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너 거기 있었는가?”

2021년 고난주간 끝나지 않은 펜데믹 가운데 더 경건의 자세로...

고난주간이다. 온 세상이 온통 코로나19에 빠져 정상적 삶의 시계가 올 스톱됐다가 백신접종으로 인해 사람들의 얼굴색이 밝아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완화돼 거의 1년 만에 식당이나 놀이공원 등을 갈 수 있다고 기뻐하고 있다. 

이처럼 온 세상이 다시 들뜨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천은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게 된다. 고난을 묵상하며 주님이 골고다에 오르실 때, 따랐던 여인들처럼 가슴을 치며 통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십자가로 드러난 그 크신 사랑을 깨닫고 회개와 감사, 송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난주간(the Passion Week)을 어떤 사람은 “역사상 가장 길었던 한 주간”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을 바꾼 한 주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그분의 생애와 가르침과 사역은 십자가에서 완성됐고 부활을 통해 승인됐기 때문이다. 

 

말씀과 묵상으로 더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십자가 구속역사 선포하고 구원하신 사랑 기억

고난주간 동안에는 마음의 옷깃을 좀 더 단단히 여미고 말씀묵상과 기도에 정성을 더욱더 쏟아야 한다. 과연 나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십자가 앞에 진솔하게 다가가야 한다. 

주님이 고난 받으실 때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을 모욕하고 돌을 던졌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구레네 시몬, 처형을 감독하던 백부장이 그런 사람들이다.

먼저 구레네 시몬을 살펴보자. 마가복음은 그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 소개한다(막15:21). 사실 그는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지게 됐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다. 로마서 16장 13절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학자들은 골고다의 경험 후 구레네 시몬이 크리스천이 됐고, 가정에 예수님을 전했다고 말한다.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였지만, 주님과 함께 걸었던 짧은 시간이 그의 삶을 바꾼 것이다.

백부장의 경험도 특별하다. 그때 그는 십자가형을 감독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죽음을 봐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그의 삶에 놀라운 일을 만들어낸다. 

마가는 예수님이 운명하셨을 때, 백부장의 고백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막15:39).

고난주간에 은혜와 역사하심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십자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먼저 그동안 얼마나 십자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묵상해야한다.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 십자가 옆으로,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야만 한다. 이날에 참여하는 우리의 열심과 진심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영광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는 곁에 다가선 사람을 주님의 제자, 예배자로 세워주실 것이다. 

고난을 겪는 것만큼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경험은 거의 없다. 환난이 닥치면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속마음이 드러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고난을 당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송축하나, 어떤 이들은 그분을 저주한다. “주님을 신뢰합니다”라고 눈물로 고백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도하기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엎드려 깨어진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나, 어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그를 떠나고 만다. 

고난 앞에서 사람들은 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분명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우리 개인이 고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난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최고의 순간을 앗아가는 도적도 아니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꿈을 죽이는 암살자도 아니며 아무에게나 무기를 겨누는 광인도 아니다. 우리의 고난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려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이 한 주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구속 역사를 선포하고, 그 고난과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경건한 삶으로 나아갈 때, 고난은 두려움이 아니라 영광으로 나아가는 기쁨이 되게 된다. 

해마다 찾아오는 고난주간이지만, 우리에게 찾아온 2021년 고난주간은 주님과 더욱 깊이 연합하고, 그분을 닮아가는 복된 은혜의 시간이 돼야 한다.

03.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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