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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ì¼ê°€ì •ì˜ˆë°°

2012ë…„ 6ì›” 18ì¼- 23ì¼

권ì˜êµ­ 목사(LA대í¥ìž¥ë¡œêµíšŒ)

[ì›”] 떳떳한 ì„±ë„ (마26:57-68) 63ì ˆ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께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í•˜ë‚˜ë‹˜ì˜ ì•„ë“¤ 그리스ë„ì¸ì§€ 우리ì—게 ë§í•˜ë¼â€ê³  다그쳤습니다. ì´ëŠ” ì˜ˆìˆ˜ë‹˜ì„ ì‹ ì„±ëª¨ë…ìžë¡œ 몰기 위한 유ë„심문ì´ì—ˆìŠµë‹ˆë‹¤. ì£¼ë‹˜ì€ ì´ ë‚œì²˜í•œ ìƒí™©ì—ì„œ 당당하게 ìžì‹ ì˜ ì‹ ë¶„ì„ ë°ížˆì…¨ìŠµë‹ˆë‹¤. “네가 ë§í•˜ì˜€ëŠë‹ˆë¼.â€ ìš°ë¦¬ë„ ì–´ë–¤ 위기가 ì˜¨ë‹¤í•´ë„ ì •ì²´ì„±ê³¼ 믿ìŒì„ 당당하게 ë°íž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ìƒì˜ ë¹›â€(마5:14)입니다. 우리가 성ë„ë¼ëŠ” ê²ƒì„ ê½ê½ 숨기는 ê²ƒì´ ì•„ë‹ˆë¼ ë¹›ì²˜ëŸ¼ ë°ížˆ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사회ì—는 ìµëª…ì˜ ê·¸ë¦¬ìŠ¤ë„ì¸ë“¤ì´ 너무나 ë§Žì€ ê²ƒ 같습니다. 불ì´ìµì„ 당하지 않기 위해 성ë„ë¼ëŠ” ì‚¬ì‹¤ì„ ìˆ¨ê¸°ê³  살아가는 그들. ì£¼ë‹˜ì€ â€˜ë‚˜ëŠ” 주 ì˜ˆìˆ˜ì˜ ì‚¬ëžŒâ€™ì´ë¼ê³  ë°ížˆê¸°ë¥¼ ì›í•˜ì‹­ë‹ˆë‹¤. 담대하게 ìžì‹ ì˜ ì‹ ì•™ì„ ë°ížˆëŠ” 성ë„를 우리 ì£¼ë‹˜ì€ ë¨¸ë¦¬í„¸ í•˜ë‚˜ë„ ìƒí•˜ì§€ ì•Šë„ë¡ ë³´í˜¸í•˜ì‹ ë‹¤ê³  약ì†í•˜ì…¨ìŠµë‹ˆë‹¤(마10:11-31). í•˜ë‚˜ë‹˜ì˜ ì˜ê´‘스러운 ìžë…€ìž„ì„ í•­ìƒ ë°ížˆë©° 떳떳하게 살아가시는 ë³µëœ ì„±ë„ê°€ ë˜ê¸°ë¥¼ ë°”ëžë‹ˆë‹¤. [í™”] 성령 ë”°ë¼ ì‚¬ëŠ” ìžì„¸ (마26:69-75) 75ì ˆì€ ë² ë“œë¡œê°€ ë‹­ 울기 ì „ ìžì‹ ì„ 세 번 부ì¸í•˜ë¦¬ë¼ëŠ” ì˜ˆìˆ˜ë‹˜ì˜ ë§ì”€ì´ ìƒê°ë‚˜ 밖으로 나가 통곡하는 ê²ƒì„ ë³´ì—¬ì¤ë‹ˆë‹¤. ì •ì‹ ì—†ì´ ì£¼ë¥¼ 세 번ì´ë‚˜ 부ì¸í•˜ë˜ 베드로는 ë‹­ì´ ìš°ëŠ” 순간 주님 ë§ì”€ì´ ìƒê°ë‚œ 것입니다. 그리고 ìžì‹ ì´ 얼마나 연약한 지 깨닫게 ë˜ê³  그것 ë•Œë¬¸ì— í†µê³¡í•˜ê²Œ ëœ ê²ƒìž…ë‹ˆë‹¤. 