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에 대한 이해와 선교적 대응

최근 들어 한인 세계교회가 인도차이나에 대한 선교로 불타오르고 있다. 캄보디아를 비롯하여  베트남이 그 대표적이다. 중국을 중심한 북방의 선교환경이 어려워진 탓이기도 하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가? 때마침 인도차이나 반도에 속한 국가들이 문호를 조심스럽게 개방하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에게 부담이 덜하다. 이유인즉, 지정학적으로 떨어져 있어 중국과 일본처럼 우리와 얽힌 역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열강의 식민지로서 침탈을 당했기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공감대가 있다.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경쟁관계가 아니라 서로 필요를 채워주는 동반자적 위치에 있다. 나아가 저들은 대한민국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며 한류에 매료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의 흐름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도차이나를 새롭게 조명하며 가슴에 품에 선교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1. 일반적 이해

   

인도차이나 반도(Indochinese Peninsula)는 지정학적으로 인도의 동쪽, 중국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어원은 인도(India)와 중국(China) 사이에 붙어있는 반도 지역이라는 뜻에서 본 딴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중국의 남부와 남서부의 한족과 소수민족 일부가 남하하여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에 이르러 원주민과 어울려 살게 됨으로 새로운 종족과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면적이 230만 2,000km2에  2억5천만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기후로는 거의 아열대 또는 열대에 속하여 항상 고온을 이룬다. 몬순의 영향을 받아 건기와 우기의 차가 뚜렷하며, 우기(5-10월)에 연강수량의 대부분이 집중한다. 건기(11-4월)는 비가 적게 내리고 지형적인 조건과 더불어 오지에는 트인 경관을 이루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온다습한 기후로 도처에 밀림을 형성한다. 이 지역은 자원이 풍부하고 강수량이 많아 농사도 연 3모작까지 가능하다. 

 

2. 사람들의 기질

   

여기 반도에 위치한 5개 국가들 중 태국을 제외하고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메콩강이 네 나라를 관통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많아 받았다. 그 영향으로 불교, 힌두교가 주축을 이룬다. 게다가 토속신앙과 다신교적인 믿음이 혼합되어있다. 

이곳 사람들은 비교적 성품이 느긋하고 여유롭다. 자연환경과 불교의 영향 때문이다. 일년 사철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에다가 풍부한 강수량과 농작물, 지하자원 등으로 조급할 이유가 별로 없다. 무엇보다 전통종교인 불교의 영향이 크다. 철저한 수행을 통한 열반에 이르는 과정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정반대이기에 불교도들은 쉽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 전통사회가 균열이 일어나면서 젊은이들에게 사상체계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선교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긴 인내와 삶의 모범 그리고 능력 있는 사역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3. 역사적 배경

    

역사적으로 19세기 영국, 프랑스 등의 제국주의의 오랜 지배로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저들은 기독교를 서양종교이며 제국주의 앞잡이로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서 자국 종교로 생각하는 불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왕과 국가를 배신한 것으로 간주할 정도이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와 군부독재의 어두운 그늘이 아직도 나타나고 있다. 

인도차이나는 200여 년 전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복음화가 5%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어느 다른 대륙과 비교해도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수치이다. 태국을 제외한 4국가는20세기 이후 인접한 중국의 영향으로 공산화와 더불어 선교의 문이 닫혔으나 최근 개방화와 더불어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불모지에 1990년대부터 한국인 선교사들이 들어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현재 약 3,500명의 한인 선교사가 그 땅에서 수고하고 있다. 

 

4. 불교 세계관과 접촉점

   

저들에게 불교는 생래적이다. 모든 사상과 가치체계 그리고 생활문화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저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욕망을 제어하고 감정을 다스리도록 교육을 받는다. 이로서 사역자들은 불교를 넘지 못하면 이 지역에서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시작은 먼저 현지의 문화와 정치, 사회구조를 배우는 것이다. 나아가 거룩하고 절제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생명력 있는 본을 보여야 한다. 

사역적으로 일방적인 설파는 좋지 않다. 저들이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수용자가 기분 나쁘지 않게 복음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전달해야 한다. 이들의 뼛속깊이 박혀있는 윤회론적 불교 세계관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뀌는 데에는 꾸준한 접촉과 인내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필요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5. 선교 전략

   

첫째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백성에게 통전적 선교가 필요하다. 절대빈곤에 가까운 사람들을 신앙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르고 닳도록 선교사를 의존하지 않도록 시작부터 출구전략 속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교육선교이다. 가능한 불교에 쇠뇌되기 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서부터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키워야 한다. 기성세대는  복음으로 회심했다 할지라도 잠재해 있는 불교세계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셋째는 주류종족의 복음화이다. 이 나라들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사역적 열매는 크다. 저들은 복음에 대해 훨씬 수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성이 있다. 부담이 되더라도 누군가는 주류종족들을 중점적으로 사역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나라의 민족 복음화는 요원하다. 넷째는 사역적 전략과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이다. 인도차이나는 모두가 불교권 나라이며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다. 이에 선교사들은 공동으로 사역전략을 연구하며 좋은 모델을 공유해야 한다. 

 

맺음 말

   

세계 한인교회가 왜 인도차이나에 선교적 부담을 가져야 하는가? 2억5천만 명의 영혼들 중 95%의 절대다수가 불교와 토착신앙의 오도(誤導) 속에 곁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콩강을 중심으로 한 이곳은 Window10/40에 속하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저들이 복음화 될 때 인도와 중국으로 복음을 역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저들에게 영적 주력부대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서구 교회일까? No. 아프리카나 남미 교회일까? No. 중국교회일까? 아직은 아니다. 이미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최적의 요건을 갖춘 곳이 한인교회이다. 우리는 개혁 개방으로 나아가는 인도차이나에 선교적 집중타를 가해야 한다. “메뚜기도 유월이 한 철”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저 곳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시대의 바람, 한류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멎기 전에!

jrsong007@hanmail.net

 

07.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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