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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장 로마 가톨릭교회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mental prayer) (2)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제일교회)
이윤석 목사

4) 기도를 지나치게 신비적인 것으로 추가해서는 안된다

 

(1) 사람들이 헛되이 육신의 생각을 따라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보지도 못한 틀에다가 억지로 자신을 몰입시키려는 것은 전적으로 쓸모없으며 불확실한 것이고 헛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실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경험을 통해 검증이 된다면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자신도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아무리 영적으로 진보했다고 할지라도, 전혀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환상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이나 자신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나의 영혼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 뿌리에서 만난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 채 신성을 모독하기 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누구든지 신앙적인 내용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말하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거짓된 것을 허락하는 것은 신앙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아무런 쓸모도,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아무리 기적적으로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직접 해석할 수 없다면 그 알 수 없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 색깔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성이 활동할 여지가 없는, 영적인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모임을 추켜세우고 다른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그 사람이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며 다른 모든 사람도 이 경험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자. 정말로 그의 경험이 사실이고 그의 경험이 성경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면, 당연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영적 활동이나 경험이 성경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약속되어 있지 않거나, 이성의 빛에 의해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때에는 그들의 주장을 따라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오히려 해악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성경의 기초를 떠나 자신의 이해를 버리고 불확실한 환상의 바다를 헤매게 되면, 어디로 쏠리게 될지, 어디로 떠내려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2)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영적 활동이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거룩함을 보고, 그들의 주장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해 보증되지 않고, 이성을 무시하는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그런 사람들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거룩함이나 정직함은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지도 않다. 

이런 견고함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자신들의 외모로 자신의 거룩함과 정직함을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어느 때든지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거기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룩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복음의 빛과 규칙에 비추어 보면, 결코 자신의 명성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 이는 그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그리스도인의 신중함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소위 경험했다는 황홀경이나 신적인 계시가 상상조차 하기 힘들만큼 부패한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거짓으로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고 계시를 받았다며 영적인 황홀경의 경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속이기 위해 ‘낡은 옷’을 입고 자신들의 거룩함과 위엄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때 타락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선지자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껏해야 위선자들에 불과했다. 우리는 신약에서도 그런 악한 영들의 활동에 대해 경고를 받고 있다. 우리는 미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유롭게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과 비정상적인 경험을 할 것을 하도록 요구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미혹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자신들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이런 환상적인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가정해보자.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본성에 의한 것이든, 혹은 사탄에게 현혹된 것이든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에 사로잡힐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그들에게 탁월한 효과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에게 사실로 믿게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사람들이 미신에 사로잡힐 때,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교리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잘못된 생각과 환영과 행동에 빠지게 하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미혹되어 빠져 있는 것보다 더 지나친 생각이나 착각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지성이나 이성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성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경건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사탄에게 미혹되어서 근거나 확증이 없이 미신적으로 행동을 했다고 간주하는 것이 아주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5) ‘명상기도’에 고상한 요소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기도가 아니며 기도로 인정될 수 없다

 

명상기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을 중지시키고 이성의 활동을 중지시킨 채로 순전히 의지만을 집중시켜 기도하는 것이 가장 탁월한 기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도로 인정될 수 없다. 기도가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의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에 부응하지 않거나 이에 모순이 되거나 일치하지 않는 것은 기도로 인정될 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로우심과 능력있으심과 의로우심과 전지하심과 편재하심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존재와 자충족성과 지배와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그분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고, 자신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아뢰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며,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시는 것에 대해 찬미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기도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도우심과 우리가 소망하는 영적인 자비를 드러내어, 우리로 온전히 기도하도록 인도한다. 복음은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본질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는다. 동일한 이름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본질로 다른 것이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이런 기도의 일반적인 본질에 대해 모든 인간은, 비록 그들 안에 남아있는 자연의 빛이 심하게 부패했을지라도,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무신론적이고 야만적인 신앙의 행위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인간들의 확신이 아주 크고 보편적인 것처럼, 그런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확신도 확고하다. 

왜냐하면 신적인 존재에 대해 인간이 본성적으로 행하는 첫 번째 행위가 바로 간구이기 때문이다. 요나가 탔던 배의 선원들은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향해 어떻게 간구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영광을 돌리지 않는 곳, 즉 하나님을 향한 소원과 찬미가 드려지지 않는 곳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기도 또한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황홀경에 빠져 이성이나 지성의 활동이 없이 의지나 감정의 활동에 의해 기도한다는 소위 ‘명상기도’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자연의 빛에 비추어 보더라도 제대로 된 기도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성품을 실제로 인정하지 않는 기도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사랑과 신뢰와 감사와 믿음을 가지지 않는 기도는 자연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본질상 괴물과 같은 것이며,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다른 이름을 사용해서 우리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데, 이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younsuklee@hotmail.com

04.2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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