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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ì¼ê°€ì •ì˜ˆë°°(03/24/2025-03/29/2025)

ê¹€ìƒë• 목사 (ë³µìŒìž¥ë¡œêµíšŒ ì›ë¡œ)

ì›”: í•˜ë‚˜ë‹˜ì˜ ë°±ì„±ë“¤ (눅 19:30-38) ì°¬ 249장

ì˜ˆìˆ˜ë‹˜ì€ í•˜ë‚˜ë‹˜ì˜ ëœ»ì„ ì´ë£¨ì‹œëŠ” 분ì´ë©°, 나귀 새ë¼ë¥¼ 타고 ì˜ˆë£¨ì‚´ë ˜ì— ìž…ì„±í•˜ì…¨ë‹¤. ë¬´ë¦¬ë“¤ì€ ê·¸ë¥¼ 왕으로 찬양하며, í•˜ë‚˜ë‹˜ì˜ ì˜ê´‘ì„ ì„ í¬í–ˆë‹¤. ì´ëŠ” ì„±ë ¹ì˜ ê°ë™ìœ¼ë¡œ 나온 ê³ ë°±ì´ë©°, ì˜ˆìˆ˜ë‹˜ì´ ì˜ì›í•œ 왕ì´ì‹¬ì„ ì¦ê±°í•˜ëŠ” í•˜ë‚˜ë‹˜ì˜ ì—­ì‚¬ì˜€ë‹¤. 그러나 ë©°ì¹  후, ê°™ì€ ë¬´ë¦¬ë“¤ì€ ì£„ 가운ë°ì„œ ì˜ˆìˆ˜ë‹˜ì„ ìžì¹­ 왕ì´ë¼ 비난하며 죽ì´ë¼ê³  외쳤다. 하나님 안ì—ì„œ 하는 고백과 죄 안ì—ì„œ 하는 ë§ì€ 다르며, ì¸ê°„ 스스로 í•˜ë‚˜ë‹˜ì„ ì°¬ì–‘í•  수 없다. ì˜¤ì§ ì„±ë ¹ì˜ ì—­ì‚¬ë¡œ í•˜ë‚˜ë‹˜ì„ ì°¬ì–‘í•˜ê³  ì˜ˆìˆ˜ë‹˜ì˜ ì´ë¦„ì„ ë†’ì¼ ìˆ˜ 있다. í•˜ë‚˜ë‹˜ì˜ ë°±ì„±ì€ ì˜ì›í•œ 나ë¼ì™€ ì™•ì„ ì•Œê³ , 그분께 충성하는 ì‚¶ì„ ì‚´ì•„ì•¼ 한다. 우리는 ë§Œë¬¼ì„ í†µì¹˜í•˜ì‹œëŠ” ì™•ì˜ ì˜ê´‘ì„ ì°¬ì–‘í•˜ë©°, 거룩하게 êµ¬ë³„ëœ ì¡´ìž¬ìž„ì„ ê¹¨ë‹«ê³  살아야 한다.

 