여러분, ì£¼ë‹˜ì˜ ë§ì”€ì´ ìƒê°ë‚˜ì„œ ìžì‹ ì˜ ìž˜ëª»ì„ ê¹¨ë‹«ê³  íšŒê°œì˜ ê¸¸ë¡œ 가는 성ë„는 ë³µëœ ì„±ë„입니다. ê·¸ê²ƒì€ í•˜ë‚˜ë‹˜ê»˜ì„œ ê·¸ 성ë„를 ìžê¸° ìžë…€ë¡œ ì¸ì •í•˜ì‹ ë‹¤ëŠ” ì¦ê±°ì´ìž 그를 사랑하시는 í‘œì¦ì´ê¸° 때문입니다. í•˜ë‚˜ë‹˜ì˜ ë§ì”€ì„ ìƒê°ë‚˜ê²Œ 하시는 ë¶„ì€ ë°”ë¡œ 성령ì´ì‹­ë‹ˆë‹¤. ì„±ë ¹ì€ ì„±ë„들 심령 ì†ì— 내주하시고 ë§ì”€ì„ ìƒê°ë‚˜ê²Œ 함으로 í•˜ë‚˜ë‹˜ì´ ì›í•˜ì‹œëŠ” 길로 가게 ì¸ë„해주십니다. 죄를 범하고 ë§ì”€ì´ ìƒê°ë‚˜ 회개하는 ì¼, ì£¼ë‹˜ì´ ì—¬ëŸ¬ë¶„ì„ ì‚¬ëž‘í•˜ì‹ ë‹¤ëŠ” ì¦ê±°ìž…니다. í•˜ë‚˜ë‹˜ì˜ ìžë…€ìž„ì„ ë¯¿ì–´ 확신하시고 ìµœì„ ì„ ë‹¤í•´ ê·¸ ë§ì”€ëŒ€ë¡œ 순종하며 살아가는 ìžì„¸ê°€ 바로 ì„±ë ¹ì„ ë”°ë¼ í–‰í•˜ëŠ” ì‹ ì•™ìžì„¸ì¸ 줄로 믿으시기 ë°”ëžë‹ˆë‹¤. [수] 회개와 후회 (마27:1-10) 3, 4ì ˆ, ì£¼ë‹˜ì„ íŒ ê°€ë£Ÿ 유다는 주님께서 ì‚¬í˜•ë‹¹í•˜ì‹¬ì„ ë³´ê³  스스로 ë‰˜ìš°ì³ ì£¼ë‹˜ì„ íŒê°’으로 ë°›ì€ ì€ ì‚¼ì‹­ì„ ëŒ€ì œì‚¬ìž¥ê³¼ 장로들ì—게 ë„ë¡œ 갖다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뉘우치다’로 ë²ˆì—­ëœ í—¬ë¼ì–´ ‘메타벨레ë°ì´ìŠ¤â€™ëŠ” í›„íšŒí•˜ë‹¤ì˜ ì˜ë¯¸ìž…니다. íšŒê°œì— í•´ë‹¹í•˜ëŠ” ‘메타노ì—오’는 ì‚¶ì˜ ì „ì ì¸ 변화를 ì˜ë¯¸í•©ë‹ˆë‹¤. 지금 ê°€ë£Ÿìœ ë‹¤ì˜ íšŒê°œ ì•„ë‹Œ 후회는 ì£„ì˜ ê²°ê³¼ì— ëŒ€í•œ ê°ì •ì  í›„íšŒì¼ ë¿ìž…니다. 회개와 후회는 본질ì ìœ¼ë¡œ 다릅니다. 성ë„ë“¤ì€ íšŒê°œí•˜ëŠ” ì‚¬ëžŒì´ ë˜ì–´ì•¼ì§€ í›„íšŒì— ê·¸ì¹˜ëŠ” ì‚¬ëžŒì´ ë¼ì„œëŠ” 안ë©ë‹ˆë‹¤. 회개는 ì‚¬ëžŒì´ í•˜ê³  싶다고 í•´ì„œ í•  수 있는 ê²ƒì´ ì•„ë‹ˆê³  ì„±ë ¹ì˜ ì—­ì‚¬ì˜ ê²°ê³¼ë¬¼ìž…ë‹ˆë‹¤. 성령께서 ê°ë™ì„ 주셔야만 ìžê¸°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ëª¨ë‘ ì„±ë ¹ì„ ì˜ì§€í•´ 후회가 ì•„ë‹Œ 진정한 íšŒê°œì˜ ì‚¶ì„ ì‚´ë¯€ë¡œ 다 ì˜ìƒì— ì´ë¥¼ 수 있기를 ë°”ëžë‹ˆë‹¤. â€œí•˜ë‚˜ë‹˜ì˜ ëœ»ëŒ€ë¡œ 하는 ê·¼ì‹¬ì€ í›„íšŒí•  ê²ƒì´ ì—†ëŠ” 구ì›ì— ì´ë¥´ê²Œ 