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10시 워싱턴DC 미 국회의사당의 하원회의실. 단상에 오른 폴 라이언(위스콘신·공화당) 하원의장이 마이크를 켜고 의사일정을 재개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단상 주위에 몰려든 민주당 의원들의 “입법 없이 휴회 없다(No Bill, No Break)”는 외침에 묻혀 버렸다. 일부 의원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질타했다.
정상적인 의사진행이 불가능하자 몇 분 뒤 라이언 의장은 단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의원들은 한국에서도 운동권 가요로 널리 불려진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합창하기도 했다.
오전 11시30분부터 하원 민주당 의원들은 총기규제 강화 입법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정상적인 의사진행은 불가능했다. 관행과 규정을 중시하는 미 의회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행동에는 지난 20일 상원에서 총기규제 관련 법안 4건이 부결되고,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하원에서도 법안 표결이 봉쇄된 데 따른 좌절과 분노가 깔려 있다. 지난 12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총기규제 입법은 다시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흑인 인권운동가 출신인 존 루이스(조지아) 하원의원이 농성을 주도했다. 그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했다. 얼마나 더 많은 어머니, 아버지, 형제와 친구들이 비탄의 눈물을 흘려야 결정을 하겠는가”라며 공화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이 하원 표결에 동의할 때까지 무기한 연좌 농성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라이언 하원의장은 CNN방송에서 “이목을 끌기 위한 쇼”라고 깎아내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우리가 가장 필요할 때 총기폭력에 대한 반대를 루이스 의원이 이끌어줘 감사하다’고 응원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것이 리더십이다”라고 루이스 의원을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