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을 후보로 지명한 민주당이 25일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정책은 전체적으로 당의 노선을 ‘좌클릭’한 점이 두드러진다. 때문에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겼지만 정책에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승리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심지어 샌더스의 공약 책임자였던 워런 거넬스는 NBC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원했던 80%를 얻었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못박은 점이다. 이는 샌더스가 줄기차게 주장한 공약이다. 부자증세 가능성을 언급하고, 전문대 과정인 커뮤니티 대학을 무료화하거나 대학 등록금을 낮추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사 주간 타임(TIME)은 “당 원로들이 정강정책을 받아보고 ‘대담하고(bold) 공격적(aggressive)이다’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건강보험 개혁안 ‘오바마케어’와 현 정부의 이민개혁안을 지지한 것은 샌더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오바마케어를 축소하고 이민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는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샌더스가 반대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샌더스를 한방 먹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TPP를 역점적으로 추진한 오바마를 의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따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외교관계에 있어 한국과의 동맹 관계를 충실히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추가협상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한·미 FTA를 대표적으로 찍어 ‘재협상 대상’으로 거론했다.
대외정책과 관련해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겠다는 트럼프와 달리 ‘50년 친구’인 나토와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기존 조약도 충실히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한 점은 오바마 정권에 비해 보다 개입주의적인 입장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권과 소수자 문제에 있어선 대부분 기존 민주당의 진보적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낙태권 옹호를 명시한 데 대해선 일부 지지자가 반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낙태를 옹호함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는 2100만명의 민주당 지지자를 배신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