í™”: 믿는 ìžë“¤ì˜ 삶 (눅 19:39-44) ì°¬ 208장

ì˜ˆë£¨ì‚´ë ˜ì´ ì›ìˆ˜ë“¤ë¡œ ì¸í•´ 무너지고 ë°±ì„±ë“¤ì´ ì£½ìž„ì„ ë‹¹í•  ê²ƒì„ ì£¼ë‹˜ì€ ì´ë¯¸ 아시고 ë§ì”€í•˜ì…¨ë‹¤. 그러나 주님 ì•ˆì— ìžˆì§€ ì•Šì€ ì´ë“¤ì€ ì´ë¥¼ 깨닫지 못한다. 전능하신 í•˜ë‚˜ë‹˜ì€ ìžì‹ ì˜ ëœ»ì„ ì´ë£¨ì‹œë©°, 우리는 ê·¸ ì—­ì‚¬í•˜ì‹¬ì„ ë³´ê³  살아야 한다. 죄와 ì–´ë‘  ê°€ìš´ë° ìžˆëŠ” ìžë“¤ì—게는 ì´ ì§„ë¦¬ê°€ ê°ì¶”ì–´ì ¸ 있지만, í•˜ë‚˜ë‹˜ì˜ ë°±ì„±ë“¤ì€ ë¯¿ìŒì˜ 실ìƒì„ ë³´ê³  í•˜ë‚˜ë‹˜ì˜ ì˜ê´‘ì„ ëˆ„ë ¤ì•¼ 한다. í•˜ë‚˜ë‹˜ì˜ ë³´í˜¸ê°€ 없으면 반드시 무너지며, 사ë§ì˜ ì„¸ë ¥ì´ ê°€ë“í•œ 세ìƒì—ì„œë„ ìš°ë¦¬ëŠ” í•˜ë‚˜ë‹˜ì˜ ë³´í˜¸ 안ì—ì„œ 살아야 한다. 백성들ì—게는 장차 ì¼ì–´ë‚  ì¼ì´ ê°ì¶°ì ¸ 있지만, í•˜ë‚˜ë‹˜ì˜ ì§„ë¦¬ì˜ ë§ì”€ì„ 통해 실ìƒì„ ë³´ê³  살아가는 ê²ƒì´ ë¯¿ëŠ” ìžë“¤ì˜ 삶ì´ë‹¤.

 

수: ì˜ì›í•œ ì„¸ìƒ (눅 20:34-38) ì°¬ 247장

ì´ ì„¸ìƒì€ ìž ì‹œ 머무는 ë‚˜ê·¸ë„¤ì˜ ê¸¸ì´ë©°, ì˜ì›í•œ 세ìƒì„ 준비하는 ê³³ì´ë‹¤. ì‚¬ëžŒì€ ì£½ì§€ 않는 존재ì´ë©°, 하나님 ì•žì—ì„œ ëª¨ë‘ ì‚´ì•„ 있다. í•˜ë‚˜ë‹˜ì€ ì£½ì€ ìžì˜ í•˜ë‚˜ë‹˜ì´ ì•„ë‹ˆë¼ ì‚´ì•„ 있는 ìžì˜ 하나님ì´ì‹œë‹¤. ëˆˆì„ ëœ¨ê³  ë§ì”€ì„ 통해 오는 세ìƒì„ ë°”ë¼ë³´ì•„야 한다. 멸ë§ì˜ 길로 가지 ë§ê³ , ì˜ì›í•œ ìƒëª…ì„ ì¤€ë¹„í•˜ë¼. 하나님 안ì—ì„œ ì˜ì›í•œ ê²ƒì„ ëˆ„ë¦´ 수 있ë„ë¡ êµ¬ì›ë°›ì•˜ìœ¼ë‹ˆ, ìƒëª…ì„ ì˜¨ì „ížˆ 누리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ìƒëª…ê³¼ ì˜ê´‘ì„ ê²½í—˜í•˜ë©° ì‚´ì•„ê°€ë¼.

 

목: ì–´ë‘  ì†ì— 있는 ìžë“¤ (눅 20:45-47) ì°¬ 502장

ì–´ë‘  ì†ì— 사는 ìžë“¤ì€ ì˜ì›ì„ 보지 못하며, ìžì‹ ì„ ì£¼ì¸ ì‚¼ì•„ 높아지려 한다. 하나님 ì•žì—ì„œ ìžì‹ ì„ ì¸ì‹í•˜ì§€ 못하고, 죄 안ì—ì„œ 죄를 누리며 산다. 외ì‹í•˜ë©° 기ë„하지만, 하나님 ì—†ì´ ìžì‹ ë§Œ 존재하는 ì‚¶ì„ ì‚°ë‹¤. ê²°êµ­, ìžì‹ ì´ ìš°ìƒì´ ë˜ê³  스스로를 섬긴다. ê·¸ë“¤ì€ ì‹¬íŒì£¼ë¥¼ 보지 못하고, 장차 다가올 심íŒê³¼ ì˜ì›í•œ ì‚¶ì˜ ì‹¤ì²´ë¥¼ 깨닫지 못한다. ì˜ì  세계를 ì¸ì‹í•˜ì§€ 못한 채 ì–´ë‘  ì†ì—ì„œ 살아가며, ìœ¡ì‹ ì˜ ìƒê°ì—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심íŒì˜ ë‚ ì€ ë°˜ë“œì‹œ 오며, ì–´ë‘  ì†ì— 있는 ìžë“¤ì€ ê·¸ë‚ ì„ í”¼í•  수 없다.

