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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ìŒì˜ 삶ì´ëž€?

(히브리서 11장 1-6절)

차군규 목사 (ìˆœë³µìŒ ë¶€ì²œ êµíšŒ)

오늘날 ì‚¬ëžŒë“¤ì€ ì¸ê°„ ì¤‘ì‹¬ì˜ ìˆ² ì†ì—ì„œ 과학ì ì¸ ì‚¬ê³ ì˜ ëŠªì— ë¹ ì ¸ ì¸ê°„ì ì¸ ì´ë¡ ë§Œìœ¼ë¡œë§Œ 살아가고 있습니다. ì‚¬ëžŒë“¤ì€ ê³¼í•™ê¸°ìˆ  ìœ„ì— ì´ìƒ 국가를 건립할 수 있다고 ìƒê°í•˜ì—¬ ‘테í¬ë…¸í”¼ì•„’ë¼ëŠ” 신조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즉 ì‚¬ëžŒë“¤ì€ ë¬´ì„œìš´ ìžê¸°ë„ì·¨ì— ë¹ ì ¸ 하나님 없는 ì¸ê°„ì˜ ì™•êµ­ì„ ê¿ˆê¾¸ê³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ì ìœ¼ë¡œ 현대ì¸ë“¤ì€ 오히려 ë없는 싸움과 불신, ì ì  늘어가는 범죄로 고통 받고 있으며 죽ìŒì˜ ê³µí¬ì— 떨고 있습니다. ê·¸ë“¤ì€ ì‚¶ì˜ ëª©ì ê³¼ ì˜ë¯¸ë¥¼ 모르고 ì´ ì¢…ë§ì˜ 세ìƒê³¼ 함께 ìŠ¤ìŠ¤ë¡œë„ ë©¸ë§í•  것ì´ë¼ëŠ” ê³µí¬ ì†ì—ì„œ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ì´ëŸ¬í•œ 환경 ì†ì—ì„œ ë‘려움 ì—†ì´ í‰ì•ˆí•˜ê²Œ 살아가는 유ì¼í•œ ê¸¸ì€ í•˜ë‚˜ë‹˜ì„ ë¯¿ê³  경외하는 ì‹ ì•™ ë°–ì—는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ë„를 ì˜ì ‘í•œ ì‚¬ëžŒì´ ëˆ„ë¦¬ëŠ” í‰ê°•ì€ ëˆ„êµ¬ë„ ë¹¼ì•—ì„ ìˆ˜ 없으며 ì´ëŸ¬ëž€ ì‚¬ëžŒì˜ ì‚¶ì€ í’성하게 ë˜ëŠ”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ìžëŠ” â€œì˜¤ì§ ë‚˜ì˜ ì˜ì¸ì€ 믿ìŒìœ¼ë¡œ ë§ë¯¸ì•”ì•„ ì‚´ë¦¬ë¼ ë˜í•œ 뒤로 물러가면 ë‚´ 마ìŒì´ 저를 기ë»í•˜ê¸° 아니하리니â€ë¼ê³  í•˜ë‚˜ë‹˜ì˜ ë§ì”€ì„ 기ë¡í•˜ê³  있으며 ë°”ìš¸ì€ â€œìš°ë¦¬ê°€ 믿ìŒìœ¼ë¡œ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â€ê³  ë§í–ˆìŠµë‹ˆë‹¤.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ìŒìœ¼ë¡œ ì‚´ì•„ê°ˆ 수 있습니까?

