼ì§€ ìžì‹ ì—게 ë³µìŒì˜ 진리를 어떻게 전할지 그리고 ë¬´ì—‡ì„ ì ìš©í• ì§€ë¥¼ 우리가 결정한다. 하지만 ê³µì  ì˜ˆë°°ì—ì„œ 진행ë˜ëŠ” 예배ì˜ì‹ì— ì‘답하는 ìžë¡œ ìž…ìž¥ì´ ë°”ë€Œê²Œ ëœë‹¤. 다른 ì‚¬ëžŒì´ ì„¤êµí•˜ê³  기ë„하며 ì°¬ì†¡ì„ ì„ íƒí•˜ê³  ê° ìˆœì„œì—ì„œ 얼마나 ì‹œê°„ì„ ì†Œìš”í• ì§€ë¥¼ 결정한다. 우리는 ê·¸ ì¸ë„를 받아 ë”°ë¼ê°€ëŠ” ìž…ìž¥ì— ìžˆë‹¤.

ê°œì¸ ì˜ˆë°° ì‹œê°„ì— ì˜ˆë°°ì˜ ìš”ì†Œë“¤ì„ ìš°ë¦¬ê°€ ì„ íƒí•  수 있다는 ì ì€ 놀ë¼ìš´ ì¼ì´ì§€ë§Œ 다른 ì‚¬ëžŒì˜ ì¸ë„를 ë”°ë¼ í•˜ë‚˜ë‹˜ê³¼ êµì œí•˜ëŠ” ì¼ë„ 우리ì—게 유ìµí•˜ë‹¤. ê³µì  ì˜ˆë°°ëŠ” ìžì‹ ì˜ ë°©ì‹ëŒ€ë¡œ í•˜ë‚˜ë‹˜ì„ ì¶”êµ¬í•˜ì§€ ì•Šë„ë¡ ìš°ë¦¬ë¥¼ 훈련시키고 다른 ì‚¬ëžŒì˜ ì¸ë„를 수용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5. 기ì¨ì˜ ì¦ê°€

 

마지막으로 ê³µì ìœ¼ë¡œ ëª¨ì¸ ìƒí™©ì—ì„œ 예배를 드릴 ë•Œ 우리는 í•œ ì°¨ì› ë” ì»¤ì§„ 기ì¨ì„ 경험한다. 우리가 ì˜ˆìˆ˜ë‹˜ì„ ‘함께’ 경배할 ë•Œ, í•˜ë‚˜ë‹˜ì— ëŒ€í•œ 경외가 ê³ ì¡°ë˜ê³ , ê°ˆë§ì´ 깊어지며 기ì¨ì´ ì¦í­ëœë‹¤.

기ì¨ì€ 나누면 ë°°ê°€ ëœë‹¤. ê³µì  ì˜ˆë°°ì—ì„œ 우리가 고유하게 ì¦ê¸°ëŠ” ‘ì€í˜œì™€ 축복’ì€ ì˜ì ìœ¼ë¡œ 깨어남, ì‹ ì•™ì˜ í™•ì¦, ì ì§„ì  ì„±ìž¥, 다른 ì‚¬ëžŒì˜ ì¸ë„ ê·¸ ì´ìƒì´ë‹¤. 서로 모여 함께 í•˜ë‚˜ë‹˜ì„ ë†’ì¼ ë•Œ 우리는 예수님 안ì—ì„œ ë” ê¹Šì€ ê°ˆë§ê³¼ ë” í° ê²½ì™¸ì˜ ê¸°ì¨ì„ 경험한다.

ê³µì  ì˜ˆë°°ì—ì„œ ëŠë¼ëŠ” ì€í˜œì˜ ë¹„ê²°ì€ ìš°ë¦¬ê°€ 예수님과 ê·¸ë¶„ì˜ ì˜ê´‘ì„ ì†Œë§í•  수 ìžˆì„ ë¿ ì•„ë‹ˆë¼, ì˜í˜¼ì˜ ë§Œì¡±ì„ í™€ë¡œ 얻지 ì•Šê³  믿ìŒì˜ 형제ìžë§¤ì™€ 함께 누릴 수 있다는 ì‚¬ì‹¤ì— ìžˆë‹¤.

 

 

기ë„칼럼

 

아홉 번 죽는 조기

 

산다고 í•´ì„œ 다 사는 ê²ƒì´ ì•„ë‹™ë‹ˆë‹¤. 살았다는 ì´ë¦„ì„ ê°€ì¡Œìœ¼ë‚˜ 실ìƒì€ ì£½ì€ ì¸ìƒì´ 있습니다. ì‚¶ì˜ ì˜ë¯¸ë„ ì—†ì´ í•˜ë£¨í•˜ë£¨ 살아갑니다. 어쩌면 사는 ê²ƒì´ ì•„ë‹ˆë¼ ì‚´ì•„ì§€ê³  있습니다. 다른 ì‚¬ëžŒì€ ì†ì—¬ë„ ìžì‹ ì„ ì†ì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사는 ê²ƒì´ ì°¸ëœ ì‚¶ì„ ì‚¬ëŠ” 것ì¸ì§€, ìžì‹ ì—게 ì •ì§í•´ì•¼ 합니다.