 

금: í•˜ë‚˜ë‹˜ì˜ ë‚˜ë¼ë¥¼ 준비하는 ìžì„¸ (눅 21:5-13) ì°¬ 38장

ì˜ˆë£¨ì‚´ë ˜ì˜ ì›…ìž¥í•œ ì„±ì „ë„ ê²°êµ­ 무너질 것ì´ë©°, 그때 여러 징조가 나타난다. 거짓 메시야가 등장하고, ì „ìŸê³¼ 소요, 지진과 기근, 전염병과 ë‘려운 ì¼ì´ ì¼ì–´ë‚˜ë©°, í•˜ë‚˜ë‹˜ì˜ ìžë…€ë“¤ì€ í•ë°•ì„ 받는다. ì‚¬ëžŒë“¤ì€ ë¶ˆì•ˆê³¼ ê³µí¬ ì†ì—ì„œ 고난과 죽ìŒì„ 맞ì´í•˜ê²Œ ëœë‹¤.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ì´ëŸ¬í•œ ì¼ë“¤ì„ 미리 ë³´ì´ì‹œë©°, 우리가 ìœ¡ì‹ ì´ ì•„ë‹ˆë¼ ì „ëŠ¥í•˜ì‹  하나님 안ì—ì„œ 살아야 í•¨ì„ ê¹¨ë‹«ê²Œ 하신다. 하나님 안ì—ì„œ 훈련하고 성장하며, ì –ê³¼ ê¿€ì´ í르는 ë•…ì„ ì†Œë§í•´ì•¼ 한다. í•˜ë‚˜ë‹˜ì˜ ë‚˜ë¼ëŠ” ì–´ë‘ ê³¼ 사ë§, 재난과 ì „ìŸì´ 없는 ê³³ì´ë‹¤. 사ë§ì„ ì´ê¸°ì‹œëŠ” 하나님 안ì—ì„œ 살아야만 ì°¸ëœ êµ¬ì›ì„ 누리며, í•˜ë‚˜ë‹˜ì˜ ì˜ê´‘ì´ ë‚˜íƒ€ë‚˜ëŠ” ì‚¶ì„ ì‚´ 수 있다.

 

토: 하나님 나ë¼ì˜ 징조 (눅 21:29-36) ì°¬ 210장

ì‹¹ì´ ë‚˜ë©´ ì—¬ë¦„ì´ ê°€ê¹Œìš´ 줄 ì•Œ 듯ì´, 징조가 나타나면 í•˜ë‚˜ë‹˜ì˜ ë‚˜ë¼ê°€ ê°€ê¹Œì›€ì„ ê¹¨ë‹¬ì•„ì•¼ 한다. 우리는 ê·¸ ë‚ ì´ ë‹¤ê°€ì˜¤ê³  있ìŒì„ 알고 준비해야 한다. ì§„ë¦¬ì˜ ë§ì”€ì„ 통해 í•˜ë‚˜ë‹˜ì˜ ëœ»ì„ ë°”ë¼ë³´ë©°,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ì´ë£¨ì‹¤ ì¼ë“¤ì„ 주목해야 한다. ìœ¡ì‹ ì— ë¹ ì§€ë©´ 방탕함과 염려로 ì¸í•´ ì˜ì  ê°ê°ì´ 둔해지고, 징조를 깨닫지 못하게 ëœë‹¤. 그러므로 í•­ìƒ ê¹¨ì–´ 있어야 하며, ìžì‹ ì˜ 삶 ì†ì—ì„œ 나타나는 징조를 ì½ê³  준비해야 한다. ìœ¡ì‹ ì˜ ìƒê°ì— ì†ì§€ ë§ê³ , í•˜ë‚˜ë‹˜ì˜ ê³„íšì„ 무시하지 않는 ìžê°€ ë˜ì–´ì•¼ 한다.

 

03.2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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