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이 왔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기도 하지만 많은 지역에서 겨울을 상징하는 달이다. 폴 투르니에의 책 제목인 “인생의 사계절”처럼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새싹이 돋는 어린 시절을 지나 푸르른 젊음을 지닌 청년기, 열매를 맺는 중년이 있다면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겨울도 다가온다. 일곱 형제의 막내인 내 나이가 육십이 넘으면서 자연스레 인생의 마지막 기간인 노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언니, 오빠, 형부들이 칠십을 넘어서서 팔십에 이르게 되니 인생의 황혼기가 내 주위에 바짝 다가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점잖고 깍듯이 예의 바르던 둘째 형부가 몇 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인생의 연약함과 노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년에 대한 책을 읽으며 이제라도 노년학에 대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는 노년기를 맞는 성도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침 지난달에 교인 평균연령이 높은 어느 교회에서 노년기에 대한 세미나를 부탁했다. 그동안은 세미나를 인도할 때 주로 교사훈련, 자녀양육을 주제로 강의를 했었기에 노년기에 대한 세미나는 나에게도 새로운 내용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미나를 위해 책과 논문들을 읽고 한국에서 만든 유튜브 내용들도 살펴보았다. 한국에도 인구 고령화에 따른 양로원 시설이 늘어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연관된 노인에 대한 많은 교육 비디오들이 나와 있었다. 노년기의 문제와 원인, 노인상담 시 주요 이슈들, 노년기에 새로운 취미를 개발한 사례, 환경적인 이유로 할 수 없었던 학업에 뒤늦게 열중하는 노인들에 대한 소개 등 다양한 자료들이다. 거의 대부분 백세시대를 어떻게 활발하게 그리고 여유 있게 살아갈 것인지가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어떻게 노년기를 잘 계획하며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료는 거의 볼 수 없었다.
폴 투르니에는 인생이 선택이라면 이 땅의 보물들이 빛을 잃는 노년기에는 선택이야말로 최고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그 가치에 맞게 선택하며 남은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노년기의 과제라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나는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구체적으로 노년기의 현명한 선택을 도와줄 수 있다. 또한 인생의 겨울이 찾아오고 이 땅을 떠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묵상은 순종과 실수를 반복한 우리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하며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 삶을 빚어 오신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열어준다.
낯 설은 온라인 강의에 열심히 참석해주신 분들과 함께 줌으로 두 번의 세미나를 인도한 시간은 내게도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마치 언니 같고 형부 같은 분들이 인생의 겨울을 믿음 안에 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감사한 일이다. 이사야서 46장 3-4절의 말씀을 나누면서 세미나를 마쳤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겨울은 쓸쓸한 계절이다. 이 땅에서 맺은 모든 인연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인생을 잘 마무리 하고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나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인생의 겨울이후에 올 영원한 구원의 봄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lpyun@apu.edu
12.1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