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4대 국경일의 하나로 꼽히는 삼일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미주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다. LA와 뉴욕일원의 지역교협과 한인회를 중심으로 열리는 행사를 통해 한민족의 애국심을 깨우고 있다. 그러나 이 삼일운동의 위대한 역사적 배경에는 기독교인들의 희생이 숨어있다. 삼일운동 당시 이승훈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함께 이 운동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운동의 준비과정과 조직, 그리고 온 민족이 참여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이었으며, 거사 준비 과정에서 중심 되는 인물 48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24명이었다. 이 운동에서 1919년 6월 30일 집계에 의하면 교사와 학생을 제외한 직업 가운데 세 번째 그룹으로 목사, 전도사, 교회직원이었다. 종교별로 볼 때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중심이 된 기독교가 가장 많은 참여를 했다. 또한 이 운동의 여파로 소각 당한 교회당이 47개소로 당시 학교는 2개교가 소각 당한 것과 크게 대조가 된다. 이런 모든 정황을 살펴볼 때 삼일운동에서 기독교인들은 가장 큰 역할과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