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의 기세가 아직도 꺾이질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세상의 질서가 뒤바뀌고 있다. 많은 군중들이 모이는 행사는 거의 다 취소되었다. 심지어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까지 연기되었으니 무슨 말을 더하랴! 목회와 선교도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들을 경계하며 피하는데 어떻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저마다 인터넷을 통해 예배와 교육을 시도 하지만 그 한계성을 뛰어 넘을 수 없다. 속담에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란 말이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뜻이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이다. 굳이 전통적인 회중중심의 대예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아무리 세상이 요동칠지라도 그 시대와 상황에 맞는 방안을 사역의 근간으로 도입하면 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일대일 사역은 평상시는 물론이거니와 이처럼 환난의 때는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선교는 사업이 아니라 사역이다.
사역의 핵심가치는 사람이다.
일대일 사역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 되게 하는 첩경이다.
1. 양(Quanity)을 중시하는 시대
현대의 사람들은 내용보다는 가시적인 결과를 높이 평가한다. 짧은ㅜ시간 내에 많은 회중들을 모이게 하거나 큰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면 능력자로서 칭송을 받게 된다. 이에 목회자나 선교사는 이런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역적 부흥을 위해서 서두르게 되고 무리수를 두기 쉽다. “내가 누군데? 최소한 1000명 앞에서 설교해야할 자가 아닌가? 어떻게 비생산적으로 1명 앉혀놓고 교육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오늘 시대의 사역은 대중적인 사역이 근간을 이룬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메시지처럼 한 영혼(One more soul)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 이것은 불행이다. 자연현상의 이치를 보라. 화단에 있는 화초는 저마다 특수적 상황이 있다. 물이 필요한 것, 비료가 필요한 것, 어떤 화초는 시급히 벌레를 잡아주어야 하는 것도 있다. 헌데 주인이 매 화초의 상황을 무시하고 물과 비료를 흩뿌리며 전체적으로만 관리할 때에 화초는 결코 빠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다. 식물도 이러 할진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오죽하랴? 인간은 화초나 아니 그 어떤 피조물보다 내면세계가 복잡하며 태생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를 집단으로 치료할 수 없듯이 영혼들도 개별적인 보살핌이 병행되어야 한다.
2. 양(Quanity)의 원천인 질(Quality)
사역이든 사업이든 뭔가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요즈음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3Q전략이다. 질(Quality), 양(Quanity), 속도(Quick)를 의미한다. 특히 현대전에서는 누가 먼저 점령하느냐가 승패를 가름하기도 한다. 가상적 목표치를 위해 서두르다보면 질을 무시하고 우선 눈에 보이는 양에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질이 없는 양은 없다. 양을 위해서는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 관건은 ‘질이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오늘 과일나무를 심고 1년 치 물과 비료를 한꺼번에 준다고 해서 내일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다. 빠르다고 다 빠른 것이 아니고 느리다고 다 느린 것이 아니다. 중국 성도에는 모죽(毛竹)이란 대나무가 있다. 이것은 처음 씨를 뿌린 후 거의 5년 동안 작은 순이 나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나 5년째 말미에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거의 30m에 이른다. 다 때가 있다. 열매는 때가 차야 한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일은 모죽나무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매사에 잔 꽤나 술수를 부리면 안 된다.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일대일 사역은 느린 것 같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한 선교적 방책이다.
3. 일대일 말씀사역(One to One Bible Study)
일대일 말씀사역(One to One Bible Study)이란 무엇인가? 이는 한 사람의 충성된 양육자가 동반자를 일대일로 만나 그리스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삶을 나누며 서로의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다. 이 사역방법의 근거는 성경이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아브라함, 모세에게 나타나 각각 일대일로 말씀하셨다. 신약에 예수님도 대중적으로 사역하시면서도 중요할 때 일대일로 사람을 도우셨다. 주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대표하는 “요3:16” 말씀을 나누실 때 일백만 명의 군중들 앞이 아니라 한 영혼인 니고데모 앞에서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소외되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도우실 때도 일대일이셨다. 이처럼 주님은 일대일 사역방법을 중시하셨다. 이 맞춤형 교육방법은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바울과 디모데 등 여러 선지자나 사도들도 사용하였다.
4. 일대일 사역의 장점
온누리교회 일대일 양육자 지침서에 의하면 “일대일 양육의 목적은 이름뿐인 형식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라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는 데 있으며 자기가 아닌 그리스도 중심의 사람으로 세우는 데 있다.” 이 사역의 장점으로는 1)상대방에 대한 집중과 의사전달이 용이하다. 2)동반자의 인격과 삶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3)공동체에서 숨겨질 수 있는 개인적인 문제들과 상처들이 드러나고 치유될 수 있다. 4)개인의 형편에 따라 맞춤 양육으로 동반자의 신앙이 체계화되고 견고해진다. 6)서로 간에 영적교제를 통하여 진정한 동역자 관계가 형성된다. 6)양육자는 목자의 심정으로 동반자를 돌보게 되므로 계속적인 성장을 하게 한다. 7)이 사역은 신학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시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5. 단순전도와 일대일 제자 양육에 대한 평가
이 사역의 특성은 수학에 비교된다. 수학에는 산술급수적 증가와 기하급수적 증가란 두 개념이 있다. 산술급수적(Arithmetic) 증가란 매일 한 명씩 전도하면 1년에 365명이 된다. 그러면 10년 뒤에는 3,650명이 된다 33년 뒤에는 정확히 12,045명이 된다. 그러나 기하급수적 (Multiplication) 증가는 배가의 증식방법이다. 이 방안에 의하면 첫해에는 양육자가 동반자 한 명을 돕기에 2명이다. 다음 해에는 2x2=4명이 된다. 그리고 10년째는 1,024명이며 20년째는 1,048,576명이 된다. 예수님의 나이인 33년째는 현재 지구의 인구 77억을 훨씬 초과한 8,589,934,592명이 된다.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10년 내에는 단순전도의 산술적 증가가 훨씬 앞선다. 그러나 13년째부터는 그 수치가 역전된다. 이후에는 제자훈련에 의한 기하급수적 방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배가된다. 일대일 방법은 어쩌면 속도전쟁인 현대에 맞지 않는 전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역은 수치적으로도 기적을 낳는 가장 확실한 방책이다.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대일로 양육된 사람은 주일예배에도 참석하기 급급한 일반회중과 같을 수 없다. 이들은 양육을 받고 또 자신이 직접 양육자가 되기 때문에 영적인 파괴력은 감히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명료한 사실 하나는 단순전도의 방식으로는 결코 인구 증가율이나 이슬람의 확장속도를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맺음 말
일대일 사역을 통한 선교도전! 이는 위의 열거한 것처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단점도 없지 않다. 그 중 하나 특히 주의할 점은 예수의 제자가 아닌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파당을 짓기 쉽다. 또한 바른 신학적 관점보다는 주관적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나 선교회 차원에서는 양육자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튼 모든 것은 운영자의 묘미에 달려 있다. 성경 외에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환난의 때이다. Covid-19의 영향으로 폐쇄된 사회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도 없이 매일 방콕생활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교회에 가 주일예배도 드릴 수 없다. 사방이 막힌 느낌이다. 이럴 때에 일대일 사역방향으로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jrsong007@hanmail.net
05.0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