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살라르(Salar)

대부분의 살라르족은 중국의 중앙에 위치한 칭하이(청해-Qinghai)성 동쪽에 거주하고 있으며 ‘살라르’(Salar)라고 하는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살라르어는 알타이어군의 투르크 계통의 하나로 우랄과 우즈벡 언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살라르족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전 수도였던 사마르칸트(Samarkand) 근처에서 발원한 투르크 종족의 자손들로 보여진다. 살라르의 조상들은 몽골 왕조(1279-1368) 때에 현재의 지역으로 이주한 것 같다.

과거에 형편없이 낮았던 살라르족의 문명률은 오늘날 상당히 높아졌지만 자신들의 언어인 살라르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중국어에 한해서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9만3천여 명의 살라르족 무슬림들이 중국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며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실정이다.

 

삶의 모습

 

촌락은 살라르족 사회의 가장 큰 조직단위로 각 촌락마다 이슬람교 사원과 묘지가 있고 대부분 대가족을 이뤄 시멘트 벽돌로 된 2층짜리 집에서 함께 거주한다. 이들의 주택은 복잡하게 새겨진 기둥과 문틀, 처마가 특징이고, 집들 주변에는 벽돌로 둘려진 앞마당이 있고, 그 마당들에는 과일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이런 생활모습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일반적인 것인데 이를 통해 살라르족이 사마르칸트의 자손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살라르족의 주된 경제원은 농사로 농부들은 밀,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보리, 메밀, 호두, 감자 및 다른 채소를 생산하며, 과일류로는 메론, 사과, 포도, 살구를 재배한다. 농사 외에 털을 이용하거나 고기를 얻기 위해 양을 기르고 산림 벌목업을 하기도 한다. 살라르족의 주식은 찐빵, 국수, 채소국이다.

살라르족은 남성을 통해 집안의 대를 잇는 남성중심의 강한 부계사회다. 주로 대가족 형태를 이루며, 또한 살라르족에게 결혼은 사랑으로 이뤄지기보다는 두 가문간의 연합에 더 중심을 두고 결정하는 듯 보인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조건이나 상대의 가문에 대해 중매인과의 논의를 통해 자녀들의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보통 말 1-4마리 정도와 옷, 설탕 등이 신부쪽 부모에게 결혼의 대가로 지불됐다. 결혼식은 주로 신부 집 밖에서 치러지는데 이때 신부가 집안에 있더라도 예식이 진행되는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다.

신앙

 

살라르족은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전반에 개종한 이래로 하파니(Hafanite)파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그 이후 몇 번의 이슬람 반란에 동참했다. 1958년 중국정부가 이슬람의 관료격인 뮬라(Mullah)들을 없애버렸지만 1980년부터는 오히려 이전에 금지됐던 종교활동이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공동체는 이슬람 전통에 기초한 종교적인 위계질서를 갖춘 지도계급을 가지며, 이 종교적 위계질서가 공동체의 사회적, 정치적 관습을 통제한다. 이슬람 사원은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슬람 지도자를 이맘(imam)이라고 부른다.

 

필요로 하는 것들

 

실상 살라르족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무슬림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지만 이슬람을 대체할만한 사상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알려진 기독교라는 것은 무슬림 지도자들인 이맘(imam)들이 주입시킨 왜곡되어 꾸며진 것들뿐이다.

살라르어로 번역된 성경도 없고, 기독교 라디오나 TV 방송도 없고, 또한 현재 이들을 섬기는 선교단체도 없다. 대부분의 살라르족은 이들을 자유케 하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존귀한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고, 복음을 접한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08.2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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