하는 회개를 ì´ë£¨ëŠ” 것ì´ìš” 세ìƒê·¼ì‹¬ì€ 사ë§ì„ ì´ë£¨ëŠ” 것ì´ë‹ˆë¼â€(고후7:10) [목] ì€í˜œì˜ 보좌 ì•žì—ì„œ (마27:11-23) 11ì ˆì€ ì£¼ë‹˜ê»˜ì„œ 마침내 ì´ë… ì•žì— ì„œì„œ 심문받기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 ì´ë… ì•žì— ì„°ìœ¼ë§¤â€™ë¼ê³  기ë¡ëœ ì‚¬ì‹¤ì— ì£¼ëª©í•´ì•¼ 합니다. ì´ê²ƒì€ 예수님께서 빌ë¼ë„ì—게 재íŒì„ 받으시는 ê²ƒì´ ì•„ë‹ˆë¼ ë§ˆì¹˜ 빌ë¼ë„ê°€ 예수님께 재íŒì„ 받는 듯한 ì¸ìƒì„ ì¤ë‹ˆë‹¤. 오늘날 ìš°ë¦¬ë„ ë‹¤ 주님 ì•žì— ì„œ 있습니다. ë˜ ë§ˆì§€ë§‰ ë‚ ì—는 ê·¸ë¶„ì˜ ì‹¬íŒëŒ€ ì•žì— ì„œì•¼í•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ì£¼ë‹˜ì„ ì–´ë–»ê²Œ 대하고 있습니까? 빌ë¼ë„처럼 ê°ížˆ 절대ì ì¸ 심íŒê¶Œì„ 지니신 ì£¼ë‹˜ì„ íŒë‹¨í•˜ê³  있지는 않습니까? 빌ë¼ë„는 안타ê¹ê²Œë„ ìžì‹ ì˜ 처지와 ì£¼ë‹˜ì˜ ì¡´ìž¬ë¥¼ 알지 못하고 ì£¼ë‹˜ì„ í•¨ë¶€ë¡œ 정죄하고 ì‚¬í˜•ì— ì²˜í•¨ìœ¼ë¡œì¨ ì˜ì›í•œ ì €ì£¼ì˜ ëŒ€ìƒì´ ë˜ê³  ë§ì•˜ìŠµë‹ˆë‹¤. 그는 ì˜ˆìˆ˜ë‹˜ì„ íŒë‹¨í•˜ëŠ” ìžë¦¬ì—ì„œ 내려와 겸ì†ížˆ 주님께 ì€í˜œë¥¼ 구해야 했습니다. ìš°ë¦¬ë„ ë§ˆì°¬ê°€ì§€ìž…ë‹ˆë‹¤. 우리는 ì£¼ë‹˜ì˜ ì€í˜œê°€ 필요한 ìžì¼ ë¿ ì£¼ë‹˜ [금] ìžê¸° 죄를 ì§ê³ í•˜ë¦¬ë¼ (마27:24-26) 24ì ˆì—ì„œ 빌ë¼ë„는 예수를 놓아주려는 ìžì‹ ì˜ ë…¸ë ¥ì´ êµ°ì¤‘ë“¤ì˜ ë°˜ëŒ€ì— ë¶€ë”ªížˆìž ì˜ˆìˆ˜ë¥¼ 처형하기로 결정하고 ë¬¼ì„ ê°€ì ¸ë‹¤ê°€ ì†ì„ 씻으며 â€œì´ ì‚¬ëžŒì˜ ì£„ì— ëŒ€í•˜ì—¬ 나는 무죄하니 너í¬ê°€ 당하ë¼â€ê³  하였습니다. 즉 그는 ì˜ˆìˆ˜ë‹˜ì˜ ì²˜í˜•ì˜ ì±…ìž„ì„ ìœ ëŒ€ì¸ë“¤ì—게 ëŒë¦¬ê³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ë³´ë©´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신 ì¼ì€ ì „ì ìœ¼ë¡œ 유대 종êµì§€ë„ìžë“¤ê³¼ 우매한 군중들ì—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빌ë¼ë„ë„ ì±…ìž„ì´ ìžˆìŠµë‹ˆë‹¤. 