1. 믿ìŒì˜ ì‚¶ì€ ì„±ë ¹ë‹˜ì„ ì˜ì§€í•˜ê³  사는 삶입니다. 1)성령께서는 우리ì—게 계시ì ì¸ 지ì‹ì„ 주십니다. 세ìƒì— ì†í•œ ì‚¬ëžŒë“¤ì€ ê²½í—˜ê³¼ ê°ê°ì  지ì‹, 즉 눈, ì½”, ê·€ 등 ìœ¡ì²´ê¸°ê´€ì„ í†µí•˜ì—¬ ì¸ì‹ëœ 지ì‹ìœ¼ë¡œ 살아갑니다. ë˜í•œ 그는 논리ì ì´ê³  과학ì ì¸ 지ì‹ì„ 통하여 ì‚¬ë¬¼ì„ íŒë‹¨í•˜ê³  ê¸°ìˆ ì„ ìŠµë“í•´ 갑니다. 그러나 ì‚¬ëžŒì˜ ì‚¶ì—는 ê°ê°ê³¼ ë…¼ë¦¬ì˜ ì„¸ê³„ì™€ëŠ” 다른 ì´ˆì›”ëœ ì„¸ê³„ê°€ 있습니다. 그리고 ì´ ì„¸ê³„ì— ëŒ€í•œ ì´í•´ëŠ” 계시ì ì¸ 지ì‹, 즉 하나님께서 ìžì‹ ê³¼ ê·¸ 구ì›ì˜ 계íšì— 관하여 알려주신 지ì‹ì´ ì—†ì´ëŠ” 불가능합니다. ê·¸ëŸ°ë° ì´ ê³„ì‹œì ì¸ 지ì‹ì€ ì„±ë ¹ì˜ ë„움 ì—†ì´ ì–´ë– í•œ ì¸ê°„ì ì¸ ë°©ë²•ìœ¼ë¡œë„ ì–»ì„ ìˆ˜ê°€ 없습니다. 그래서 ë°”ìš¸ì€ ê³ ë¦°ë„ êµíšŒì— 보낸 편지ì—ì„œ “누구든지 성령으로 ë§ë¯¸ì•”지 않고는 예수를 주로 ì‹œì¸í•  수 없다â€ê³  ì¼ë˜ 것입니다. ì´ì²˜ëŸ¼ 하나님 안ì—ì„œì˜ ë¯¿ìŒì€ ì„±ë ¹ì˜ ê³„ì‹œ ì—†ì´ëŠ” ìƒê²¨ë‚  수 없습니다. ë˜í•œ ì‚¬ëžŒë“¤ì€ ì„±ë ¹ì„ í†µí•˜ì—¬ í•˜ë‚˜ë‹˜ì˜ ëœ»ì„ ì•Œ 수 ìžˆëŠ”ë° ì´ëŠ” ì„±ê²½ì´ ë‹¨ìˆœí•œ ì‚¬ì‹¤ë“¤ì„ ëª¨ì•„ 기ë¡í•´ ë†“ì€ ì±…ì´ ì•„ë‹ˆë¼ ì„±ë ¹ì˜ ê°ë™ì— ì˜í•´ 기ë¡ëœ í•˜ë‚˜ë‹˜ì˜ ë§ì”€ì´ê¸° 때문입니다(ê³ ì „2:9-19). ì„±ë ¹ì˜ ê³„ì‹œ ì—†ì´ ì¸ê°„ì€ í•˜ë‚˜ë‹˜ì˜ ë§ì”€ì„ ì´í•´í•  수 없으므로 ì„¸ìƒ ì‚¬ëžŒë“¤ì€ ì„±ê²½ì„ ë¬´ì‹œí•˜ê³  í•˜ë‚˜ë‹˜ì„ ì¡°ì†Œí•©ë‹ˆë‹¤. ê¹Šì€ ì‹ ì•™ì˜ ì‚¶ì€ ì„±ë ¹ì˜ ê³„ì‹œì ì¸ 지ì‹ì— 근거합니다. 즉 믿ìŒì„ ê°–ê³  ì„±ë ¹ì˜ ì¶©ë§Œí•¨ì„ ë°›ì•„, ì„±ë ¹ì˜ ì€ì‚¬ë¥¼ 받고 ì„±ë ¹ì˜ ì—´ë§¤ë¥¼ 맺는 것으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2)ì„±ë ¹ì€ ìš°ë¦¬ë¥¼ 하나님께로 ê°€ê¹ê²Œ ì¸ë„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먼저 성ë„ì˜ ë§ˆìŒì†ì— íšŒê°œì˜ ì˜ì„ í—ˆë½í•˜ì…”ì„œ ìžì‹ ì˜ ì£„ì— ëŒ€í•˜ì—¬ 깨닫고 ì´ë¥¼ 회개할 수 있ë„ë¡ ë„우십니다. 그리고 ì´ë ‡ê²Œ ìžì‹ ì˜ 죄ì¸ëœ ëª¨ìŠµì„ ë°œê²¬í•˜ê³  회개한 ì‚¬ëžŒì€ ì˜ˆìˆ˜ë¥¼ 구주로 ì˜ì ‘하고 하나님께 ê°€ê¹Œì´ ë‚˜ì•„ê°€ê²Œ ë˜ëŠ” 것입니다. ë˜í•œ ì´ë ‡ê²Œ ì˜ˆìˆ˜ë‹˜ì„ ë§ˆìŒì†ì— ë°›ì•„ë“¤ì¼ ë•Œ, 성령께서는 우리 ì•ˆì— ê±°í•˜ì‹œê³  우리 ëª¸ì€ ì„±ë ¹ê»˜ì„œ 거하시는 ì„±ë ¹ì˜ ì „ì´ ë˜ëŠ”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 ì•ˆì— ê±°í•˜ì‹œë©° 우리가 중ìƒí•œ 것과 í•˜ë‚˜ë‹˜ì˜ ìžë…€ëœ ê²ƒì„ ëŠìž„ì—†ì´ í™•ì¦í•´ì£¼ì‹­ë‹ˆë‹¤. ì°¸ëœ ë¯¿ìŒì´ëž€ ì„±ë ¹ì„ ì–¸ì œë‚˜ ì˜ì§€í•˜ëŠ” 삶ì´ë¼ê³  í•  수 있습니다.

