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팬데믹이 반년을 넘어가며 역사와 전통과 습관을 단절시키는 낯설고 생소한 벽을 높이 세우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가움을 나타내는 악수가 사라지고 어쩌다가 튈지도 모르는 침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행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들에는 ‘몸은 멀게 마음은 가깝게’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그에 대해 반발이라도 하듯 몸이 멀어지는 그 이상으로 마음도 멀어지는 불신은 깊어진다.
2020년의 한반도에는 최장 장마라는 닉네임에 걸맞은 침수피해와 산사태도 유난했다. 태풍의 영향이 아닌 장마의 피해로는 역대급이라해도 부족하지 않을 재난이었다. 수십 년 동안 안심하며 살던 집터로 산사태가 덮쳤고 튼튼한 제방이 철통같은 방어벽이라 여기며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빈대떡을 붙여먹는 마을로 거센 흙탕물이 밀어닥쳤다. 지붕 위에까지 차오르는 물 폭탄을 피해 맨몸으로 구명보트에 사람들이 옮겨 탈 때 우사에 갇혀 있던 소떼들은 지붕으로 피난하는 웃지 못 할 진풍경도 불어졌다.
긴병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코로나19나 청천병력과도 같은 수해는 이 땅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발등의 불이다. 더하거나 덜함도 없는 참담한 현실인 것이다. 전 세계에는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버린 코로나19 확진자가 2천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7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물질문명 세계의 가장 우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은 코로나19 앞에 코가 납작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미국에서 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는 꼬집어봐야 아플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롬5:20). 섬뜩할 만큼 두려움을 주는 말씀이다. 코로나19와 참담한 수해를 예견하여 은혜를 넉넉하게 부어주시려는 듯 2019년부터 한국에서는 트롯이라는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스 트롯에 이어 인기가 상승하는 중인 미스터 트롯은 위로와 위문의 대세가 되었다.
방송을 트는 채널마다 너나 없는 인기로 트롯이 흘러나온다. 생각해보면 코로나19가 엄습한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7개월을 견디게 한 것이 트롯이 아니었을까 여겨질 만큼 남녀노소 모두에게 트롯열풍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트롯의 의미는 말이 걸을 때 2박자로 걷는 보조 즉 속보를 나타낸다. 말의 발은 서로 대각선으로 들어 올려졌다가 땅에 내딛는다. 뒤쪽 왼발과 앞쪽 오른발이 거의 동시에 내딛으며 그 뒤 앞쪽 왼발과 뒤쪽 오른발이 마찬가지도 움직인다. 한 쪽 발을 들어올렸다가 다른 쪽 발로 바꿀 때 말의 몸은 순간적으로 공중에 뜨게 된다. 이런 움직임과 박자를 트롯이라고 한다. 백과사전에서 설명하고 트롯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박자에 가수들의 감성이 더해져 코로나19로 숨을 죽여야 하는 사람들의 칙칙한 마음에 더할 수 없는 위로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올 때 진통제가 그 고통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듯 트롯은 점점 더 인성이 마비되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래도 사랑, 그래도 인정, 그래도 정의, 그래도 우정을 되돌렸다.
수십 년의 삶터가 흙탕물을 뒤집어 쓴 참담함으로 실의하여 주저앉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한켠의 수해복구현장에서는 누구인가의 입에서 슬픔에 젖은 트롯 한 가락이 울려 퍼지고 녹아버린 애간장을 토하듯 내뱉어진 트롯 한 가락이 희망가로 바뀌기도 한다. 가수 이미자가 부른 ‘노래는 나의 인생’이라는 가사에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보면은 외로운 길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끝없이 기나긴 길을 따라 꿈 찾아 걸어온 지난 세월 괴로운 일도 슬픔의 눈물도 가슴에 묻어놓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
코로나19도 참담하기만 한 수해의 현실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지금의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아픔을 지우며 떠나보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래일 것이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긴 한숨의 애환이 늪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길 때 호흡을 고르며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노래일 것이다. 트롯박자에 맞춰 인생의 희로애락이 절절하게 담긴 감성이 뿜어져 나올 때 사람들은 위로와 위문을 받게 된다. 들을 귀가 있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음성도 들린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 이 진리의 음성은 트롯보다 강하다. 그리고 깊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올 깜짝 놀랄 일을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는 그래야 한다. 하나님은 찾으시고 발견하시고 기뻐하신다. 코로나19도 수해도 그리고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모든 고통도 다 지나갈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hanmackim@hanmail.net
08.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