그는 ìžì‹ ì˜ ì´ê¸°ì  목ì ì— ë”°ë¼ ìœ ëŒ€ì¸ë“¤ê³¼ 야합해 ì‚¬í˜•ì„ ì–¸ë„í•œ 것ì´ì—ˆìŠµë‹ˆë‹¤. ì‚¬ëžŒì€ ì•„ë¬´ë„ ìžê¸° 죄를 하나님 ì•žì—ì„œ 핑계하지 못합니다. ì‚¬ëžŒì€ í•˜ë‚˜ë‹˜ì˜ ì‹¬íŒëŒ€ ì•žì— ì„œëŠ” ë‚  ìžê¸° ì£„ì— ëŒ€í•´ì„œ ì±…ìž„ì„ ì ¸ì•¼í•©ë‹ˆë‹¤. 하나님 ì•žì—서는 ëˆ„êµ¬ë„ ìžê¸° 죄를 숨기거나 핑계하지 못합니다(롬14:12). ê·¸ê²ƒì€ í•˜ë‚˜ë‹˜ê»˜ì„œ ìš°ë¦¬ì˜ ë§ˆìŒê³¼ 행위를 ì¼ì¼ì´ 살펴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ì•žì— ì„  ìžë¡œ ì‚´ë©´ì„œ 죄를 멀리 해야겠습니다. [토] ì£¼ë‹˜ì´ ë°›ìœ¼ì‹  ê³ ë‚œ (마27:27-31) 29, 30ì ˆì€ ë¡œë§ˆ êµ°ë³‘ë“¤ì´ ì£¼ë‹˜ì„ ì¡°ë¡±í•˜ëŠ” 장면입니다. 시편ë§ì”€ëŒ€ë¡œ â€œê°œë“¤ì´ ë‚˜ë¥¼ ì—워쌌으며 ì•…í•œ 무리가 나를 둘러 ë‚´ ìˆ˜ì¡±ì„ ì°”ë €ë‚˜ì´ë‹¤â€ 수백 ëª…ì´ ë‘˜ëŸ¬ì‹¸ê³  ê°€ì‹œë©´ë¥˜ê´€ì„ ì”Œìš°ê³  ê·¸ 머리를 갈대로 쳤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ì´ë ‡ê²Œ 수치와 ì¡°ë¡±ì„ ë‹¹í•˜ì‹  목ì ì´ 바로 우리를 위한 ê²ƒìž„ì„ ë¯¿ìœ¼ì‹œê¸° ë°”ëžë‹ˆë‹¤. 주님께서 우리 대신 ì´ëŸ° 수치를 당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í•˜ë‚˜ë‹˜ì˜ ì‹¬íŒëŒ€ì—ì„œ 그보다 몇 만 ë°° ë”í•œ 부ë„ëŸ¬ì›€ì„ ë‹¹í•˜ê²Œ ë  ìš´ëª…ì´ì—ˆìŠµë‹ˆë‹¤. ì£¼ë‹˜ì€ ì´ ë•…ì— ê³„ì‹œëŠ” ë™ì•ˆ ì´ˆë¼í•œ ì£„ìˆ˜ì˜ ëª¨ìŠµìœ¼ë¡œ 온갖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ì£¼ë‹˜ì€ ìž¬ë¦¼í•˜ì‹¤ 때는 하늘ì˜ê´‘ê³¼ ì²œêµ°ì²œì‚¬ì˜ í˜¸ìœ„ë¥¼ 받으며 ì˜ê´‘ì¤‘ì— ì˜¤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ìš°ë¦¬ë„ ì£¼ë‹˜ì²˜ëŸ¼ ì˜ë¥¼ 위해 í•˜ë‚˜ë‹˜ì˜ ì˜ê´‘ì„ ìœ„í•´ 고난과 멸시를 당한다면 ë‚˜ì¤‘ì— í•˜ëŠ˜ì˜ í° ì˜ê´‘ì„ ì–»ê²Œ ë  ê²ƒìž…ë‹ˆë‹¤. ì˜¤ì§ ìš°ë¦¬ 주님만 ìžëž‘하고 ê³ ë‚œë„ ê¸°ì¨ìœ¼ë¡œ 받고 우리 ì£¼ë‹˜ì„ ìœ„í•´ 살아가시는 성ë„ë“¤ì´ ë©ì‹œ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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