2. 믿ìŒì˜ 삶ì´ëž€ ê¿ˆì´ ìžˆëŠ” 삶입니다. ì‚¬ëžŒë“¤ì´ ë¬´ì—‡ì¸ê°€ 믿는다고 í•  ë•Œ ê·¸ 믿ìŒì—는 분명한 목ì ì´ 있어야 합니다. ì´ëŠ” 목표가 없는 믿ìŒì€ ê²°êµ­ì€ í—ˆê³µì— ì‚¬ë¼ì§€ê³  마는 í—ˆë§í•œ ê²ƒì´ ë˜ê¸° 때문입니다. 특히 ì‹ ì•™ì¸ì˜ ì‚¶ì€ ì§€ê¸ˆ ë‹¹ìž¥ì€ ë³´ì´ì§€ ì•Šê³  ì†ì— 잡히는 ê²ƒì´ ì—†ì–´ë„ ë¯¸ëž˜ì— ë˜ì–´ì§ˆ ì¼ì„ ì†Œë§ ê°€ìš´ë° ë°”ë¼ë³´ëŠ” ê²ƒì— ê·¸ ì°¸ ë©´ëª©ì´ ìžˆìŠµë‹ˆë‹¤. 그러므로 믿ìŒì˜ 목표는 현재를 보는 ê²ƒì´ ì•„ë‹ˆë¼ ë‚´ì¼ì„ 위한 ê¿ˆì¸ ê²ƒìž…ë‹ˆë‹¤.

1)믿ìŒê³¼ ê¿ˆì€ ë¶„ë¦¬í•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믿ìŒì˜ ì¡°ìƒ ì•„ë¸Œë¼í•¨ì€ 막연하게 ìžì‹ ì˜ 믿ìŒì„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í•˜ë‚˜ë‹˜ì˜ ë§ì”€ì„ ë“¤ì—ˆì„ ë•Œ ê·¸ê²ƒì„ ë¯¿ì—ˆìŠµë‹ˆë‹¤. ê¿ˆì´ ì—†ìœ¼ë©´ ì‹ ì•™ì€ ìžë¼ì§€ 않습니다. ì„±ê²½ì€ ì™œ ê¿ˆì´ ì—†ëŠ” ë°±ì„±ì€ ë§í•œë‹¤ê³  ë§í•©ë‹ˆê¹Œ? ê·¸ê²ƒì€ ê¿ˆì´ ì—†ìœ¼ë©´ 아무 ê²ƒë„ ë¯¿ì„ ìˆ˜ 없고 아무 ê²ƒë„ ë¯¿ì„ ìˆ˜ 없으면 아무 ê²ƒë„ ì°½ì¡°í•  수 없기 때문입니다. ê¿ˆì„ í†µí•´ì„œ ìƒìƒí•  수 있는 믿ìŒì´ 아브ë¼í•¨ ì†ì— 창조ë˜ì—ˆìŠµë‹ˆë‹¤(롬4:18). 하나님께서는 ì˜¤ëŠ˜ë‚ ë„ ìš°ë¦¬ì˜ ë¯¿ìŒì„ 통하여 ì¼í•˜ê³  계시며 ì´ ë¯¿ìŒì€ ìš°ë¦¬ì˜ ê¿ˆì„ ë‹´ëŠ” ê·¸ë¦‡ì¸ ê²ƒìž…ë‹ˆë‹¤. 믿ìŒì´ ì—†ì´ëŠ” ê¿ˆë„ ìžˆì„ ìˆ˜ 없고 ì´ëŸ° ì˜ë¯¸ì—ì„œ 믿ìŒê³¼ ê¿ˆì€ ë¶„ë¦¬í•˜ì—¬ ìƒê°í•  수 없습니다. 2)성령께서 우리ì—게 ê¿ˆì„ ì£¼ì‹­ë‹ˆë‹¤. 그러면 ì´ëŸ¬í•œ ê¿ˆì€ ì–´ë–»ê²Œ 우리 ì•ˆì— ì°½ì¡°ë  ìˆ˜ 있습니까? ê·¸ê²ƒì€ ì„±ë ¹ìœ¼ë¡œ ë§ë¯¸ì•”ì•„ í•˜ë‚˜ë‹˜ì˜ ë§ì”€ì„ 통하여만 가능합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ë¡ê¹Œì§€ í•˜ë‚˜ë‹˜ì˜ ë§ì”€ì€ ì¸ê°„ì˜ ë…¼ë¦¬ë¥¼ 초월합니다. ì´ëŸ¬í•œ 하나님 약ì†ì˜ ë§ì”€ì´ 씨와 ê°™ì´ ìš°ë¦¬ì˜ ë§ˆìŒì†ì— 심겨지면 ê·¸ê²ƒì´ ìš°ë¦¬ì—게 ì°¸ëœ ê¿ˆì„ ê½ƒí”¼ê²Œ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í•˜ë‚˜ë‹˜ì˜ ë§ì”€ì— 토대를 ë‘지 ì•Šê³  ìžì‹ ì˜ 욕심과 ê²½í—˜ì— ì˜ì§€í•œ ê¿ˆì€ ì‹œê°„ê³¼ í™˜ê²½ì— ë”°ë¼ ë³€í•˜ê³  사ë¼ì§€ê¸°ë„ 하는 í•˜ë£¨ì‚´ì´ ê¿ˆì— ë¶ˆê³¼í•©ë‹ˆë‹¤. 그리스ë„ì¸ë“¤ì€ í•˜ë‚˜ë‹˜ì˜ ë§ì”€ì„ ì½ìŒìœ¼ë¡œì¨ ê·¸ 약ì†ì˜ ë§ì”€ ì†ì—ì„œ ì‚´ì•„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야 합니다. ê·¸ ë•Œ 소ë§ì˜ 하나님께서 주시는 ê¿ˆì„ ì†Œìœ í•  수 있고 ì´ ê¿ˆì€ ë¯¿ìŒê³¼ 함께 ìžë¼ì„œ 그리스ë„ì¸ì˜ ì‚¶ì„ í’성하게 하고 ì´ ë•…ì—ì„œ ì²œêµ­ì„ ì´ë£¨ì–´ê°ˆ 것입니다.

