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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역 (Ministry of Empathy)

박동서 목사

강단에서의 설교 사역과 성경공부 사역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고, 필자 또한 담임목회자로써 목회할 때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열정을 쏟았던 사역이었습니다. 주님도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공생애 대표 사역 세 가지가 Preaching, Teaching, and Healing이셨으니 세 번째 치유사역은 기도로 감당한다면 성도들 앞에서 행하는 사역은 두 가지 설교와 말씀공부인도가 주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중요하고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역에 치중하다보면 양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 소통에만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하기보단 남에게 늘 지시하고 지적하고 훈계하며 가르치려고 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필자도 채플린 훈련을 받으며 2,000여 시간의 실습과정을 거칠 때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남의 말을 계속해서 경청하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들어보면 환자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는지 파악이 되니, 상대방의 말을 끊고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어설픈 훈계조의 충고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태도와 처방적 문제해결방식은 도움은커녕 환자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중년의 말기암 환자에게 교회의 성도들이 간절히 치유를 위한 중보기도를 계속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이며 환자 자신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께 강청기도를 드리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환자는 육신의 치유라는 헛된 소망에 매달린 나머지 마지막 남은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아름다운 죽음과 이별을 준비하는데 사용하지 못한 채 결국은 분노와 두려움, 더 큰 좌절감과 실망감 속에 생을 마치고 말게 됩니다. 물론 죽음 후의 진정한 영생에 대해 묵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소원했던 가족구성원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정작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남은 유족에게마저 깊은 슬픔과 고통만을 남긴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됩니다.

경청할 때는 우선 상대방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말하게 하고 그 감정들에 대해 인정하며 공감해 주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당면한 죽음 앞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믿음이 적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신실한 환자들 역시 사랑하는 배우자나 어린 자녀들을 남기고 먼저 떠난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힘들어 합니다. 일단 어떤 이유이든 두려움의 감정을 오픈하면 그 두려움에 대해 더 말해보라고 합니다. 조금씩 더 깊은 두려움의 정체와 원인을 자기도 모르게 끄집어 낼 때, 옆에서 진정어린 공감을 하며 경청해주는(empathic listening)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 자체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그 감정을 정상화(normalize)해주고, 그럼에도 하나님을 아직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용서받고 싶은 믿음을 인정(affirming faith)해줍니다. 소원했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기도까지 부탁한다면 이 환자는 암울했던 두려움과 슬픔, 절망과 분노의 깊은 웅덩이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회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가장 성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를 공감하는 사역에 두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조금 더 성도들에게 귀와 마음을 열어주지 못했는지, 그들의 아픔과 고충을 들어주며 공감해주지 못했는지 아쉬운 생각이 들면서 많은 회개를 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심지어 직장과 사업체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세심히 진심으로 경청해주며 공감해줄 때 비로소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 열린 마음의 문으로 복음이 들어가고 참된 회개와 용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tdspark@gmail.com 

10.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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