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언 제 6회 신앙도서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4)

세기언 제 6회 신앙도서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4)

엔도 슈사쿠의 작품 ‘침묵’은 종교소설로 일본에서 과거에 있었던 카톨릭의 박해, 카톨릭 신부들의 순교와 배교,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신도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 신도들 역시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한 배교를 택하고 영적으로 의기소침하게 사는 이들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험난한 종교적 박해와 핍박 속에서 신앙인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갔는지 초반부에는 1인칭 시점을 사용해서 주인공 로드리고의 내면 묘사를 극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함으로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이고 객관성 있게 표현하였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배교자 페레이라 신부가 겪는 심리를 잘 알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 결과 독자들로 순교자의 숭고함과 배교자의 비겁함을 번갈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또한, 그것을 통해서 영적 도전을 경험하게 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침묵’이라는 소설은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순교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배교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등장인물들의 삶과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순교자는 침묵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반면 배교자들은 자신만의 궤변과 합리화로 그들의 신앙을 타협하게 되고 끝내 신앙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을 통해서는 영성을 배우게 되고 배교자를 통해서는 그들의 삶에 얽힌 인간적 갈등과 영적 고뇌를 보게 된다.

‘침묵’은 소설 제목에서 암시하듯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소설 속에서 여러 다양한 모습의 침묵을 그려내고 있다. 신도들의 침묵, 겁쟁이의 침묵, 순교자의 침묵, 사도들의 침묵, 바다의 침묵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비애에 빠진 인간들의 소리에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도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고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을…’(p.95)이라고 순교자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침묵에 대해 엔도 슈사쿠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소설은 침묵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할 때 하는 침묵과,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배교를 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침묵하는 이가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침묵을 누가 어떻게 선택하게 될지라도 그것에 대해 쉽게 정죄할 수 없음을 침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주인공인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이 존경하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를 택하게 되었을 때도 그렇고 천박하고 약삭빠르고 지독히 술을 좋아하는 일본인 기치지로가 자신의 신앙 정체성에 대해서 침묵하게 될 때 비록 인간적인 실망을 드러내지만 정작 자신이 배교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그들을 정죄하지 못함을 보게 된다.    

주인공 로드리고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을 언급하면서 “나는 배교했다… 이제 제 모든 약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 기치지로와 제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고백하며 자신 또한 배교를 선택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로드리고 신부는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자신이 배교할 당시 자신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초상화를 밟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라고 그렇게 용서와 사랑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침묵’이라는 소설이 다만 배교에 대해서 옹호하고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리화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순교자와 그의 피는 신앙을 지키는 숭고한 희생인 것이다. 그것은 분명 배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배교와 달리 순교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순교는 결국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져 더 많은 결실을 낳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분이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의 구원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인간의 노력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순교의 피는 침묵 속에서 희생을 부르고 배교의 선택은 타협을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건지게 된다. 예수님은 묵묵히 침묵 속에서 죽음을 택하시면서 인류를 구하셨고 순교자의 피는 그의 죽음을 값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반면 배교자는 자신의 생명은 귀하게 여기고 한목숨을 구걸할 수는 있지만, 믿음의 사람들을 살리거나 믿지 않는 이들의 영적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렇기에 순교는 나약해 보이지만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탄압의 위협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은 믿음의 표현이자 용기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반면 배교는 때로 침묵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자신의 목숨만을 구하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그의 작품 ‘침묵’을 통해 각자 순교의 자리에 설 수도, 배교의 자리에 설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배교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목숨만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교를 택하게 된다면 그것은 순교만큼 값진 믿음의 선택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로드리고 신부가 죄 없는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배교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초상화를 밟아가며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는 자들 앞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선 죄 없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드려진 침묵의 배교이자 참 믿음의 결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배교가 신앙을 버리는 결과가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배교의 선택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헛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용서를 깊이 더 인지하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할 영혼들로 살리고 품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순교만큼 값진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는 섣불리 자신의 삶만을 위해 배교를 택했던 기치지로나 궤변과 자기 합리화로 배교를 택했던 페레이라 신부와는 확연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침묵’이라는 작품은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의 상황에서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순교의 자리에 서있었고, 또 다른 믿음의 사람들은 목숨을 구걸하는 배교의 자리에 서 있었을 때를 생각나게 한다. 그 당시 일본 천황에 참배한 사건을 통해 순교자와 배교자가 한국 기독교 역사에 남아있다. 과연 그리스도인인 내 자신이 그때 그 당시에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까? 내 목숨을 버리더라도 신앙을 지켰던 순교자의 자리에 서 있었을까, 아니면 배교를 통해서 내 목숨을 건지고 신앙을 저버리는 그런 자리에 서 있었을까?  

그 질문은 사실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현재 많은 한국의 교회들이 1900년대 초 부흥의 순수한 신앙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그 당시의 많은 이들이 순교의 자리보다 배교의 자리에 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단이 판을 치고 사회 정의가 지탄을 받게 되는 그러한 일련의 일들을 접하면서 순교의 침묵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교회가 사회의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사회 정치에 물들어 신앙의 참모습이 변질되고 십자가의 복음이 편협하고 곡해되어져가는 현실을 보게 되면서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배교의 씨로 말미암아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뼈아프게 회개하고 참회해야 할 교회의 아픔이 되지 않았나 싶다.

죽음이라는 핍박 앞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순교자가 드러내는 용기라면, 배교는 죽음을 비켜가기 위해 비겁도 마다 않는 행동일 것이다. 일본이 카톨릭의 박해 속에서도 믿음의 신앙을 지키는 가운데 이러한 순교와 배교의 두 기류가 역사 속에 깊이 묻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은 현재 기독교가 생존하면서 부흥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몰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하는 영적인 싸움이 계속 될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 역사도 그렇고 미국의 기독교 역사도 모두가 순수한 신앙의 부흥을 경험했던 때도 있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때는 부흥이 아닌 타락과 몰락으로 넘어지게 되었던 것을 보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순교의 자리에 섰느냐 아니면 배교의 자리에 섰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흥망성쇠는 커다랗게 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순교의 자리는 종말인 것 같아 보여도 결국 그 순교의 피로 말미암아 개인과 나라가 부흥을 경험했던 것을 알 수 있고, 배교의 자리는 잠시 잠깐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종말은 그렇게 길지 않음을 보게 된다. 로드리고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에 대해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듣기까지 끝까지 부인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고 기치지로의 세속화되고 배신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멀리하고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페레이라 신부는 자신이 배교하면서 늘어놓은 궤변이 있다. 일본을 늪지대에 비유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을 묘목으로 비유하면서 복음이 늪지대인 일본에 재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썩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모습에서 보이는 일본의 모습일지는 몰라도 로드리고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가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부인하고 순교자들의 피를 부인한 것이라 보았다.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는 목숨을 구걸하고 세상과 타협한 배교로 보이는 반면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예수그리스도의 용서를 체험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예수를 판 유다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모두 예수님에게는 똑같은 존재로 우리가 여길 수 있지만 유다와 달리 베드로는 자살이 아닌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께 돌아왔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듯이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는 모두 배교를 택했지만 분명 다른 모습의 두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침묵’은 이러한 다양한 침묵의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카톡릭의 전파와 교화에 반감을 가지고 배척했던 일본의 선교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선교의 역사적 배경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순교자의 영성에 대해 다시 도전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신앙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 나는 순교의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배교의 자리에 서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02.0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