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지난 주 내린 봄비와 함께 산과 들이 어느새 파릇파릇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로 시작하는 “봄처녀”라는 가곡의 가사처럼 새 풀옷으로 단장을 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언덕은 군데군데 유채꽃으로 노랗게 물이 들었고 각종 들꽃도 활짝 피어났다. 나에게 봄은 우리 집 앞마당에 해마다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함께 찾아온다. 수년 전에 몇 포기 사다 심은 이름도 기억 못하는 꽃이다. 다른 꽃들은 그 해에만 피고 끝났는데 이 한 포기만 살아남아서 해마다 봄이 오면 잔디를 헤치고 나와 수줍게 꽃을 피운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꽃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어머, 언제 피었니? 살아 있었구나! 또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 땅에 닿을 만큼 낮은 키의 작은 꽃 세 송이가 예쁘게 피더니 한달 만에 꽃은 다 떨어지고 이제는 잎만 남았다. “그래, 올해도 살아서 꽃을 피워주어서 고마웠어. 내년에 꼭 또 보자”하고 작별인사를 한다. 

자연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도 봄은 강한 생명력을 생각하게 한다. 땅속에 심긴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도 나고, 꽃을 피우는 살아 움직이는 그 힘이 참 놀랍고도 귀하다. 바쁜 삶 속에 텃밭은 꿈도 못 꾸고 지내다가 작년 봄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상추, 토마토, 아욱을 몇 포기씩 심었다. 여린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 적지 않았다. 도무지 앞을 알 수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올해도 친구가 준 호박씨 두 개를 화분에 심고 며칠 기다렸더니 떡잎이 나왔다. 똑 같이 심었는데 하나는 싹이 일찍 나오고 다른 하나는 꾸물거리며 천천히 나왔다. 늦게 나온 떡잎은 씨앗 고깔을 머리에 며칠 동안 달고 있었다. 아마도 고깔을 떨쳐버릴 만한 힘이 모자랐을까? 먼저 나온 떡잎은 씩씩한 청년, 나중 나온 떡잎은 얌전한 아가씨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심겨진 씨앗이 각각의 여건에 맞게, 가장 알맞는 시간에 흙을 뚫고 나와서 자리를 잡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기도제목 앞에서 조바심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또한 봄은 낮은 곳부터 찾아온다. 산책길에서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지나치며 바라본 언덕이 밑에서부터 파릇파릇하게 변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리고 낮은 곳으로 물이 모이니까 언덕 아래에서부터 풀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가장 아래쪽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위쪽으로 푸르름이 올라오는 언덕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다. 은혜의 물도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교만한 마음보다 낮은 곳에 있는 가난하고 상한 마음, 궁핍한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말씀이 주는 힘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영혼, 주님 한 분만이 삶의 소망이 됨을 고백하는 영혼을 하나님은 생명의 물로 적셔 주실 것이다.  

솟구쳐 오르던 코로나바이러스 통계와 함께 곁에 있는 사람들의 감염, 또 소천소식으로 잔뜩 위축되고 지쳤던 겨울이 지나갔다. 이제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는 소망을 갖고 새로운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부활절을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에 맞이한다는 것이 더 없이도 감사하다. 옛날 어머니의 봄맞이 준비는 겨우내 덮었던 이불을 햇볕에 내어 말리고, 집안 구석구석 봄맞이 대청소로 시작하시던 생각이 난다. 나도 조용히 그러나 강한 생명력을 지닌 채 다가온 봄을 맞기 위해 구석구석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봄맞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lpyun@apu.edu

0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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