3. 믿ìŒì˜ ì‚¶ì€ ê¸°ë„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ë§¤ì¼ ëŒ€ê¸° ì†ì—ì„œ 공기를 마시며 살아갑니다. ì‚¬ëžŒì€ 4분만 ìˆ¨ì„ ì‰¬ì§€ 않으면 죽습니다. ì´ì™€ ê°™ì´ ì‹ ì•™ì„ ìœ ì§€í•˜ê¸° 위해서 그리스ë„ì¸ì€ ëŠìž„ì—†ì´ ê¸°ë„해야 합니다. 기ë„는 그리스ë„ì¸ì˜ ì˜ì ì¸ 호í¡ì´ê¸° 때문입니다(ì‚´ì „5:16-18). 그리스ë„ì¸ì´ 기ë„를 쉬면 ìŠ¹ë¦¬ì˜ ì‚¶ì„ 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ì„±ë„ ì—¬ëŸ¬ë¶„, ë§¤ì¼ ê¸°ë„하기 위해서 특별한 ì‹œê°„ì„ ë§ˆë ¨í•´ ë‘십시오. 물론 기ë„는 아무 때나 어디서나 í•  수 있지만 규칙ì ì´ê³ ë„ 꾸준한 기ë„를 하기 위해서 특별한 ì‹œê°„ì„ ê°–ëŠ” ê²ƒì´ ì¢‹ìŠµë‹ˆë‹¤. 그러면 ë§¤ì¼ ë§¤ì¼ì„ 하나님께 ì¸ë„함 받고 ë˜ ë§¤ì¼ ë§¤ì¼ì„ 하나님 ì•žì—ì„œ 정리해 ë³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므로 믿ìŒì„ 강하게 하기 위해서 하루를 시작하기 ì „ 한시간 씩 기ë„하는 ìŠµê´€ì„ ë“¤ì´ëŠ” ê²ƒì€ ì‹ ì•™ìƒí™œì— 있어서 매우 중요한 ì¼ìž…니다. 기ë„ì˜ ë‚´ìš©ì— ìžˆì–´ì„œ 때때로 ë§Žì€ ì„±ë„ë“¤ì´ ë‹¨ì§€ 달ë¼ëŠ” 기ë„만 í•˜ëŠ”ë° ì´ê²ƒì€ 어린 ì•„ì´ì˜ 태ë„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ë„ì¸ë“¤ì€ 먼저 하나님께 ê°ì‚¬í•˜ê³  í•˜ë‚˜ë‹˜ì„ ì°¬ì–‘í•©ë‹ˆë‹¤. 그리고 다른 ì‚¬ëžŒì˜ í•„ìš”ë¥¼ 위해서 기ë„하고 êµíšŒì™€ 국가와 하나님 나ë¼ë¥¼ 위하여 기ë„합니다. 성ë„는 ê°ìžì˜ 형편과 ì²˜ì§€ì— ì•Œë§žê²Œ 하나님께 기ë„함으로 í•˜ë‚˜ë‹˜ì˜ ë³´ì¢Œ 아픙로 나아갈 수 있고 ì´ë¡œ ì¸í•˜ì—¬ 살아있는 믿ìŒì„ 소유해야 합니다.

