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일 간의 숙제 : 피를 한 방울씩 가져오라

두 주일 간의 숙제 : 피를 한 방울씩 가져오라

저는 2004년에 70정년으로 38년간의 경신중.고등학교 교목을 은퇴하고 17년이 되었습니다. 1949년 중학교 1학년부터 서울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새문안교회에서 목사 될 때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1967년에 경신학교 교목으로 부름 받아 학원목회로 시작해서 학원목회로 마쳤습니다. 지금은 새문안교회 재적목사로 주일이면 예배드리러 갑니다. 사순절기간에 있었던 옛날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몇 자 적었습니다. 

 

1950년대 말 새문안교회 고등부를 지도하시던 황광은 목사님(사진)은 당시 한국교계에서 이름난 목사님이셨다. 하도 재주가 많으셔서, 학생들도 팔방미인이라고 별명을 붙여드리기도 했다. 목사로서 서울 보이스카웃(Boyscout) 지도자이시기도 하셨고 교회연합기관인 기독교교육협회 총무로도 사역하셨는가 하면, 아동문학가인 동시에 장년 및 청소년 대상 설교는 물론 구연동화의 일인자였고, 피아노와 트럼펫 등 악기 연주와 더불어 간단한 부채를 이용한 손마술 또는 핑거댄스(finger dance)까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나도 그 때 황 목사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마술과 핑거댄스를 할 수 있다.

주일에는 중고등부 지도목사로 설교를 하셨고 여름수련회 때는 우리들을 YMCA 수양관에 데리고 가서 4박5일간 말씀 공부는 물론 stunt night(촌극대회), 야구, 마라톤, 수영, 야간 깃발 점령하기 등 여러 가지 흥미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신앙을 살찌게 하시고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런가하면 어느 해에는 여름수련회를 불우청소년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난지도 Boys Town에 인솔하고 가서 그들과 함께 기거하며 연합수련회를 갖기도 하고, 또 어떤 해에는 서울주변 봉일천 고아원에 데리고 가서 그 아이들의 빨래도 하고 그들이 먹는 깡보리밥(입에 한 숟가락 넣으면 입천장을 따끔따끔 찌르는)을 같이 먹도록 하는 등 불우한 소년들의 삶을 체험하게도 했다. 한 번은 우리 고등부 남녀임원들을 명동성당에 인솔해가서 천주교 미사를 참관하도록 하시는 다른 목사로서는 상상도 못할 요새말로 열린 목사님이셨다. 말하자면 에큐메니칼의 선구자시었다. 

황 목사님이 대광중고등학교 교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1960년, 4.19때 대학생들의 시위에 흥분한 대광 학생들이 밖으로 시위하려 나가려하지 학생들을 모아놓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내보내기도 한 대담하고 과감한 목사님이셨다. 나는 38년간 경신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재직하는 동안 학교에서는 물론 여러 교회의 교육목사로 활동을 할 때마다 그 분의 Learning By Doing의 교육방법을 활용해 많은 효과를 보기도 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황 목사님을 다시 떠올려보는 이유가 있다. 1950년대 말 내가 새문안교회 고등부시절, 지도목사이기도 했던 황 목사님의 신앙교육이 이 시대에 너무도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황 목사님은 매 월요일마다 고등부 임원들을 하교 후 집에 가는 길에 교회에 들르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월요기도회를 인도해주셨는데, 어느 날 일주일간의 숙제를 주셨다. 다음 월요일 방과 후 월요모임에 올 때까지 한 주간 동안 어느 누구하고도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말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일주일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도 듣지도 않았다. 심지어 학교교실에서 선생님이 질문할까봐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도 하고 학급 학생들과도 말을 하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하고 일주일을 지나고 교회 월요모임에 갔다. 그날도 여전히 평소같이 기도회를 인도하신 후에 또 다시 지난번보다 더 어려운 숙제를 주셨다. 

다음 월요일 올 때까지 신체 어느 부위도 상관없으니 피를 한 방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어디서 피를 낼까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못 박힌 손바닥을 생각하면서 쇠 못 하나를 구해 왼손바닥 한 복판에 못 끝을 대고 오른 손으로 힘껏 눌렀다. 통증을 느끼기는 했는데 그러나 손을 펴 보니 조금도 살을 뚫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2차 시도를 했다. 쇠 못 끝을 현관 앞바닥 콘크리트에 갈아 뾰족하게 만들어서 다시 더 세게 누르는 시도를 했다. 손바닥이 따끔하도록 눌렀다. 손을 펴보니 아무 반응이 없더니 조금 있으니까 손바닥 가운데서 빨간 피가 한 방을 겨우 솟아올랐다. 얼른 종이에 묻혀서 접어가지고 교회로 갔다. 

임원 중 고3 남학생만 셋이 피를 종이게 싸갖고 왔다. 한 학생은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강태국 목사님의 아들 강우정(현재 부친이 설립한 한국성서신대학교 총장)과 회장인 김찬주가 새끼손가락에 면도칼로 상처를 내서 피를 내왔다. 그 둘은 새끼손가락을 하얀 반창고로 감고 있었다. 나는 피 묻은 종이만 펴서 내밀었다. 

목사님은 확인만 하시고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평소 하시던 대로 기도회를 인도하셨다. 우리는 왜 일주일간 말을 못하게 하시고 왜 피를 내오라고 하셨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 후에도 황목사님은 아무 언급도 안하셨고 대광 교목으로 가실 때까지도 무슨 뜻인지 설명도 안하시고 가셨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알 수 없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서야 왜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왜 피를 한 방울 내오라고 하셨는지를 스스로 깨달았다. 그 두 주간의 시기가 사순절 마지막 예수님의 고난주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 받으실 때 아무 말로도 항변하거나 변명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리고 채찍에 맞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 손과 양 발에 대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에 찔려 십자가에 달려 선혈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신 것을 염두에 두시고 그 사실을 우리 임원들에게 지적인 이론이나 말씀으로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천으로 체험하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말로 이론으로 학식으로가 아니라 먼저 체험하게 함으로 후에 스스로 알고 깨닫게 하는 즉, 체험우선(learning by doing) 교육이었던 것이다. 존 듀이의 교육철학을 실천하신 것이었다. 목사님도 대범하신 교육자였을 뿐 아니라 교육자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고 피를 내가지고 갔던 우리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특하고 순진했던 것 같다. 오늘날 그 목사님처럼 학생들에게 그런 숙제를 내주면 어떨까?

2021년 3월 17일 고난주간을 앞두고 

03.2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