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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석의 하나님

강태광 목사 (월드쉐어USA대표)

루이스의 생애와 작품을 살피면서 많이 배운다. 흠모하고 부러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몇 가지 실천 가능한 것들도 발견한다. 이렇게 발견하고 배우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평소 삶으로 쌓아가는 삶의 실력이다. 그는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히 살았고 그 삶의 결실들을 정리하여 결과물을 만들었다. C. S. 루이스가 남긴 40여 편의 저서는 루이스가 평소에 쓴 칼럼, 평소에 나눈 설교, 방송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루이스는 30여 년을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살았지만 안정되지 못했다. 말년에 케임브리지에서 중세문학 교수직을 얻어 이동했다. 그래서 그는 늘 분주한 삶을 살았지만, 루이스는 일상의 삶에서 충실했다. 루이스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에 최선을 다했다. 루이스는 원고 요청이나 설교 및 강연 요청을 거의 거절하지 않았다고 하고 늘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한다.

1939년 10월 22일 주일 밤 루이스는 옥스퍼드 내의 성마리아 교회에서 대학생 예배에 설교했다. 2차 대전에 영국이 참전을 선언한 직후에 드린 이 예배 후 루이스는 수차례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의 원고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루이스 연구가요 테일러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 조 리키(Joe Ricke)박사는 성 마리아 교회 대학생 예배에서 설교한 루이스의 원고에는 수많은 메모가 가득하다고 전한다. 설교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루이스 모습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한 결과 좋은 원고가 생산되었고 다음 기회에 초청을 받았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생활 중에 중요한 두 모임에 참가했었다. 이 두 모임이 루이스의 삶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첫 번째는 문학 모임인 잉클링스(Inklins)다. 친구 영문학자 톨킨과 함께 이끈 잉클링스는 루이스에게 창작에 필요한 창의성과 글을 계속 쓰는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었다. 치열한 토론과 비평 그리고 격려를 통해 루이스를 문학적 소양을 쌓고 작가로 성장하게 했다. 

둘째는 기독교 신앙 난제를 토론했던 ‘옥스퍼드 소크라테스 클럽’이다. 소크라테스 클럽은 잉클링스와 전혀 다른 점에서 루이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42년부터 소크라테스 클럽에 참가한 루이스는 이 클럽의 지도교수와 회장을 지냈다. 이 모임은 기독교와 관련된 지적 난제들을 토론하는 클럽이었다. 기독교의 쇠락을 걱정하던 대학 당국이 설립했는데, 한주는 기독교인이 논문을 발표한 뒤 이에 대해 불신자가 답변하고, 그 다음 주에는 불신자가 논문을 발표하고 기독교인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옮긴 1954년까지 루이스는 13년간 실질적 리더로 소크라테스 클럽을 이끌었다. 소크라테스 클럽의 활발한 활동으로 기독교가 지적 수세에 몰려 있었던 옥스퍼드 대학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아울러 학문영역에서 기독교 위상을 높이고 기독 지성인들이 학문과 신앙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이스가 기독교 변증학자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옥스퍼드 소크라테스 클럽은 옥스퍼드 대학교를 포함한 당대 젊은 지성인들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크라테스 클럽은 매주 월요일 밤에 모였다. 비교적 늦은 시간인 8시 15분에 시작해서 10시 30분에 마쳤다. 통상 60명에서 100명의 젊은이가 모였다고 한다. 굉장히 활발한 모임이었다. 가장 많이 모였던 소크라테스 클럽의 모임에는 250명 모인 적도 있다고 전한다. 

이 소크라테스 클럽은 <Socratic Digest>라는 기관지를 운영했다. 이 소크라테스 다이제스트에 루이스는 자주 기고를 했다. 루이스의 <피고석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많은 칼럼이 <Socratic Digest>에 기고했던 글들이다. 이 책에 있는 <교리없는 종교>는 소크라테스 클럽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했고, <소크라테스 클럽의 설립>이라는 글은 <소크라테스 다이제스트> 창간호에 실린 머리글이라고 한다. 

<피고석의 하나님>은 이 책 2부에 있는 한 꼭지의 글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현대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할 때 만나는 어려움들>이었는데 루이스의 비서였고 평생을 C. S. 루이스의 자료 발굴과 정리에 헌신했던 월터 후퍼(Walter Hooper)가 <피고석의 하나님>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로 사망하기 전까지 루이스 전도사로 평생 살았다.

<피고석의 하나님>이라는 책은 루이스가 쓴 칼럼 48개로 구성되어 있다. 48개의 칼럼은 신학적, 윤리적 질문들에 답하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글들이다. 그중에 이 책의 제목이 된 칼럼 <피고석의 하나님>의 서두에서 루이스는 이 글은 쓴 목적을 밝힌다. ‘현대의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려 할 때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에 관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라고 루이스가 밝힌다. 전도하는 데 어려운 문제를 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루이스는 전도의 장애물이 언어적인 어려움과 청중의 머릿속에 죄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대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맘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의식이 있었는데, 교만한 현대인은 죄책감이 없다. 과거 사람들은 스스로 죄인이고 병든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스스로 의인이고 건강한 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루이스는 ‘고대인은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가듯 하나님께(또는 신들에게) 나아갔습니다. 현대인의 경우엔 그 역할이 뒤바뀌었습니다. 인간이 재판장이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십니다. 인간은 상당히 이해심 많은 재판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 가난, 질병을 허용하신 일에 대해 조리에 맞는 항변을 내놓으시면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중략)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판사석에 앉아 있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시다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피고석의 하나님>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지성주의 때문에 전도가 힘들다고 밝힌다. 실제로 루이스는 이웃에게 거의 전도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그가 기독교인의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루이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예비적 전도(Preparation Evangelism)’라 한다. 루이스의 인문학과 글쓰기는 반기독교적 사회에서 전도의 길을 닦는 작업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반기독교 사회로 급락하던 영국과 세계 지성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Kangtg1207@gmail.com

06.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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