4. 믿ìŒì˜ ì‚¶ì€ ë§ì„ 올바르게 사용하는 삶입니다. 언어ì—는 우리가 ìƒê°í•˜ëŠ” 것보다 훨씬 í° íž˜ì´ ìžˆìŠµë‹ˆë‹¤(약3:2). 언어는 ìš°ë¦¬ì˜ ë¯¿ìŒì„ ê°•í•˜ê²Œë„ ì•½í•˜ê²Œë„ í•©ë‹ˆë‹¤. 그러므로 ë§ì„ 어떻게 하든지 ê·¸ê²ƒì€ ì‹ ì•™ê³¼ëŠ” ìƒê´€ì—†ë‹¤ê³  ìƒê°í•˜ëŠ” ê²ƒì€ ìž˜ëª»ìž…ë‹ˆë‹¤. 계ì†ì ìœ¼ë¡œ 부정ì ì¸ ë§ì„ 하는 사람ì—게는 ì¢‹ì€ ì¼ì´ ì¼ì–´ë‚  수 없습니다. ì‚¬ë‹¨ì€ ë¶ˆí‰ì„ 가져다줘서 믿ìŒì„ 파괴시키고 스스로 부정ì ì¸ ë§ì— 얽매ì´ê²Œ 합니다. 부정ì ì¸ ë§ì€ ì–´ë‘ ì´ ë“¤ì–´ì˜¤ë„ë¡ ë¬¸ì„ ì—¬ëŠ”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혀를 사용하여 ìžì‹ ê³¼ ë‚¨ì„ ìœ„í•˜ì—¬ ì¢‹ì€ ë§ì„ 하ë„ë¡ í•˜ì‹­ì‹œì˜¤. í™˜ê²½ì˜ ì–´ë ¤ì›€ì—ë„ ë¶ˆêµ¬í•˜ê³  í•˜ë‚˜ë‹˜ì˜ ë§ì”€ì— 근거해서 ê¸ì •ì ì´ê³  소ë§ì— ì°¬ 언어를 사용할 ë•Œ, ê·¸ ë§ì€ ìš°ë¦¬ì˜ ìƒê°ì„ 변화시키고 í–‰ë™ì„ 변화시켜서 ì–´ë– í•œ ë„ì „ì—ë„ ë¯¿ìŒê³¼ ìŠ¹ë¦¬ì˜ ê¸¸ì„ ê±¸ì–´ê°€ë„ë¡ ìš°ë¦¬ë¥¼ ì´ëŒì–´ 주는 것입니다.

믿ìŒì˜ 삶ì´ëž€ ìžì—°ì ìœ¼ë¡œ ì´ë£¨ì–´ì§€ëŠ” ê²ƒì´ ì•„ë‹™ë‹ˆë‹¤. ê·¸ê²ƒì€ ì„±ë ¹ì˜ ì¸ë„를 받으며 ê¿ˆì„ í’ˆê³  í•­ìƒ ê¸°ë„하며 늘 ê¸ì •ì ì¸ 언어ìƒí™œì„ 통하여 유지ë˜ê³  성장합니다. 믿ìŒì´ ì—†ì´ëŠ” í•˜ë‚˜ë‹˜ì„ ê¸°ì˜ì‹œê²Œ í•  ìˆ˜ë„ ì—†ê³  하나님께 ìƒê¸‰ì„ ë°›ì„ ìˆ˜ë„ ì—†ìŠµë‹ˆë‹¤. 그러므로 ì´ëŸ¬í•œ 믿ìŒì˜ ì›ë¦¬ì— 근거한 ì‹ ì•™ìƒí™œì„ 통하여 ì‚´ì•„ 있는 믿ìŒì„ 소유하고 하나님께로 ë”ìš± ê°€ê¹Œì´ ë‚˜ì•„ê°€ 승리하는 성ë„ê°€ ë˜ì‹œê¸°ë¥¼ ë°”ëž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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