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몇 해 전 중국에서 ‘성품이노베이션’ 가정 성품치유세미나를 진행하던 중에 한 여인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의 엄청난 의처증으로 비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 증거를 고스란히 보여주듯 얼굴에 채 가시지 않은 멍 자국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7년 동안 일편단심으로 쫓아다닌 남편의 모습이 자신을 향한 헌신인줄 알고 결혼을 결심했다며 여인은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집착과 편집증 같은 증세였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우연히 눈길만 돌려도 그날은 여지없이 온몸에 폭탄 같은 주먹세례를 받아야만 했다고 합니다.

듣다보니 남편의 의처증 증세가 정도를 넘어 살인미수 행위로까지 여겨졌습니다. 이런 일들이 수도 없이 반복됐는데 왜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더욱이 답답한 것은 아빠가 집안에서 엄마를 때리기 시작하면 10대인 자녀들이 문을 닫고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왜 맞고만 살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힘없이 “참아야 하지 않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참으면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지 묻자, 그녀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엉엉 울면서 아빠에게 엄마를 때리지 말라고 매달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냉담하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이 걱정스럽다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날 저는 인내란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불평 없이 참고 기다리는 것’(좋은나무성품학교 정의)이지 무조건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무조건 참으면 어떤 불행한 일이 속수무책으로 일어나는지 예고하고, 남편에게 의처증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것을 권면했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렇듯 잘못 알고 있는 지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가두고 사는 모습을 발견할  때 참 당황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확신하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리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반면에 어리지만 인내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고 정확하게 행동하는 좋은나무성품학교의 7세 어린이가 생각나서 입가에 안심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강원도 여행을 떠나 어느 음식점에 들렀는데,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더랍니다. 음식을 시켜놓고 아무도 말을 못하고 있을 때, 용감하게 성품을 배운 친구가 나가자고 이야기를 했지요. 엄마는 아이에게 “너 인내 배웠잖아. 인내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주 정확하게 “엄마, 인내란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불평 없이 참고 기다리는 것(좋은나무성품학교 정의)이에요. 이 음식점에서 참고 기다리면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는데?”라고 되묻더랍니다. 결국 인내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아들에게 감탄하며 그 가게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고 말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인내라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인내란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불평 없이 참고 기다리는 것(좋은나무성품학교 정의)입니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상황 중에도 주님이 나를 향해 약속하신 좋은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주님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길 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의 약속이 오늘 온전히 ‘인내’해야 할 우리의 소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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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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