사는 것보다 ë” ì¤‘ìš”í•œ ê²ƒì€ ì‚¬ëžŒë‹µê²Œ 사는 것입니다. ì–´ëŠ ê³ ë“±í•™êµ ë‹´ìž„ì„ ìƒì´ 졸업ìƒë“¤ì—게 ì¹ íŒ ê¸€ì”¨ë¡œ “人人人人”, 사람 ‘츒(人)ìžë¥¼ 네 ê°œ ì ì–´ë†“ê³  훈시를 했습니다. “사람ì´ë©´ 다 사람ì´ëƒ? 사람다워야 사람ì´ì§€.” ì´ì œ 세ìƒìœ¼ë¡œ 나가는 사회 초년병들ì—게 먼저 ì‚¬ëžŒì´ ë˜ë¼ê³  당부한 것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ê²ƒì€ ê°€ì¹˜ 있게 사는 ê²ƒì„ ë§í•©ë‹ˆë‹¤. ì¸ê°„ì´ ìƒì¡´ì„ 위해서만 산다면 하루살ì´ë‚˜ ë‹¤ë¦„ì´ ì—†ìŠµë‹ˆë‹¤. “오래 사ëŠëƒ? 성공하ëŠëƒ?”ê°€ ì¸ìƒì˜ ë³¸ì§ˆì´ ì•„ë‹™ë‹ˆë‹¤. í•˜ë‚˜ë‹˜ì˜ ëœ»ì„ ì´ë£¨ë©° ë‚¨ì„ ìœ ìµí•˜ê²Œ 하는 ê²ƒì´ ì‚¬ëžŒì˜ ë³¸ë¶„ìž…ë‹ˆë‹¤. 빈ì†ìœ¼ë¡œ 왔다가 빈ì†ìœ¼ë¡œ 가는 ì§§ì€ ìƒìž…니다. ì‚¶ì˜ ëª©ì ê³¼ ì‚¬ëª…ì„ ê¹¨ë‹¬ì•„ì•¼ ë³´ëžŒëœ ì¸ìƒì„ ì‚´ 수 있습니다.

ì˜ˆìˆ˜ë‹˜ì€ ìš”í•œë³µìŒ 12장 24ì ˆì—ì„œ ë§ì”€í•˜ì…¨ìŠµë‹ˆë‹¤. “í•œ ì•Œì˜ ë°€ì´ ë•…ì— ë–¨ì–´ì ¸ 죽지 아니하면 í•œ ì•Œ 그대로 있고 죽으면 ë§Žì€ ì—´ë§¤ë¥¼ 맺ëŠë‹ˆë¼.” 사람답게 사는 ê¸¸ì€ ë‚´ê°€ 죽는 ê¸¸ë°–ì— ì—†ìŠµë‹ˆë‹¤. 죽는다는 ê²ƒì€ ì£¼ì•ˆì—ì„œ 나를 부ì¸í•˜ëŠ” 것입니다.

ìž‘ê°€ ê³µìˆœí•´ì˜ ìˆ˜í•„ ‘비굴한 굴비’ë¼ëŠ” ê¸€ì— ë³´ë©´, 조기가 굴비가 ë˜ë ¤ë©´ 아홉 번 죽는다고 합니다. ê·¸ë¬¼ì— ê±¸ë ¤ 죽고, ì†Œê¸ˆì— ì ˆì—¬ 죽고, 냉ë™ë˜ì–´ 죽고, ëˆì— 졸려 죽고, ê±´ì¡°í•  ë•Œ ë§ë¼ 죽고, 냉ë™ì‹¤ì— 다시 들어가 죽고, ì†ì§ˆí•˜ëŠ” ì¹¼ 아래 죽고, 불 위ì—ì„œ ìµì–´ 죽고, 드디어 ì¸ê°„ì˜ ìž…ì†ìœ¼ë¡œ 사ë¼ì ¸ 장렬히(?) 전사(戰死)한다는 것입니다.

조기가 맛있는 굴비로 재탄ìƒí•˜ê¸° 위하여 아홉 번ì´ë‚˜ 죽는 ê²ƒì„ ìƒê°í•  ë•Œ 마ìŒì´ 찡합니다. 사람답게 성ë„답게 살기 위하여 얼마나 ë§Žì´ ì£½ì–´ì•¼ 할까요? ë˜ ì£½ê³  ë˜ ì£½ì–´ì•¼ 합니다.

“형제들아 ë‚´ê°€ ê·¸ë¦¬ìŠ¤ë„ ì˜ˆìˆ˜ 우리 주 안ì—ì„œ 가진바 너í¬ì— 대한 ë‚˜ì˜ ìžëž‘ì„ ë‘ê³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뼔(ê³ ì „15:31).

03.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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