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로, 화란이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서 교회의 재개혁이 일어났다면, 칼빈과 낙스와 멜빌의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스코틀랜드 언약도(Scotland Covenanter)들의 삶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할만하다.
국왕 찰스 2세(Charles Ⅱ)는 칙령을 내리기를 ‘짐은 국가에도 머리이고 교회에서도 머리’라고 하자, 스코틀랜드장로교회는 알렉산더 헨더슨(Alexander Henderson) 목사가 중심이 되어 백작, 귀족, 장로, 평신도 등이 1638년 2월 28일 에딘버러의 그레이프라이어스(Greyfriars) 교회당에 모여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을 작성하고 대표자 200여명이 서명을 했다. 국가 즉, 국왕의 왕권이 교회의 순결을 짓밟고 성경적 교리를 파괴했을 때 장로교회 성도들은 분연히 일어나 항거, 항명, 불복종 하고 역사적 장로교회의 신앙을 사수했다. 그로 말미암아 1,200명의 성도들이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모두 순교의 잔을 마셨고, 그 후 50년 동안 18,000명의 순교자가 났다.
교회가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교권이 침해되고 교회의 순결이 짓밟히고, 성경진리를 허물어뜨리려고 할 때 분연히 항거하며 순교를 각오하고 일어났다. (이 신앙고백과 서명 원본은 지금 한국 칼빈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독재자가 인권을 말살하고 교권과 교리를 파괴할 때는, 교회는 순교를 각오하고 분연히 일어나 항거한 예이다. 이때도 깨어 있는 지도자, 선지자가 필요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왕이나 지도자가 죄악으로 곁길을 갈 때는 생명을 걸고 죄를 지적하였다.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이었다.
교회와 정부 모두 하나님 주권 아래 있어
정교분리 아닌 정교구분
이와 대조적으로 일제시대 때 한국교회는 1938년 신사참배 강요에 무릎을 꿇고 총회적으로 신사참배를 가결, 일본의 혼합주의 종교가 된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럽고 뼈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포용주의 정책을 포용해버린 사건이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북한 동포들을 도우러 갔다가 김일성, 김정일 우상 앞에 절을 했다면 이는 일제 때 일본의 신사참배와 같다고 본다.
한편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신앙의 순결을 지켰던 주기철, 손양원, 이기선, 한상동, 손명복, 이인재, 박관준을 비롯한 50여명의 순교자들과 산 순교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국가가 교회의 순결과 거룩성과 진리를 허물려고 할 때, 그들은 생명 걸고 항거한 것이다. 그리고 만주지역에 한부선 선교사와 J. G. 보스 선교사의 지도를 받은 만주의 한국교포 성도들은 결사항전으로 성경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500여명의 성도들이 신사참배 반대의 신앙고백을 하고 서명을 했다. 한부선 선교사는 이를 가리켜 한국의 언약도(Korean Covenanter)라고 썼다. 이런 예들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정교(政敎)분리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입을 틀어막고, 군국주의 일본의 정책에 순응하도록 만든 법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미국에서 제퍼슨 대통령이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은 국가가 교회를 간섭해도 안 되고 교리체제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정교분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도 정교분리라는 등식은 없다. 성경은 구약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왕이나 집권자들이 부패와 죄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 불같은 메시지로 책망하면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했다.
교회와 정치는 분리된 것이 아니고 다만 구분되어있을 뿐이다. 오늘날 국가정책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버리고 사회주의로 기울어지는 시점에 목회자들이 정교분리라는 도그마(Dogma)에 갇혀 아무 말도 못하고 벙어리 흉내를 내는 것이 옳은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흔히 로마서 13장 1절에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은 권세자가 바로 섰을 때이지, 주권자가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정권이 부패하고 하나님 없는 반윤리적, 반도덕적으로 갈 때는 얼마든지 항거 항명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흔히 중립, 또는 중도자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른바 ‘목회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묘한 논리를 세우는 것이 맞는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세상에는 중립이란 없다. 진리가 아니면 비 진리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사상은 성경적이지 않다. 진리냐 비 진리냐, 성경적이냐 비 성경적이냐를 확실히 구별해야 한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와 정부는 어느 쪽이 상위라는 개념은 옳지 않다. 그 둘은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되리라고 본다. 정교분리가 아니고 정교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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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