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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웬(John Owen)의 기도에서 성령의 사역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제일교회)
이윤석 목사

제 11장 형식적인 기도문 사용 (1)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잘 쓰인 기도문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평강과 유익을 주기 위해 형식화된 기도문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예배드릴 때 최선을 다해 적합한 기도문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거나 정죄할 필요가 없지만, 기도문을 기도자의 마음과 뜻 없이 사용하는 것이 자연의 빛이나 성경의 계시에 비추어 보아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기도문 사용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각자의 마음속에 주신 빛을 사용하여 기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전제로 빠지게 되고, 결국 무신론으로 전락하도록 만든다.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제도이지만 기도의 형식을 만드는 것은 사람인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내용을 주시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어떤 형식으로 기도할지는 우리에게 맡기셨는가? 이런 질문의 추론에는 모순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내용을 주시되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기도하도록 하셨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는 목사들에게 설교할 모든 내용을 제공해 주셨고 이를 설교하도록 명령하신 것이 목사들로 하여금 설교문을 만들어서 모일 때마다 똑같은 설교를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명령하신 것이 아님과 같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께서 목사들에게 사역을 감당하도록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1. 그러면 형식화된 기도문은 어디에 사용되는가? (1)

 

1) 성경에 형식화된 기도문의 사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서 성령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문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라는 내용이 없다. 성령은 스스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문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구약에 기도문들이 있지만, 구약의 기자들이 기도할 때 역사하셨던 성령의 도우심과 우리가 기도할 때 도와주시겠다는 성령에 대한 약속은 성격상 전혀 다른 것이다.

언제나 성령 충만한 가운데 활동했던 거룩한 사도들은 모든 교회나 개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도문을 만들기 위해 결코 성령의 감동을 사용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기도문을 만드는데 특별한 성령의 도움이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지 못했다. 기도문 사용의 주장은 기도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의 복과 도우심 가운데서 행해지는 모든 성도의 의무라는 사실에 위배된다. 성령의 조명이나 경험이 없이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흉내 내거나 성경의 표현들을 발췌한 것으로 적당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표현이나 내용에 있어서 제대로 된 기도일 수 없다. 물론 교리적으로 안정된 기도의 내용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기도문도 성령의 특별한 도우심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2) 자신을 위해 기도문을 만들 수 있도록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서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기도문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믿음과 기쁨과 사랑의 행위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는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주시는 은혜의 역사는 사람들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도문을 사용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3) 기도문을 만들 때 성령의 특별한 도우심에 대한 어떤 약속이 없을 뿐 아니라, 율법이나 복음에 의해 만들어진 규약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디에서든지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문을 만들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성경 어디에도 말씀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며, 기도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4) 형식적인 기도문의 기원과 그것을 사용해서 얻는 유익을 두 부류의 사람들과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기도문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도문 없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도 기도문을 사용해서 기도하는 것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성장에 큰 유익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언제든지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양 떼 중에서 병든 양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사용하지 않거나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양심에 어떤 평안함이나 유익도 줄 수 없다.

 

둘째, 그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형식화된 기도문의 사용이 유익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신실하게 믿고 있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어떤 외적인 도움 없이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간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배운 사람이 형식적인 기도문으로 자신의 모든 상황을 올바르게 간구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양심을 찌르는 선과 악의 문제로 인해 기도하게 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이를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기도 이외에는 영혼을 효과적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다른 어떤 방법도 없다.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참된 신자들인 척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라는 사도 바울의 주장과 명확히 반대되는 것이다. 기도문 사용은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약화시키는 것이다. 복음을 고백했어도 신실하게 회심한 자들이 아닐지라도, 만일 그들이 복음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성령의 조명이나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에게도 형식적인 기도문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만일 그들이 성령의 조명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기도를 통해 복음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켜야 하며, 이는 그들이 행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의무이다.

younsuklee@hotmail.com

05.1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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